몬뚜가 돌아왔습니다
(송우리를 떠나 오기전의 일)
이석봉선교사
몬뚜는 송우리센터에서 두 번째로 회심한 형제였습니다. 그 당시 센터 주일 예배에 몇 번 참석하기는 했지만 그는 무슬림이었습니다. 6년 전 어느 날 저녁에 그가 내게 찾아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내가 날마다 그 토록 기도하면서 보내달라고 했던 그런 부류의 방글라 청년이었습니다. 분명 진리를 찾아 헤매는 길 잃은 양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했고 순수하게 영접 기도를 같이 했습니다(이때의 기쁨은 전도를 해본 사람은 다 알지요). 특별히 한 무슬림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은 선교사로서 내가 누리는 특별한 축복이라 여깁니다. 예수님을 주와 구세주로 고백하는 영접기도를 마친 후 몹시 두려워했던 그의 모습을 6년이 지난 지금도 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1년쯤 지난 지금 그는 스스로 대중 앞에 자기의 신앙고백을 할 정도로 담대해졌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약 2년 전부터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주일 예배에 빠지기 시작 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동생을 한국에 데려 오려 하는데 도와주지 않는다,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데 신경을 안 쓰고 도와주지 않는다’는 등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유 등이어서 권면을 듣지 않는 그를 나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치 탕자 같았습니다.
결국은 교회에 발을 끊었습니다.
그 이후 그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을 들으며 탕자를 기다리는 아비의 심정으로 기도하며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중보 기도하는 시간에 그를 위한 기도를 빠뜨린 적이 없었습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비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제가 방글라데시에 오기 전 주일, 송우리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에 나온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감격에 젖은 축축한 가슴을 진정하고 우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탕자처럼 지낸 지난 날 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술집, 나이트 글럽, 여자, 위장결혼 시도 등 그 동안 가서는 안 될 곳, 만나서는 안 될 사람,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며 2,000만원 상당의 많은 돈을 허비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가 탕자처럼 오래 전부터 몹시 돌아오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해 봤는데 예전에 주일이면 센터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열심히 봉사하던 그 때의 평화와 기쁨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며 진작 주일 예배에 나오려했으나 선교사님 마음 아프게 한 것이 미안해서 몇 번이고 센터 문 앞에까지 왔다가 용기가 없어 돌아가곤 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공장 앞에 있는 한국교회에 나가서 종종 주일 예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온 탕자를 맞는 아비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도무지 응답이 없을 것 같은 지난 2년간 기도의 시간들, 그러나 이렇게 응답을 목도하고 나니 좀 더 열심히 기도했어야 했다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언젠가는 그가 돌아오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사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확실하게 돌아오리라고는 미쳐 기대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제가 방글라데시로 떠나기 전 또 다시 크나큰 선물을 안겨 주신 것 같았습니다.
송우리를 떠나오기 전 몬뚜 이야기를 전하려 했는데 시간을 내지 못해 이제야 전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더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있더면 그것은 생명을 살리고 탕자를 돌아오게 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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