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년공동체/송우리문화센터(故 이석봉 1996~2005) 10

출국 준비를 하며 [2005년 4월]

오래간만에 소식을 전합니다.우리 가족은 현재 송우리에서 출국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송우리문화센터의 후임자가 확정되고 출국 날짜가 잡히면 소식을 전하려고 미루다 오늘에사 소식을 전합니다. 아직도 명확히 결정 된 것이 없지만 더 미룰 수 없어 소식을 전합니다. 송우리문화센터 상황저의 사역을 이어서 송우리문화센터에서 사역자을 하게 될 후임자는 일단 두 명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방글라데시어를 잘하는 한국인 사역자가 있다면 한 분만 세워도 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분이 안 계시고, 또 송우리센터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방글라데시 언어와 상관이 없는 한국인 전임 사역자를 세우는 것이 좋다고 여겨 송우리센터 운영 및 관리 책임자로 전임 사역자와 방글라데시 공동체 사역자를 각각 세우기로 했습니다. 운영 및 관리를 위한..

제 2의 도약을 꿈꾸는 송우리문화센터 [2004년 5-6월]

[2004년 5-6월] 제 2의 도약을 꿈꾸는 송우리문화센터이석봉 선교사 "송우리문화센터는 아직도 공사 할 것이 남았나요?"우리를 센터 가까운 곳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김 목사님의 말씀이시다. 1997년 센터가 세워진 이후 송우리센터는 늘 공사 중이다.3년 만에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혀 주셨다. 38평에서 80평으로 이사를 하게 된 지난 2000년 9월 우리는 얼마나 감사했던가! 그러나 감사도 잠깐, 베트남인들을 위한 예배가 신설되면서 센터는 더 넓은 공간들이 필요했다. 센터가 사용하고 있는 땅이 포천 시유지인지라 증축을 비롯해 일체의 건축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다. 컨테이너는 허가사항이 아니라는 잘못된 정보로 우리는 아쉬운 대로 넓은 마당에 하나 둘 필요할 때마다 컨테이너를 사다 공간을 활용하여 왔다. ..

송우리문화센터 소개

제 1기 사역 (1996년 6월)이석봉 선교사는 방글라데시에서 추방되었다. 이 후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희년선교회를 찾아와 본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사역에 대한 인턴쉽을 마치고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포천시 송우리에 1996년 6월 희년선교회 부속 송우리문화센터를 세워 사역을 시작하였다.  제 2기 사역 (2006년) 정승진 목사

나무를 심었습니다. [2004년 3-4월]

[2004년 3-4월] 나무를 심었습니다.이석봉선교사나무를 심었습니다. 시멘트 마당에 철판 컨테이너들, 초기에는 필요한 공간 확보에 급급하여 환경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 카페를 만들면서부터 센터가 너무 삭막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몇 일전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시멘트 바닥을 깨고 1m쯤 되는 은행나무 묘목 5그루를 사다가 마당가에 심었습니다. 고추, 방울토마토, 수세미, 오이, 호박 등도 텃밭에 심었는데 벌써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센터 부지 매입하기로그동안 우리가 힘써 기도해 왔던 센터 부지 매입 등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일산은혜교회에서 현재 시유지인 센터 부지를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송우리센터가 일단계로 이곳 송우리에서 외국인 노..

송우리 문화센터의 변화 [2003년 11-12월]

[2003년 11-12월]송우리 문화센터의 변화이석봉 선교사7년 전 방글라데시 근로자 선교 전문화를 꿈꾸며 시작한 송우리문화센터 사역이 지난 한해 동안 발전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2년전 예배를 드릴 적당한 장소를 찾던 베트남인들이 우리센터에 둥지를 틀더니 2003년 들어 안정호 목사님 가정(이인자, 안드레, 하영, 기평)이 전임 사역을 시작하면서 사역이 매우 역동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1일 주일에는 이곳에서 신앙을 갖게 된 4명의 베트남 성도들이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베트남 공동체에서 함께 동역하고 있는 떰 형제는 한나호에서 5년간 훈련을 받고 국내 베트남인 노동자 선교를 위해 한국에 입국하여 전임 사역을 하였으나 후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금은 취업을 하여 직접 돈을 벌면서 자비량으로 ..

송우리 베트남 공동체 소식 [2003년 9-10월]

[2003년 9-10월] 송우리 베트남 공동체 소식  안정호 목사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이번에 세 번째인 VietNam 추석 영성수련회를 개최했다. 베트남 제자 선교회원들과 새문안교회가 연합하여 우리나라를 찾아 온 한국의 베트남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교회에 이미 속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의 신앙훈련을 위하여 준비하였다. 몇 개월 전부터 모여 기도하고 의논하여 미국에 계신 Ai 목사님을 주강사로 모시고 베트남 성도들에게 베트남 본토에 돌아가서 선교사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중심을 맞추었다.참가 인원은 베트남인 120명 정도 한국인 사역자와 봉사자 40명 정도 모두 약 160명이 이번 영성수련회에 참가하였다. ‘사랑의 부르심’이라는 주제, 한국에 와서 신학생으로 훈련 중인 베트남 선교사들로..

송우리 까페 ‘아리랑’ [2003년 9-10월]

[2003년 9-10월]송우리 까페 ‘아리랑’이석봉 선교사 카페가 완성되었습니다. 가상공간의 인터넷 카페가 아닌 현실 공간의 차를 마실 수있는 외국인 노동자 전용카페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쉼터를 폐쇄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아담한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외국인 사역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IMF로 일자리를 잃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쉼터가 반듯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데 요즘은 쉼터 이용이 예전처럼 많지 않아서, 오히려 함께 교제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껴져서 쉼터를 없애고 카페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선교카페 사역은 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국, 몽골 등의 선교지에서 현지인들과 만남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국내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카페를 우..

송우리에 드디어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세워지는가 ? [2003년 5-6월]

[2003년 5-6월]송우리에 드디어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세워지는가 ?이석봉 선교사지난 주일 우리가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오전10시) 송우리에는 이슬람 국가들의 대사들이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국 국기를 달고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송우리에 온 각 이슬람 국가 대사들을 비롯하여 이태원 이슬람 성원의 임원들이 모두 송우리에 모였습니다. 그 동안 모스크 건축을 위해 송우리 지역 무슬림들이 모금(목표 2억 5천)을 했는데 목표액이 거의 모금이 되어 부지를 구입하고 건축을 위해 기공식을 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이슬람 지도자들이 다 모인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이 땅에 온 무슬림 근로자들이 자기 종교의 사원을 짓기 위해 한달 월급 바치기 운동이 일어나 거액의 모금이 ..

회심자를 얻는 길 [2003년 3-4월]

[2003년 3-4월]회심자를 얻는 길이석봉 선교사선교사역은 건축가의 건축하는 것으로 비교 될 수 있다. 집을 짓기 위해 목수는 다양한 연장으로 가득찬 도구 상자를 가져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목수라도 망치나 톱 등 한 두 가지 연장만으로 훌륭한 집을 지을 수 없다. 나는 목수 일을 하는 것을 취미처럼 여기며 좋아한다. 지난 가을에도 사무실을 직접 만들었다. 물론 조립식 판넬로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조그마한 사무실 한 칸 만드는데도 여러 가지 연장이 구비 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작업을 하기 전에 적절한 연장들이 다 있는지 살피는 것은 필수이다. 연장 도구 상자 안에 여러가지 도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나는 그 도구들을 언제 어디에 사용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다. 물론 연장을 능숙한 솜씨로 다룰 줄도 안..

베트남 공동체 소식을 서로 나누며 [2003년 1-2월]

[2003년 1-2월]베트남 공동체 소식을 서로 나누며...채하경 선교사 - 사역자 현황 -새벽마다 신목사와 같이 교회에 나가 신목사의 질병을 위해,베트남 선교사역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주여!! 신목사의 병을 고쳐 주셔서 다시금 베트남 사역을감당케 해 달라고 부르짖으며, 주위분들의 권면으로 약, 침, 생식요법 등……나름대로 좋다는 것은 다 써 보았지만 차도는 보이지 않고 병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그러면서도 신목사가 걸어다닐 수는 있기에 베트남인 심방, 병원방문, 여러 사역에 늘 같이 다녔다.3년이 지났다. 사역을 위해 같이 뛰고 달려도 힘이 드는데 환자를 데리고 삼년동안 같이 다녔으니… 최근들어 너무 힘이들어 혼자서는 더 이상 버틸 영적인 힘이 없었다. 마침내 저희들은 사랑하시는 분들을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