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의료활동
1995. 3. 23
인하대 C.M.F. 서영태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땅에서 나그네 이었음이라”(출22::21)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에 지난 89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하여 지금은 10만명이 남아있고 최근 노동부의 연수고용제 발표에 따라 앞으로 지속적인 인력유입이 더욱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91년 11월 창립된 희년선교회에서는 인하의대 CMF(Christian Medical Fellowship; 한국누가회)를 중심 으로 92년 10월부터 불법체류 근로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기도하던중 의료봉사와 교제로서 그들을 섬기기로 결정하고 93년 1월 30일에 첫 진료를 시작하며 희년진료소를 열었습니다. 점차 진료소에 대한 홍보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진료소의 진료과목, 진료날짜 및 시간, 진료하실 선생님들을 소개한 안내서를 만들었고 희년선교회 간사님들께서 그 안내서를 이용해 외국인들에게 희년진료 소를 홍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진료가 거듭됨에 따라서 환자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으 며 진료소를 찾는 환자들도 그 국적이 점차 다양해졌습니다. 대부분이 카톨릭신자인 필리핀 사람 들 중심에서 점차로 방글라데시, 네팔 국적의 모슬렘들과 힌두교인들이 저희 진료소를 찾았을 때 는 영적인 긴장감과 부담감을 느끼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저희들의 새로운 기도제목이 되었습니다.
진료소를 찾아오는 외국인들
진료를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격주로 주일 오후 4시부터 6시 30분까지 진료를 하고 있습니 다. 한 번 진료할때마다 약 25명 정도의 환자들이 진료소를 찾고 있는데 1995년 2월까지 50번에 걸친 진료동안 총 600명의 환자가 진료소를 방문하였습니다. 질병의 분류에 따른 환자현황을 보 면 위궤양등 소화기 계통의 질환이 가장 많고 그외에 무리한 노동으로 인한 듯 근골격계통의 질 환도 상당수입니다. 그리고 치과적 문제를 갖고 있는 환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환자에 따라서는 더 자세한 검사가 필요한 환자라든지 또는 내과나 치과 이외의 다른 과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내과 진료를 도와주고 계시는 두분의 내과 개업의 선생님병원 (박용준 선생: 광명내과, 최민석선생: 홍익내과)에서 임상병리검사와 방사선학적 검사를 주중에 시행하고 있습니다. 두분의 선생님께서 병원을 개방하시어 무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기시는 모습에 저희 학생들은 많은 도전을 받았으며 미래의 저희들의 모습에 대한 한 좋은 모델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내과 이외에 다른 과적인 문제중에는 이비인후과와 정형외과적인 문제가 많 았습니다. 이비인후과 환자의 경우에는 누가회 선배님이신 이명호선생(이명호 이비인후과)께서 마찬가지로 병원을 개방하시어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동부시립병원의 김용식선생님 을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어 앞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료를 하다보면 다른 과보다도 치과의 경우는 당장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므로 환자들에게는 인기가 좋습니다. 작 넌 처음 진료소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누가회 장단선생님(강서성모병원 치과)께서 혼자서 한번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진료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역시 누가회 김광식선생님(공중보 건의)께서 함께 치과진료를 담당해 주셔서 두분의 선생님께서 합력하여 섬기고 계십니다.
수술환자의 발생
진료소를 시작한지 4달정도 지났을때 저희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헤수사 아벨라(필리핀, 32세)라는 자매가 갑상선 종괴로 저희 진료소를 찾은 것입니다. 자매는 진 료결과 갑상선암으로 진단되어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점과 수 술에 필요한 재정의 마련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이 문제로 기도하던중 크리스챤이신 인하병원의 양운석 부이사장님을 통해 100% 의료보험 적용의 혜택을 받고 수술비용은 기도편지 를 통해 남서울 교회 의료선교팀 및 누가회 선배님들의 재정적인 도움으로 마련하여 저희병원에 서 수술을 무사히 마칠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저희 진료소를 계속 찾 았습니다.
93년 9월에 오씨 살라자르(필리핀, 40세)라는 자매가 자궁근종으로 진단받고 인하병원 산부인 과에서 수술을 받았으며, 10월에는 쿤단(네팔, 25세)형제가 진주종성 중이염으로 12월에는 샤르마 (네팔, 36세)형제가 같은 병으로 인하병원 이비인후과에서 무사히 수술을 받았습니다. 94년에 들 어서도 6차례의 수술이 더 있었습니다. 2월달에는 유경미라는 중국교포자매가 양쪽 하지의 정맥 류로, 3월달에는 갈레 렘이라는 네팔 형제가 치질때문에, 4월달에는 라하만이라는 네팔형제가 다 발성 지방종(11개)으로 인하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또, 현재 존이라는 파키스탄 형제가 오 른쪽 신장결석때문에 체외충격 파쇄석술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최근 아짐이라는 파 키스탄인과 케니스 나이제리아, 홀라 미얀마인, 네팔 여자 타쉬, 지금도 입원중인 얌 꾸말 구릉들 이 연이어 이 입원수술을 받고 치료중에 있습니다.
진료일에는 환자들 뿐만 아니라 환자들이외의 외국인 근로자들도 진료소를 많이 찾고 있습니 다. 그러니까 환자들과 그들을 합하면 족히 50여명의 외국인들이 진료소를 찾고 있는 셈입니다. 그 이유는 희년선교회가 외국인 근로자들이 마음놓고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됐기 때문입 니다.
의료공제회의 필요성 요구
지금까지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이 육신의 질병을 치료받기가 쉽지 않았으며 이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소지하고 있는 의료보험이 없는 것이 큰 이유이며 산업재해보험혜 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이들은 질병이 생겼을 때 일반수가로 직접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하고 치료가 완결되기도 전 에 돈이 떨어진 경우에는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중 일부는 외국인 관련단체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일부의 뜻있는 의사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행스런 경우는 빙산의 일각이며 때로 진료비가 상상 이상으로 많아질때도 있어서 외국 인 노동자, 사업주, 외국인 노동자 관련단체, 돕는 의사들 모두에게 고민이 됩니다. 이제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며 그 해결방법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희년 의료공제회를 기획하여 협력 병원망을 형성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의료공 제회는 국내에 머물면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기본적인 의료문제 해결을 위해 후원단체와 외국인 본인들과 협력병원들이 3중 협력하여 후원하는 체계입니다.
그동안 환자들을 진료해주면서도 어떻게 지속적인 만남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을지에 관한 문제에 봉착하면서 의료공제회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회원에 가입한 외국인 근로자들을 적어도 행정적인 관리와 함께 1달에 1회이상을 접촉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또한 평 일날 진료문제로 찾아오는 외국인들에 대한 대처도 가능해진 것입니다.
앞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의 경제적, 산업적 구조상 계속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되며 따라 서 이 진료는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 진료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한국내에서 이 길을 미리 걸어간 사람이 없었기에 어떤 사 람도 해답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술환자 사례(다음은 복음과 상황 95년 3월호의 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타쉬는 스무 네살난, 예쁘장하게 생긴 네팔인 노동자입니다. 그녀는 네팔에서는 법학을 전공하 는 대학생이었습니다. 남편의 이름은 아난다인데,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던 학생으로서 타쉬와는 1985년에 결혼하여 리자라고 부르는 딸을 하나 낳았습니다. 지금은 타쉬의 친정 부모님 들이 딸을 돌봐주시고 있습니다. 타쉬는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8시간 떨어진 보카라에 한국 돈으 로 약 4만원 가량 되는 세를 얻어 살았습니다.
타쉬가 한국땅을 밟은 것은 93년 9월입니다. 대구에 있는 자그마한 옷 공장에 취직해서 미싱일 을 하였습니다. 고되고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던 때는 행복한 때였습니다. 94년 12월 20일 갑자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배가 아파서 몇군데 병원을 들렀다가 타쉬는 결국 희년 선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타쉬는 희년선교회의 도움으로 인하병원에서 두 차례에 걸친 수술 을 하였습니다. 병명은 장결핵에 수반된 패혈증이었습니다. 결핵균이 위와 장, 식도에까지 번져서 위를 절반이나 잘나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쾌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약물치료 를 받아야 합니다.
병원비는 병원측의 배려로 의료보험수가로 할인을 받았는데도 1백9십만원이 나왔습니다. 타쉬 는 그동안에 모아두었던 돈과 고마운 네팔 친구들이 모아준 돈, 그리고 희년선교회에서의 도움으 로 치료비의 대부분을 갚았습니다. 타쉬는 더 이상 희년선교회의 도움을 받기가 미안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나머지 수술비를 갚을 생각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남은 7십만원이 타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네팔에서의 1년 수입보다 많은 액수이며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몸으로 한국에서 두달동안 일하고 한푼도 쓰지않고 모아야 하는 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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