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 럼/이헌용

거꾸로 가는 외국인 노동자 정책

희년선교회 2021. 9. 9. 20:57

(2008. 10. 20)

 

거꾸로 가는 외국인 노동자 정책 

 

이헌용

 

그동안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차원에서 제정된 외국인근로자 민원처리지침이 있었다. 체불임금, 퇴직금 등의 사유로 진정이나 고소를 제기할 경우 미등록체류 여부를 떠나 먼저 노동관계법 위반을 조사하여 먼저 구제토록 하는 지침이다. 즉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체불된 임금이 있으면 먼저 노동부를 통해 받을 수 있도록 처리를 해주고 사후에 불법체류자임을 출입국사무소에 통지 하도록 배려하는 지침이다. 그러나 지난 620일 노동부는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이 외국인근로자 민원처리지침을 폐지하였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체불임금을 받게 하려면

 

체불임금 등 불이익을 당한 많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이 지침이 폐지됨으로 인해 추방 당할 것을 우려해 노동부에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새 정부가 들어선 후 23만명이나 되는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은 강화되고 있다. 늘 단속의 긴장 속에서 숨어 지내며 일하고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아예 체불된 임금을 포기하여 상담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다. 체불임금을 받으려다가 잡혀 강제추방을 당하느니 차라리 안 받고 말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야기하는 노동부의 지침 폐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할 우려가 커져 노동권을 보호해야할 노동부 본연의 의무를 져버리는 일이라는 것이 외국인 노동자 관련 단체들의 다수 의견이다.

 

얼마 전 질병관리본부에서 본 선교회를 방문하였다. 12세 이하의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과 결혼이주여성 가정 자녀들의 예방접종에 관한 문제였다.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과 결혼이주여성 가정의 아기와 어린이들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예방접종은 극히 미미한 형편이라고 한다. 접종을 하지 않은 이 아이들이 쉽게 전염병에 걸리게 되는데 다른 한국아이들에게 전염시킨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예방접종을 하게할 수 있을까 하는 과제이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들에게 예방접종을 받게 하려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외국인노동자들의 어린 자녀들이 쉽게 예방접종을 받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정부는 NGO나 민간단체에게 예방접종 사업을 위탁할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NGO는 인력과 재정이 부족하여 접종사업을 체계적, 지속적으로 관리하기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업을 수행하는 중 정부의 예산이 축소되거나 방향이 변경되면 이 사업은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바람직한 방안을 제시한다면, 보건소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전국 252개 지역에 골고루 산재되어 있는 보건소를 활용하는 방안은 의료의 질과 관리 측면에서 적합하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의료접근성 측면에서도 또한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예방접종하러 보건소를 방문하면 공무원인 보건소 직원들은 외국인근로자 민원처리지침이 폐지된 까닭에 이들을 먼저 출입국사무소에 신고해야한다는 부담이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있다. 지침을 어겨가며 예방접종을 시행할 공무원이 누가 있을까 ? 그리고 예방접종 후 곧 출국 조처를 당한다는 것을 알고 보건소에 데려오는 부모가 또 누가 있을까 ?

 

정부는 외국인근로자 민원처리지침폐지 방침을 다시 원점에서 재고토록 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만일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증가 현상을 억제하는 방안으로서 이번 지침을 폐지하였다면 더욱 재고하기 바란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증가를 막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다. 작은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더 큰 질서를 무시한 이들로 인해 당하는 고통을 무시하는 정책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그의 자녀들을 두려움에 몰아넣음으로써 발생되는 전염병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더욱 무서운 전염병으로 되돌아 오듯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언젠가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2008.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