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2)
경기침체와 외국인 노동자
이헌용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인구이동의 흐름이 역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향하던 지난 40년 동안의 흐름이 세계경제 위기로 선진국에서 일자리를 찾을 기회가 줄어들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감마저 커지면서 아예 보따리를 싸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경기가 침체될 때 마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 시대에는 외국인노동자가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19일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어 내년 2월까지 신규 도입할 외국인 노동자 수를 3만 4천명으로 확정했다고 한다. 이는 작년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노동부는 “불법 체류자 가운데 2만 9천명이 출국할 것으로 예상돼, 올해 외국인력 증가 규모는 5천 여명 수준”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귀국은 최후의 선택이다. 전 지구적 경기 침체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더 큰 타격을 주기 마련인데 고향에 돌아가 봤자 일자리 구하기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 “2만 9천명이 출국”할 것으로 예상하는 정부의 판단에 큰 걱정이 앞선다. 돌아가려하지 않는 사람을 돌아가게 하려는 방법으로 그동안 정부가 보여준 것은 오직 “힘에 의한 단속과 강제출국” 외에 다른 노력을 보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금년 한 해는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의 단속과 이를 피해 도망 다니며 숨어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의 숨바꼭질이 유난히 심할 것 같다. 언제 잡혀 강제출국 당할지 모를 불안에 시달리며 일하고 있는 22만 여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불법체류자들), 들이닥칠 단속반을 피해 도망치다가 다치기도 할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과 단속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과잉 단속할 출입국사무소 직원들 등, 이 땅에 함께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어내야 할 갈등과 고통으로 인해 벌써 큰 걱정이 앞선다.
이러한 때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경기가 어려워져 문을 닫거나 인원을 줄이는 공장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의 어려움도 시간이 갈수록 증폭될 전망이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경제 불황으로 인해 해고당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허락된 구직 기한은 2개월이다. 이 기한 내에 재취업하지 못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노동부는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중 95%가 2개월로 정해진 구직기간 안에 재취업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머지 5%는 어떠한가? 그 중 극소수만이 귀국하고 있으며 대다수는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11-12월 두 달 사이에 고용지원센터에 재취업 신청서를 낸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1만3천명이라고 한다. 이 중 5%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고 한다면 매 두 달 마다 650명이 자동적으로 불법체류자로 내몰리고 있다는 셈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정부는 속히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재취업’ 전선(戰線)에 내몰린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구직기간 제한 조항’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한시적으로라도 구직기간을 늘려주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구직 기간을 늘린다고 해서 당장 취업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지만 법을 지키려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특히 더 보호해야할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이 회피하는 업종에 일하러 온 외국인 나그네들에게 정부는 최소한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단체들은 이전보다 더 세심하게 이들을 돌보아야 할 것이다. 불황의 시대에 외국인 노동자가 이 땅에 살아남으려면 이전보다 더 열악한 근무조건을 견뎌내야 하며 때로는 불의를 당해도 모른 척 참고 지내야 할 상황이 많아 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인해 모두가 힘들고 예민해 있다. 사소한 일로도 자칫 큰 다툼으로 번지기 쉽고 서로를 향한 인내의 한계 수위는 낮아지고 있다. 내국인의 삶이 피폐해지면 질수록 내부의 적으로 화살을 돌리는, ‘외국인 이주자 혐오증’은 상대적으로 증가하기 쉽고, 문제를 직면하여 대화하고 조정하며 해결하려하기보다는 극단적인 다툼과 분쟁으로 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국에 외국인 노동자 단체들은 정부와 노동자, 사업주와 외국인 노동자,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갈등에 더욱 세밀한 마음으로 지혜롭게 중재하는 화해자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중요한 것 한 가지는, 경기 침체로 모두가 힘겨워 하는 이 때, 외국인 노동자들과 더불어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이 각자 노력해 온 모든 것이 혹, 오로지 부(富)를 축적할 목적으로 달려왔다면, 이번 기회에 자신을 되돌아보아 모든 재물의 주인 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기억하고 탐심으로 얼룩진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계기가 되도록 힘써 기도하자. 하나님을 배재한 모든 열심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게 하시며 외국인 노동자들과 더불어 동일하게 우리 자신도 사역에 과욕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하나님 없이 온갖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과업을 이루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기를 힘쓰자.
그리하여 기득권자와 가진 자들이 부리는 무례함과 폭력 속에서, 그리고 가난한 이방인들이 갖고 있는 분노와 또한 부(富)를 맛 본 후 갖게 될 동일한 탐욕으로부터 우리 모두를 구원할 분은 오직 예수 뿐임을 더욱 힘써 증거하자.
진정한 하나님의 ‘샬롬’ 만이 우리 모두를 이 모든 갈등으로부터 자유케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도록 함께 손 모아 기도하자.
(2009.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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