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로잔대회- 케이프타운 서약 : 신앙고백과 행동 (2010년)
머리말
198개국에서 온 4,200여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2010년 10월 16일부터 25일간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세계복음화를 위한 제3차 로잔대회에 참가했다. 대회의 규모는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에서 참여한 수천 명의 참가자들로 인해 더 확대되었다. 무엇을 위해? 바로 전 세계 교회, 국가, 사회의 모든 영역과 체제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친 모든 것을 증거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케이프타운 서약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이 서약은 로잔언약과 마닐라 선언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의 역사적 연속선상에 있다. 이 서약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성경적 확신들로, 2부는 그에 따른 행동 요령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의 작성 과정은 이렇다. 전 세계(6대륙)에서 초청된 열여덟 명의 신학자들과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2009년 12월 미국 미니아폴리스에 모여 처음으로 케이프타운 서약에 관해 논의했다. 로잔 신학위원회 위원장인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주도한 이 소그룹은 케이프타운 대회에 제출할 최종 서약문의 작성을 준비했다.
2부의 작성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회를 개최하기 3년 전부터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로잔운동의 국제 총무들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제기하고 오늘날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내용들을 가지고 지역별 협의회를 준비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부각된 여섯 가지 주요 이슈들은 대회의 프로그램을 규정하고(i), 그 이슈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한 골격을 구성했다(ii). 이러한 청취 과정은 대회 기간 내내 크리스토퍼 라이트와 로잔 문서위원회가 대회에서 발표된 모든 진지한 시도들과 공헌들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것으로 지속되었다. 그것은 중요한 작업이었으며 기념비적인 노력이었다.
케이프타운 서약은 앞으로 10년 이상 로잔운동의 로드맵 역할을 할 것이다. 일하면서 기도하라는 케이프타운 서약의 예언자적 부르심은 교회, 선교단체, 신학교, 직장의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학생선교단체들로 하여금 그 서약을 수용하고 현장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케이프타운 서약의 교리적 진술들은 교회가 믿는 바를 확증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믿음이 실천과 연결되기 바란다. 우리의 모델인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신학적 가르침을 실천적인 삶으로 구현시켰다. 골로새에서 행한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한 그의 도전적이면서 경이로운 진술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실제적인 가르침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우리는 일치해야 하는 기본적 진리들인 기독교 복음의 핵심과 성경이 가르치고 요구하는 것에 대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일치하지 않는 이차적인 주제들을 구분한다. 우리는 여기서 "범위 안에서의 포용"이라는 로잔의 원리를 따랐는데, 1부에서 이러한 범위들을 명백하게 규정한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과 각각의 준비 단계부터 우리와 함께 했던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과의 협력을 기쁘게 생각한다. 세계복음주의연맹 지도자들은 신앙고백과 행동지침에 관한 우리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해주었다.
복음주의 전통을 따르는 로잔운동을 전개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을 확증할 뿐 아니라, 다른 기독교 전통들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한다. 우리는 케이프타운 로잔대회의 참관인으로 참여했던 다른 기독교 전통들의 교회 대표들을 환영하며, 케이프타운 서약이 전 세계 교회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겸허한 마음으로 이 서약을 제시한다.
케이프타운 서약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는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이 서약을 하나 된 목소리로 거론하고 논의하며, 중요한 문서로 제시하기를 바란다. 또한 이 서약이 기독교 사역의 의제를 형성하고, 공공 분야에서 사려 깊은 지도자들을 굳건하게 하며, 담대한 출발과 협력을 이끌어 내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길에 빛을 비추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더글라스 버드셀(로잔 위원회 의장), 린지 브라운(로잔 국제총무)
서문
예수 그리스도의 전 세계적 교회의 지체로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기꺼이 헌신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로잔운동의 비전과 목표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인 헌신을 확인한다.
이러한 우리의 헌신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우리는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모든 가르침을 전 세계에 증거해야 할 사명을 여전히 갖고 있다. 1974년 세계복음화의 과제를 위해 소집되었던 제1차 로잔대회는 전 세계적 교회에 주어진 결실로 수많은 미전도 종족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했으며, 성경적 복음, 그리고 기독교 선교의 통전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로잔대회는 전 세계 국가들 간의 협력에 참여했던 수많은 지도자들을 포함해 세계복음화를 위한 300개 이상의 전략적인 동반자적 협력 관계를 탄생시켰다.
둘째, 우리는 로잔운동의 핵심 문서인 로잔 언약(1974)과 마닐라 선언문(1989)에 지속적으로 헌신한다. 이 두 문서는 성경적 복음이라는 핵심 진리들을 분명하게 제시하며, 그 진리들을 여전히 적실하며, 도전적인 방식으로 우리 선교 현장에 적용한다. 우리는 이 문서들에 담았던 헌신에 충실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우리 세대와 이 세상 속에서 영원한 복음의 진리를 어떻게 전하고 적용할 것인지를 분별하면서 두 문서에 담았던 헌신을 권고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변하는 실재들
우리의 삶과 사고, 그리고 관계를 맺는 대부분의 삶의 방식들은 급속히 변하고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세계화와 디지털혁명, 정치적 ‧ 경제적 힘의 균형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직면하는 전 세계적인 빈곤, 전쟁, 질병, 생태 위기, 기후 변화 같은 사건은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엄청난 변화에도 환영할 만한 것이 있다. 바로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3차 로잔대회가 아프리카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이것에 대한 증거이다.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최소한 3/4이 비서구권에 살고 있다. 이번 로잔대회의 참석자들의 구성은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 이후 한 세기 동안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 거대한 전환을 맞았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우리는 아프리카 교회의 놀라운 성장을 환영하며 아프리카 형제자매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대회를 개최한 것에 감사한다. 우리는 기독교 선교에 있어 우리 세대가 직면한 변하고 있는 실재들에 응답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전 세대에게 물려받은 지혜와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변하지 않는 실재들
변하는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이 위대한 진리는 우리의 선교에 성경적 원리를 제공한다.
인간은 잃어버린 존재이다. 성경이 묘사하는 비참한 인간의 근본적인 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죄와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래 있으며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존재들이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복음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증거를 필요로 하는 이야기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통치에 관한 것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셨던 변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소망이 있다.
교회의 선교는 계속된다. 하나님의 선교는 땅 끝까지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된다. 이 세상 나라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 새로운 창조를 통해 하나님이 그분의 구속 받은 인류와 함께 거하실 때, 마침내 그 날이 도래할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의 선교는 즐거운 긴장감 속에서 계속되며, 우리 세대를 포함해 다가오는 모든 세대들 속에서 새롭고 가슴 떨리는 기회들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열렬한 사랑
이 선언은 사랑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은 언약의 언어이다. 성경이 말하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은 잃어버린 인류와 오염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과 은혜의 표현이다. 그분의 사랑과 은혜는 다시 사랑, 곧 그 자체로 언약의 주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과 열정적인 헌신을 보여 주는 우리의 사랑을 요청한다. 로잔언약은 복음화를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것은 여전히 우리의 열렬한 마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로잔 언약을 재차 확증한다.
죄와 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파괴되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세계의 모든 차원에 미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쁜 소식으로서의 온전한 복음을 위해 우리의 사랑을.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과 전 역사의 모든 세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았고, 이 세대에 하나님의 선교를 공유하고, 오는 세대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 교회를 위해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으나 그분이 마음으로 품으신 세상, 곧 사랑하셨기에 세상의 구원을 위해 그분의 독생자를 주신 온 세상을 위해 우리의 사랑을.
이와 같은 삼중적인 사랑에 사로 잡혀 있는 우리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믿고, 그 복음에 복종하며, 복음을 나누기 위해, 그리고 모든 열방을 제자 삼기 위해 온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데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한다.
I.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케이프타운 신앙고백
1. 우리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온다.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하나님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 흘러나온다. 세계복음화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우선성을 확신하고, 따라서 믿음으로 그 은혜에 응답하며 사랑을 통해 그 믿음을 드러낸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물로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주1)
A)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모든 율법과 예언서를 지탱하는 처음이자 가장 위대한 계명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자 성령의 첫 번째 열매이다. 사랑은 거듭남의 증거이자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확증이며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증거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새 계명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그들의 선교가 가시화 되며 신뢰할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성육신하신 아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식이다. 사랑은, 바울이 믿음과 소망과 함께 새로운 신자들에게 당부했던 첫 번째 요소이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에 그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주2)
B) 이러한 사랑은 결코 연약하거나 감상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약에 있어 신실하며, 헌신적이며, 자기희생적이며, 강하며, 거룩하다. 하나님은 사랑이기에 그분의 전 존재와 행위, 그리고 그분의 긍휼뿐 아니라 그분의 공의 가운데 사랑은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창조세계 전체로 확장된다. 우리는 이 모든 차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다는 의미이다.(주3)
C)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관점에서 우리의 확신과 헌신을 견고케 할 때 다음과 같은 가장 기초적이면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성경적 도전이라는 과제를 받는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타인과 원수를 포함해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서로 사랑하라.
세상의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하라.(주4)
D) 이러한 사랑은 우리의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지만 이 사랑은 우리가 의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랑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으로, 인내 가운데 강건하고, 겸손 가운데 온유하고, 악에 대해 끈기 있게 저항하고, 고난 당하는 자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죽음에 직면해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에서 모범으로, 영광 가운데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잣대로 제시되었다.(주5)
우리는 이러한 포괄적인 성경적 사랑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확증한다. 예수님의 기도와 명령에 대한 응답으로 이 사랑이 우리의 것이 되길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렇게 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하나님과 서로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를 구현하는 삶을 살아내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려는 모든 노력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한다.
2.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은 주권적인 뜻과 구원의 목적에 따라 모든 것을 다스리는 유일하고 영원한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자신을 성경에서 계시하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하나됨 안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창조주이고 통치자이며 심판자이고 세상의 구세주이시다.(주6) 따라서 우리는 창조세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위치를 기뻐하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순종하고, 그분의 공의를 확신하며,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을 영원히 찬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A)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분을 예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이 세상의 신들, 곧 이방인의 신들을 섬겨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변질시켰다.(주7) 우리는 하나님 대신 맘몬을 섬기며 탐욕과 권세와 성공이라는 우상에 현혹되어 혼합주의에 빠졌다. 우리가 성경에 근거해 판단하지 않고 이 세상의 지배적인 정치적 ‧ 경제적 풍조에 휩쓸려 있음을 우리는 부인하지 못한다. 우리는 종교 다원주의의 압력에 굴복해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타협하도록 유혹받고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예언자들과 예수님의 회개에의 요청을 듣고 다른 신들을 버리며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고 예배하기 위해 돌아가야 한다.
B)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을 다해 그분을 사랑한다. 우리의 선교의 최고의 동기는 그분의 모든 창조세계를 통해 알려지고 그것들로부터 영광 받으셔야 할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이 주도하는 선교와 동일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 되어야 한다.
존 스토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나라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입술이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종종 사용하듯이) 그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특심'(jealous)을 내야 한다. 이 특심이 알려지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기고, 이것이 간과될 때 상처받으며, 이것이 우상숭배로 나타날 때 분노하게 되며, 이것이 하나님께 경외와 영광을 드리길 언제나 갈망하며 단호한 태도를 갖게 한다. 모든 선교적 동기들 가운데 최상의 동기는 (중요하지만) 지상명령에 대한 순종도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할 때 특히 더 강하게 드러나는) 소외되고 멸망 당하는 죄인들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불꽃처럼 타오르는 거룩한 열심이다. 이러한 기독교 선교의 궁극적 목표 앞에 모든 무가치한 동기들은 사라지게 된다."(주8)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슬픔이어야 한다. 공격적인 무신론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고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유일하고 참된 하나님을 대체하고 왜곡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매도하고 거짓되게 알리고 있다. 성경이 계시한 하나님의 모습은 기독교 명목주의와 혼합주의, 그리고 위선 등으로 퇴색되어 버렸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왜곡하는 세상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담대 하지만 겸손하게 하나님을 증거할 것을 요청하신다. 이러한 증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에 대해 강력하지만 은혜로운 증거, 죄를 깨닫고 확신케 하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신실한 믿음에 기초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증거를 위해 우리 자신을 헌신한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분의 최우선적 관심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분의 이름과 말씀은 모든 것 위에 높임을 받으시기에 마땅하기 때문이다.(주9)
3.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사랑할 수 있다.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듯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고 기도하라 말씀한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사랑의 교통 가운데 우리 안에 내주하는 것처럼, 순종을 통해 증명되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만난다.(주10) 이러한 친밀한 관계는 확고한 성경적 근거를 갖는다.
A) 우리는 그분의 백성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사랑한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 아버지, 곧 그들의 존재의 근거이며, 그들을 인도하고 훈련시키며, 그들에게 순종을 요구하고, 그들의 사랑을 간절히 바라며 긍휼 가득한 용서와 끝까지 사랑하는 분으로서 그분을 알았다.(주11)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에게도 참되다.
B)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사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는가! 독생자를 주신 아버지의 사랑은 자신을 내어준 아들의 사랑으로 나타났다. 아버지와 아들은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나타내셨다. 아버지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 예수를 통해 확증된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됨은 바울의 서신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다음의 문안 인사에 반영되어 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영광이 그에게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주12)
C) 우리는 우리가 닮아야 할 성품을 보여 주고 신뢰할 만한 돌봄을 베푸시는 성부 하나님을 사랑한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우리의 삶의 모범 혹은 중심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반복해 제시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선행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가 찬양을 받으신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아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눈으로 자비와 기도와 금식을 실천해야 한다. 아버지가 우리를 용서하시듯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는 근심하지 말고 아버지의 공급하심을 신뢰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에서 흘러나오는 이러한 행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이룬다.(주13)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라는 진리를 무시하고 그분과 우리의 풍성한 관계를 깨뜨렸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에게 나아가며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응답하며, 아버지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고, 우리의 모든 행위와 태도에서 아버지의 성품을 반영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를 인도하는 아버지의 섭리를 신뢰하기 위해 우리의 헌신을 새롭게 다짐한다.
4. 우리는 성자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만 홀로 구세주이며 주님이고 하나님이심을 확고하게 믿는다는 뜻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동등하게 주권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수행한다고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주이며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며 열방을 판단하는 심판자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든 이들의 구세주이시다.(주14)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신적인 동등성과 본성을 공유하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언약적 신앙과 순종, 그리고 섬김을 증거로 자신을 사랑하라 부르셨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순종하며 전파하므로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증한다.
A) 우리는 그리스도를 신뢰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듯이 나사렛 예수가 모든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가져오는 분이며, 이스라엘의 특별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에게 지명되어 보냄을 받은 메시아라는 복음서의 증거를 믿는다.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을 취하셔서 완전한 하나님과 완전한 인간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예수님은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실함과 순종으로 자신의 길을 걸으셨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셨으며,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법을 제자들에게 친히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사역과 기적을 통해 사단과 악의 권세를 제압하고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선포했고 승리를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대신해 모든 형벌과 수치를 당하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온전히 치르셨고 죽음과 악의 권세를 물리치고 모든 피조물을 위한 화해와 구속을 성취하셨다.
예수님은 육체적 부활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신성을 입증 받았고 높임을 받았으며, 구속 받은 인류의 본이 되었고 만물을 회복하셨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주님으로서 모든 역사와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고 사탄과 악과 죽음을 물리치며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실현하실 것이다.
B) 우리는 그리스도께 복종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종이 되어 순종하며 자신을 따르는 제자로 부르신다. "만일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키라."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여, 주여 부르느냐. 내가 말한 것들을 행하지 않느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것처럼 살고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셨던 것처럼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계명을 무시하며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행위이다. 예수님은 화려하고 기적적인 사역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는 많은 사람들을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 하시고 그들을 거절할 것임을 경고하셨다.(주15) 우리 중 누구도 그러한 무서운 위험에서 제외될 수 없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경고에 유의해야 한다.
C) 우리는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고도 궁극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그리스도 한 분만을 통해 세상의 구원을 성취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자로서 나사렛 예수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베드로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한 도마의 신앙을 동일하게 고백한다. 비록 우리는 그분을 볼 수 없지만 그분을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을 얼굴을 맞대고 볼 그날, 곧 그분이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즐거워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는 베드로와 요한의 고백을 한다.(주16)
우리는 오직 순종하며 살 때에 가능한 그분의 가르침을 온 세상에 증거하는 데 헌신할 것을 새롭게 다짐한다.
5.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됨 가운데 성부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함께 성령 하나님을 사랑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선교적 교회에 생명과 능력을 불어넣는 선교적 하나님과 선교적 아들의 영이시다.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증거가 없는 한 우리의 증거는 헛되기에 우리는 성령을 사랑하며 그분의 임재를 기도한다. 죄를 깨닫게 하는 성령의 사역 없이 우리의 설교는 헛되며, 성령의 능력이 없는 우리의 선교는 단지 인간적인 노력일 뿐이다. 성령의 열매 없는 우리의 무기력한 삶은 복음의 아름다움을 결코 반영하지 못한다.
A)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이 창조와 해방과 공의 같은 모든 종류의 섬김을 위해 사람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여 능력을 부어주시는 등의 역사를 활발하게 하고 있음을 본다. 성령으로 충만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자신의 인격과 사역에 인치심을 받을 만왕의 왕이자 섬기는 종으로 오실 메시아를 갈망하며 기다렸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새로운 순종을 위해 그분의 영을 부어주실 시대의 도래를 고대했다.(주17)
B) 하나님은 예언자들과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에 그분의 성령을 부어주셨다.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은 신자들의 삶에 열매를 맺게 하시는데 그 첫 열매는 언제나 사랑이다. 성령은 그의 은사들과 선교를 위한 능력, 다양한 섬김의 사역들로 교회를 충만케 하신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선포하고 제시하며 진리를 분별하고 바르게 기도하고 어둠의 세력들을 물리칠 능력을 주신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박해를 받거나 시련을 당하는 제자들을 강하게 하시고 평안을 주신다.(주18)
C) 따라서 선교에 참여하는 우리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 없이는 목적을 성취할 수 없고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한다. 이것은 전도, 진리 증거, 제자 훈련, 화평케 함, 사회참여, 윤리적 변혁, 창조 세계를 돌봄, 악한 세력을 물리침, 악의 권세에 대한 승리, 병든 자의 치유, 박해와 고난으로부터의 인내 같은 모든 선교적 활동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것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성취된다. 신약성경은 초대교회의 삶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오늘날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기대 속에서 사역하는 교회의 열매와 성장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성령의 인격과 사역, 그리고 능력 없다면 온전한 복음도 진정한 성경적 선교도 없다. 우리는 전 세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성경적 진리에 대한 보다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약성경에서처럼 성령이 아닌 다른 영들을 따르고 예배함으로 성령의 이름을 가장하는 거짓된 시도들이 있음을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와 같은 기만적인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부정하고 이기적인 방법으로 재물을 쌓기 위해 영적 능력을 악용하는 삯꾼 같은 이들의 죄악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어느 때보다 냉철한 분별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보통의 신자들로 하여금 참된 복음을 이해하고 진리 안에서 기뻐하며 거짓된 복음을 분별하고 거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겸손한 기도로 무장한 성경적 설교와 가르침이 절실히 요청된다.
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내가 주의 말씀을 정금보다 사랑하나이다…얼마나 내가 주의 율법을 사모하는지요"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에 우리는 기쁨으로 화답하며 신구약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우리는 인간 저자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성경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한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행위를 주관하는 궁극적이고 유일한 권위로 성경을 따른다. 우리는 성경이 구원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임을 엄중히 선언한다. 우리는 성경을 능가하는 또 다른 계시는 존재하지 않으며 최종적으로 기록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고히 지지한다. 또한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조명하여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인다.(주19)
A) 성경이 계시하는 인격. 우리는 남편이 보낸 편지 자체가 아니라, 남편의 마음을 담고 있는 편지를 사랑하는 아내와 같은 심정으로 성경을 사랑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본성과 인격, 목적과 사역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계시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본원적 증거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기쁨을 누린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B) 성경이 말하는 이야기. 성경은 창조, 타락, 역사적 구속, 새 창조에 대한 우주적 이야기이다. 이 중요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분명한 성경적 세계관을 제공하며 동시에 우리의 신학적 기초를 형성한다. 이 이야기들의 정점은 복음의 핵심을 구성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인류 최대의 구원 사건이다. (신구약성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들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 준다. 하나님의 선교에 관한 이 이야기는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우리의 선교를 주도하며, 마지막 때에 임할 하나님 나라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의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소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인류 전 역사를 통해 전해져야 할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성경의 메시지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성경을 전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문맹 상태에 있는 지역과 전통적으로 구술 문화권인 지역을 포함해 모든 문화와 언어 가운데 성경을 번역하고 반포하며 가르쳐야 할 과제를 성취하는 데 헌신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C)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알아야 할 완전한 진리, 곧 하나님의 뜻을 증거한다. 성경은 거짓되지 않으며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증거하는 모든 것들이 참되고 확실한 진리임을 믿고 성경 말씀에 복종한다. 성경은 구원의 길을 계시하는 데 있어 분명할 뿐 아니라 충분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모든 차원들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기만하고 거부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알려질 수도 없다고 주장하는 상대주의가 많은 문화들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성경을 사랑한다면 성경의 진리 주장들을 수호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모든 문화들 가운데 성경의 권위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드러내야 할 일환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를 고수하는 데 헌신할 것을 재차 다짐한다.
D) 성경이 요구하는 삶. "말씀이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으므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과 야고보는 단지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라고 요구하신다.(주20) 성경은 신자들과 신자들의 공동체를 측정하는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아브라함부터 모세, 시편 기자들, 예언자들과 이스라엘의 지혜자들, 예수님과 사도들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찬양, 그리고 신실한 삶의 기초인 정의, 긍휼, 겸손, 청렴, 정직, 진실함, 순결, 관용, 친절, 자기부인, 환대, 화평케 함, 보복하지 않음, 선행, 용서, 기쁨, 자족과 사랑 등을 포함하는 성경적 생활양식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합당한 삶, 곧 그런 삶을 살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고 너무나 쉽게 말해왔다. 그러나 "변화된 삶보다 복음을 감동적으로 전하는 것은 없으며, 이것만큼 개인적 삶의 모순에 대한 냉혹한 평가도 없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통해 복음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복음의 '빛'을 비추는 삶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치를 나타내야 한다."(주21)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에 헌신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성경적 삶 없이 성경적 선교는 없다.
7.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을 사랑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반에 걸친 그분의 섭리와 공의를 즐거워하며, 모든 피조물과 모든 열방에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 찰 그날을 고대하며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열심을 함께 나눈다.(주22)
A)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사랑한다. 이 사랑은 (성경 어디에서도 명령하지 않은) 자연에 대한 단순한 감상적인 애정이나 (성경이 분명히 금하고 있는) 범신론적 예배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돌봄으로써 나타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사랑의 논리적 결과이다. "이 땅은 우리가 사랑하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소유이다." 이 땅은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그분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주23)
이 땅은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고 유지되고 구속 받는다.(주24) 우리는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속과 상속의 권한으로 그리스도의 것을 남용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상의 원리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이 땅을 돌보고 그 풍성한 자원들을 책임감을 갖고 정당하게 사용해야 한다. 예수님이 온 세상의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이 세상에서의 삶의 방식과 분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모든 창조세계를 포괄하는 것이기에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복음 선포는 창조세계 전체를 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나타내는 복음적 이슈이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지구상의 자원들을 파괴하고 허비하며 오염시키는 데 일조하고 무분별한 소비주의에 대한 해악적인 숭배를 회개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긴박하고도 예언자적인 사명감으로 환경보호의 책임을 완수하는 데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환경보호를 중요한 선교적 사명으로 깨달은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풍성함을 통해 인간의 필요를 채우라는 명령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지한다. 우리는 성경이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적 목적을 선포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총체적 선교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복음이 죄로 인해 깨지고 고통 당하고 있는 개인과 사회, 창조세계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라는 성경적 진리를 명확하게 인식, 이를 선포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개인과 사회와 창조세계 모두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과 선교의 대상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총체적 선교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B) 우리는 이 세상 나라와 문화를 사랑한다. "하나님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해 땅 위의 모든 나라를 만드셨다." 인종적 다양성은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이며, 이것은 죄로 말미암은 타락으로 인한 분열과 적대감에서 해방될 때 새 창조 안에서 보전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이 땅의 모든 열방들을 축복하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족속과 언어와 나라와 백성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반영한다. 우리는 모든 문화들을 포함해 하나님이 축복하기 위해 택하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선교는 토착문화와 언어를 보호하고 보전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 모든 문화 속의 인간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형상의 긍정적인 증거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사탄과 죄의 부정적인 흔적들도 보여 주기 때문에 비판적인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문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깊게 스며들어 그 문화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광채의 충만함이 드러나길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과 죄사함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 나라의 모든 문화적 풍성함과 영광과 탁월함을 보게 되기를 고대한다.(주25)
모든 백성들을 향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인종주의와 자민족 중심주의라는 악을 거부하고, 창조와 구속 안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가치에 근거해 모든 종족과 문화들을 존중하고 존경할 것을 요구한다.(주26)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문화들에 복음을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어떤 종족도 세계복음화라는 지상명령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복음전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흘러 넘친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수단들을 사용하기 위해 시작된 로잔운동 이후 고취되었던 헌신을 새롭게 한다.
C) 우리는 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을 사랑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이 만든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억압받는 자들을 위하고, 나그네들을 살피며,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신다고 말한다.(주27) 또한 성경은 하나님은 그러한 일에 헌신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이 사회의 정치적 ‧ 법적으로 지도자인 이들에게 그러한 책임을 부여하신다.(주28) 그러나 율법과 예언서, 시편과 지혜서, 예수님과 바울, 야고보와 요한이 증거한 대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정의를 실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라는 명령을 동일하게 받았다.(주29)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것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든 것들을 폭로하고 반대하는 행위를 통해 정의를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악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악과 불의를 고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주30)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열정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실패했음을 부끄러움으로 고백한다. 우리는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들과의 연대 책임과 그들을 응원하는 것을 포함해 정의를 촉진하는 일체의 사역에 새롭게 헌신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지속적인 기도로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영적 전쟁의 차원에서 악에 대항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D)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 예수님은 율법의 두 번째 큰 명령으로서 이 계명에 복종하라고 제자들에게 말하고 (같은 장에서) "국외자를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요구를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요구로 심화시키셨다.(주31)
이웃을 향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가운데 복음의 심정으로 모든 사람을 대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웃 사랑에는 타종교 사람들도 포함하며, 우리를 미워하고 비방하며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된다. 예수님은 악의 사슬을 끊기 위해 진리로 거짓을 대항하며, 친절과 자비와 용서의 행위로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항하고, 자기희생으로 그의 제자들에 반대하는 폭력과 살인에 맞서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며 폭력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적인 보복의 유혹을 거절한다. 이러한 불복종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신 본과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된다.(주32) 동시에 고통받는 이웃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의무는 죄를 범한 자들을 징벌하는 데 있어 법적인 지위와 국가적 권위를 갖고 있는 자들에게 적절히 호소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종의 역할을 수행케 함으로써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주33)
E)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세계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인간의 세상과 사탄의 세상으로 왜곡되었다. 우리는 죄악 된 욕망과 탐욕과 오만으로 만연되어 있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듯 변질된 세상의 세속적 가치에 집착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훼손되고 복음의 증거가 부정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한다.(주34)
우리는 타락한 세상과 덧없는 세상의 욕망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온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새롭게 헌신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창조세계와 모든 문화가 구속과 회복을 바라며,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열방들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모든 파괴와 빈곤과 증오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으로 세상을 사랑한다.
8.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사랑한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복음의 사람이다. 우리의 정체성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라는 성경의 기쁜 소식에 대한 우리의 열망에 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땅 끝까지 이르러 그 은혜의 복음을 전하려는 동기로 하나가 된다.
A) 우리는 나쁜 소식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기쁜 소식을 사랑한다. 복음은 인간의 죄와 타락과 욕망의 비참한 결과들에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이러한 죄악 된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고, 서로를 소외시켰으며, 창조 질서로부터 소외되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회개하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과 형벌을 받으며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격리될 것이다.(주35) 죄의 결과와 악의 권세는 인간성의 모든 (영적‧ 육체적‧ 지적‧ 관계적) 차원을 부패시켰다. 이 타락은 인류의 모든 문화와 역사를 통해 문화적 ‧ 경제적 ‧ 사회적 ‧ 정치적 ‧ 종교적 차원 등을 포함해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인간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하나님의 모든 창조세계에 심각한 손상을 주었다. 이러한 비참한 상태에 반해 성경의 복음은 실로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B) 우리는 복음이 말하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우리는 복음을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기쁜 소식으로 선포한다.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예언된 메시아이자 왕이신 예수님을 통해 그분의 나라를 세우셨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땅에 있는 모든 열방들이 복 받을 수 있도록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행동하셨다. 바울은 복음을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고, 묻히셨으며, 성경에 따라 제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베드로와 열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라고 진술한다. 복음은 십자가에서 아들의 모습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으시려 하나님 자신이 못 박히신 사건이다. 이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사탄과 죽음과 모든 악의 권세를 물리치고 결정적인 승리를 하셨으며, 우리를 사탄의 권세와 두려움에서 해방하셨고, 어둠의 세력들의 궁극적 파멸을 확증하셨다. 그분은 모든 장벽과 대립을 불식시키고 하나님과 믿는 자들과의 화해와 사람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셨다. 또한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모든 피조물의 궁극적인 화해를 이루셨고,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 가운데 새 창조의 첫 열매를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세상과 화해시키셨다."(주36) 우리가 어떻게 복음의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C) 우리는 복음이 확증하는 것을 사랑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함으로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함을 받았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죄 용서함을 받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새 생명을 통해 산 소망 가운데 거듭났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와 양자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과 시민, 곧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고 하나님의 처소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 우리는 온전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의 구원이 우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역사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다."(주37) 우리가 어떻게 이 복음의 약속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D) 우리는 복음이 가져온 변화를 사랑한다. 복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주38) 믿음만이 복음의 축복과 확신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구원하는 믿음은 믿음 자체만으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하는 삶을 통해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사랑을 통해 표현되는 믿음이다."(주39) 우리는 선한 행위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창조되었다."(주40)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주41)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은혜, 곧 우리의 구원을 이룬 그리스도의 초림에서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 가운데 우리에게 윤리적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서 만들어낸 윤리적 변화를 보았다.(주42) 바울에게 '복음에 순종하는 것'은 은혜를 신뢰하는 것이자 은혜에 의해 교훈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주43) 바울의 선교적 목표는 모든 열방 가운데 '믿음의 순종'을 일으키는 것이었다.(주44) 이러한 강력한 언약적 언어는 우리에게 아브라함을 떠올리게 한다. 아브라함은 그를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믿음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순종했다."(주45)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와 믿음은 복음이 요청하는 첫 번째 행위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지속적인 순종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을 통해 복음의 믿음만으로 가능한 생활방식이다.(주46) 따라서 순종은 구원하는 믿음의 가장 분명한 증거이자 열매이다. 또한 순종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시금석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주47)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주48) 우리가 어떻게 복음의 능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9.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며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 거하기 위해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사랑하고 선택하고 부르고 거룩하게 하신 모든 세대들과 모든 열방들로부터 부름을 받은 백성이다. 하나님이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리고 완악하고 반역적인 우리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백성으로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자들이 되며…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계명이다. 그러한 사랑은 복음에 대한 순종의 첫 번째 증거이며 세계 선교의 강력한 원동력이다.(주49)
A) 사랑은 하나됨을 요구한다. 제자들에 향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그분의 기도로 연결된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과 하나됨을 위한 기도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다.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당신[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알 것이다."(주50) 복음의 진리는 인종과 피부색, 사회적 지위, 경제적 특권, 정치적 노선 같은 세상의 고질적인 분열의 장벽들을 넘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랑 안에서 하나 될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이들과 같이 분열할 때 복음에 대한 우리의 증거는 신뢰를 잃고 만다.
우리를 분열시킨 모든 것들을 포기하지 못했음을 우리는 고백한다. 우리를 분열시켰던 원인 중 하나로 전 세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극심한 물질적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이러한 불평등은 모든 이들을 위한 성숙한 상호관계와 서로를 돌아보라는 바울의 가르침과 간구와 모순되는 것이다.(주51) 우리는 선교를 위한 우리의 열망을 저해하는 적대적 경쟁을 강하게 비난한다. 우리는 전 세계 교회들이 갖고 있는 선교를 위한 유용한 자원들의 편중 현상에 대해 개탄한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대륙을 초월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성숙한 사랑과 겸손한 동반자적 협력에 근거한 새로운 전 세계적 균형을 긴박하게 촉구한다. 또한 우리는 말로만 서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그리스도의 영광과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서도 이러한 연합을 추구한다.
B) 사랑은 정직할 것을 요청한다. 사랑은 은혜 가운데 진리를 말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과 예수님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했던 이들은 없다. 나아가 언약의 주님에 계속해서 대적하고 태만하며 우상을 숭배하며 거역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그들보다 더 정직하게 이 문제에 직면했던 이들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부르짖었고, 그들로 하여금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회복시켰다. 이와 같은 예언자적 사랑의 목소리가 같은 이유로 오늘날에도 선포되어야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에게 인도해야 할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며 그분의 아름다움을 가리는 우리의 추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퇴색하고 있음을 우리는 말할 수 없이 슬퍼하며 고통스러워한다.
C) 사랑은 연대를 요청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믿음과 복음 증거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는 것을 포함한다. 몸의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고통을 느낀다. 사도 요한의 말처럼 우리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들이다.(주51) 우리는 정보 공유와 중보기도, 영적 ‧ 정신적 지지와 가능한 모든 지원 방법을 통해 전 세계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신자들의 고통에 헌신적으로 동참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동정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깨달은 바를 박해 받지 않은 교회와 나누며 함께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부유함과 자기만족에 빠져 편안함을 추구하는 교회는, 자신의 헐벗음을 깨닫지 못한 채 문 밖에 서 있는 외인 같이 될 수 있다는 예수님의 경고를 잊지 않아야 한다.(주52)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은혜를 통해 모든 죄악 된 장벽을 허물고 열방에서 불러낸 모든 제자들로 하여금 화해의 친교을 나누는 한 가족이 될 것을 요청하신다. 그러한 교회는 성령의 교통을 나누는 은혜와 순종과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러한 공동체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성들과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성품을 반영하고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를 풍성하게 드러낸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명백한 현재적 표현인 교회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구세주를 위해 살아가는 화해를 이룬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사랑한다
우리는 세계 선교에 헌신한다. 세계 선교가 하나님과 성경, 교회와 인류 역사, 그리고 종국적인 미래를 이해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가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화해를 이루신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을 하나 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찬양케 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교를 성취하기 위해 죄와 악으로 파괴된 피조물을 죄나 저주가 더 이상 없는 새로운 피조로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은 메시아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열방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심판 아래 흩어진 모든 열방들과 방언들과 종속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여 새로운 피조물 되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구세주를 찬양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생명과 공의와 평화의 영원한 통치를 위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은 죽음과 부패와 폭력의 통치를 무너뜨리실 것이다. 그리고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세상 나라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며, 그분의 영원한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이다.(주53)
A)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함. 하나님은 자신의 선교에 동참케 하기 위해 그분의 백성들을 부르신다. 열방의 모든 교회는 메시아 예수를 통해 구약성경의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연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과 함께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부르심을 받았고 열방을 축복하고 그들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들과 함께 우리는 죄와 고통의 세상 속에서 거룩하고 긍휼이 넘치는 정의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해 교훈을 받아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속 받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증거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 교회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며, 역사 속에서 변혁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의 선교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를 다루며, 십자가의 구속적인 승리에 그 중심을 둔 하나님의 선교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우리의 소속이며, 우리는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과 우리가 참여하는 선교를 함께 하는 백성들이다.
B) 우리의 선교의 총체성. 우리의 모든 선교적 자원은 성경에 계시된 것처럼 온 세상의 구속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이다. 우리의 복음전도 과업은 모든 열방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알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선교적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곧 죄와 고통과 불의와 창조질서의 파괴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위해 그런 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우리를 보내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선교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가 통합된 형태여야 한다. 복음전도와 세상에의 참여는 하나님의 복음의 온전한 성경적 계시에 의해 질서 잡히고 주도된다.
"복음전도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도록 설득하는 것이며, 동시에 구세주이자 주님이신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이다…복음전도의 결과는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연합, 그리고 세상에서의 책임감 있는 봉사 등을 포함한다…우리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 정치적 참여 모두가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확증한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우리의 믿음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필수적인 표현 방식이다…우리가 선포하는 구원은 개인과 사회 전체를 변화시켜야 하는 통전적인 복음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주54)
"총체적 선교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인 동시에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복음전도와 사회참여가 서로 나란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선포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랑과 회개를 요청하는 것이기에, 총체적 선교 안에서 우리의 선포는 사회적 중요성을 내포한다. 또한 우리의 사회참여는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하는 것이기에 복음전도의 중요성을 갖는다. 세상을 무시하는 것은 세상을 섬기기 위해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세상에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주55)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그분의 교회에 대한 총체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의 모든 선교적 차원에 헌신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회개, 믿음, 세례(침례), 그리고 순종이라는 제자도로 부르며,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복음을 모든 열방에게 전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긍휼 어린 돌봄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힘쓰며 하나님의 피조물을 돌보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능력을 드러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응답과 그분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통해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과 기쁨과 용기를 갖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에 우리 자신을 헌신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과의 이 언약을 갱신한다.
'로잔 운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잔너머 1차 심포지움 (이문식) (0) | 2023.08.30 |
---|---|
로잔대회 (한철호) (0) | 2021.09.13 |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미래를 꿈꾸며 (임왕성) (0) | 2021.09.13 |
역사의 결국은 하나님의 완전한 샬롬입니다 (로날드 사이더) (0) | 2021.09.13 |
제3차 로잔대회 - 온전함과 순종 (이문식) (0) | 2021.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