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대회
1차 로잔대회의 로잔 서약(Lausanne Covenant, 1974)
2차 로잔대회의 마닐라 성명서(Manila Manifesto, 1989)
3차 로잔대회의 케이프타운 서약(Cape Town Commitment, 2010)
로잔은 아는데 그 배경과 역사도 아니?
[247호] 2011년 04월 27일 (수) 16:01:32 한철호 hanchulho@gmail.com
지난해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제3차 로잔대회 후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로잔대회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이 대회가 기독교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한국에서도 로잔대회에 관심이 많다. 많은 복음주의 단체와 개인이 1974년 제1차 로잔대회에서 발표한 로잔언약을 그들의 신앙고백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로잔대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로잔대회를 보고 어떤 한 측면만을 강조하거나, 또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덜 강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평가라고 볼 수 없다. 로잔대회는 마치 기독교 백화점과 같다. 나름의 성격과 경향으로 다양한 물건을 잘 전시하고 보여 주는 종합 백화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로잔대회를 바로 이해하고 평가·적용하기 위해서 로잔대회의 배경을 살펴보고, 다음 호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제3차 로잔대회에 대한 평가와 이를 한국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1910년 에든버러로 거슬러 가보자
로잔대회는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복음주의권 지도자들이 모인 로잔세계복음화대회(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로부터 시작되었다. 로잔대회를 바로 이해하려면 1910년에 열린 에든버러세계선교사대회(Edinburgh World Missionary Conference)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제3차 로잔대회가 2010년에 열린 이유는 1910년 에든버러선교사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910년은 서구 선교가 개척의 시대를 열면서 개신교가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확장되던 시기다. ‘세계선교사대회’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전 세계에서 선교하던 서구 선교사들이 세계 복음화의 과업을 완성하기 위해서 모인 일종의 선교대회였다. 이 대회의 주제는 당시 세계선교동원을 주도하던 학생자원자운동(SVM)의 슬로건인 ‘우리 세대에 세계 복음화를 이루자’라는 주제와 동일한 것으로, SVM의 리더인 40살의 존 모트가 대회의장이 되었다. 이 대회에 참석했던 1234명 중 19명의 아시아인과 1명의 아프리카 대표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양 선교사였다. 왜냐하면 당시 세계 복음화에 참여하고 있던 교회는 서구 교회뿐이었고, 비서구 교회는 선교지였기 때문이다.
1910년 에든버러대회 후 세계 선교의 흐름은 당시의 신학적 흐름에 있던 에큐메니컬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좁은 의미의 해외 선교에서 넓은 의미의 선교로 선교의 흐름이 바뀐다. 이것은 당시 등장한 개방적 신학과 SVM의 영향이기도 하다. 1930년대 SVM의 관심은 해외 선교로부터 사회 흐름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으로 옮겨 갔다. 그 결과 SVM은 젊은이 해외 선교 동원 운동으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 사역이 종결되고 만다. 이런 흐름 때문에 에든버러 운동은 국제선교사협의회(IMC)와 세계교회협의회(WCC)로 발전하면서, 에큐메니컬운동을 만들어 가는 통로가 된다. 그래서 존 모트에 이어서 세 번째로 IMC 총무로 일했던 레슬리 뉴비긴은 IMC와 WCC를 통합하려고 했다. 뉴비긴은 교회의 연합과 선교적 본질과의 연속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교회 연합체로서 WCC에 대한 뉴비긴의 염려는 ‘선교 부재’였다. 그리고 마침내 1961년 WCC 뉴델리 회의에서 IMC와 WCC의 통합이 이루어졌지만, WCC 진영 내의 선교적 동력은 뉴비긴의 기대와 달리 활성화되지 않았다. 대신, 세속화와 인간화 논쟁이 에큐메니컬 진영의 주요 신학적 의제를 형성했다. 호켄다이크(J. C. Hoekendijk)를 중심으로, 교회의 선교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1952년 IMC 윌링겐 회의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말이 등장한다. 즉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선교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개념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철수하고, 기독교 선교의 확장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퇴보하기 시작했다.
한편 1960년 복음주의권에서는 WCC 운동이 온전한 복음전파에 대한 강조보다는 교회의 일치와 사회적 관심에 더 집중하고 1910년 에든버러대회의 원래 정신을 보존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1960년대를 거치면서 칼 헨리, 빌리 그레이엄 등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회복 운동이 일어난다. 당시 복음주의권의 문제의식은 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들이 철수하고, 복음의 확장이 중지되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열린 복음주의자들 중심의 첫 세계적인 모임이 1966년의 베를린세계복음화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복음주의자들은 세계 복음화의 회복이 일어나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고,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해, 1910년 전 세계 기독교 선교사가 모였던 것처럼 세계 복음화를 위한 복음주의자들의 모임을 제안했다. 그 결과 1974년에 스위스 로잔에서 세계 복음화를 위한 대회가 열렸고, 일회적 성격으로 모였던 그 대회가 로잔대회로 발전하면서 복음주의권의 구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1974년 로잔대회의 공헌 두 가지
1974년 로잔대회가 세계적인 관심을 일으킨 이유는 두 가지 결과 때문이었다. 하나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동일한 가치(논리적으로는 복음 전도가 우선한다고 확인했지만)를 가진다는 복음의 총체적 측면(Whole Gospel)을 회복한 일이다. 이러한 신학적 패러다임의 배경에는 존 스토트 신부가 선교의 성경적 패러다임을 마태복음 28장 19~20절(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으라)에서 보기보다는 요한복음 17장 18절(하나님에서 예수님을 보낸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를 세상으로 보낸다)로 보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고, 가난한 자들을 도우셨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가서 예수님처럼 행하는 활동이 선교라고 정의했다. 이 관점에 근거하여 당시 남미 복음주의 학생 운동 리더였던, 르네 빠디야와 사무엘 에스코바 등이 발제한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균형을 통한 총체적 복음 전도에 대한 주장은 복음주의권 교회에 큰 도전을 주었다. 왜냐하면 당시 선교지에서의 선교 실패와 선교사 철수는 서구 선교가 선교지의 상황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만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반성 때문이었다. 인간성의 회복만 강조하는 자유주의 신학과 맹목적 복음 전파만 선교라고 말하는 근본주의 신학 사이에서 방향을 잃었던 복음주의자들에게는 복음 전파의 우선권을 인정하면서도 복음 전파와 사회적 책임의 동등한 가치를 인정한 로잔언약이야말로 어둠 속에서 발견한 큰 빛줄기와 같은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세계선교센터(USCWM)의 랄프 윈터 박사의 ‘새 마게도냐’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윈터 박사는 세계 복음화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한 이유가 국가 단위의 선교를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문화 안에 있는 복음이 다른 문화로 전달되려면 국가 단위 선교 전략으로는 불가능하고, 각 문화를 형성하는 종족 단위로 복음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문화 단위를 구성하는 종족을 분류하고, 그 가운데 미전도 종족을 찾아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미전도 종족 선교 전략’을 제시했다. 이 주장은 선교 운동의 핵심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다양한 논의를 뒷받침하는 신앙고백으로 제시된 ‘로잔언약’은 그야말로 복음주의 교회에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배경이 있는 로잔언약은 지난 40년 동안 복음주의 신학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2차 로잔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복음주의 진영은 그야말로 신학과 선교 전략 발전의 황금기를 맞는다. 각종 회의와 크고 작은 대회가 열려서 복음의 총체성의 구체적인 의미와 적용, 그리고 미전도 종족 선교라는 관점에서 본 세계 복음화의 전략들이 쏟아져 나왔다. 제2차 로잔대회에는 로잔언약을 근거로 발전해 온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를 다시 확인하면서, 당시 세계 변화의 핵심적인 경향이었던 세계화의 문제를 인식하고, 교회적으로는 비서구권 교회의 등장과 카리스마틱 운동을 복음주의권이 수용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한 뿌리, 세 갈래
2010년, 세계 교회는 조금 흥분하고 있었다. 에든버러대회가 100주년을 맞는 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영마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다. 100주년을 어떻게 기념하고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그림을 각자 그리고 있었다. WCC로 대변되는 에큐메니컬 진영은 1910년 대회가 WCC 운동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100주년 기념 대회는 전 세계 모든 교회가 교파와 종파를 초월하여 함께 모여야 진정한 세계 복음화의 장을 열어갈 수 있다는 교회의 일치라는 관점으로 보았다. 한편 랄프 윈터 박사는 에든버러대회가 전 세계에서 사역하고 있던 선교사들의 대회였으므로, 이를 기념하는 100주년 기념 대회는 지금 선교지에서 가장 활발히 사역하는 비서구권 선교사(선교단체 리더)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로잔대회 측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사역하는 세계 복음주의 교회와 선교단체가 다 함께 모여서 세계 복음화 전반을 논의하는 것이 에든버러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2010년, 세 진영은 각기 다른 선교대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신학자들의 모임(2010 Boston Conference)이 하나 더 추가되면서 전 세계 교회는 네 개의 대회로 에든버러 100주년을 기념했다.
랄프 윈터 박사의 주장을 근거로 제일 먼저 2010년 5월에 열린 도쿄선교전략회의(Tokyo 2010: Global Mission Consultation)는 해외 선교단체의 리더들을 중심으로 모였다. 1910년 대회 참석자 대다수가 서양 선교사였음에 반해, 도쿄대회에는 오늘 세계 선교 상황을 반영하듯 참가자의 70% 이상이 비서구 즉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선교지도자들이었고 그 숫자가 1000여 명이었다. 한편 6월 2~6일에 열린 에든버러 백주년 기념 세계 선교사 대회(Edinburgh 2010 Centennial World Missionary Conference, www.edinburgh2010.org)는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각 교파와 기독교 종파를 대표하는 300명의 지도자만 모였다. 복음주의권 교회의 동참을 이끌어 내려고 했으나, 서구 에큐메니컬 진영이 대회 운영의 주도권을 쥐면서, 가톨릭, 동방정교 등 모든 기독교 종파가 교회 일치 차원에서 모이는 일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복음주의권이 빠지면서 모임이 대폭 축소되었다. 반면 복음주의 진영을 중심으로 기획된 제3차 로잔대회는 4000명 넘게 참가해 대성황을 이뤘다. 각기 다른 세 개의 선교대회는 모두 1910년 에든버러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열렸지만, 그 주도적 세력과 신학적․선교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결국 로잔대회는 복음주의 신학이라는 방향성을 가진 다양한 교회와 단체의 신학과 사역이 소개, 논의, 발전되는 복음주의 교회 사역의 백화점과 같은 구실을 한다. 따라서 로잔대회는 어떤 사역의 한 측면을 강조하거나 주장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복음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기독교 사역의 모든 일이 모이고 나뉘는 공간으로 그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시간과 공간이 제한을 받는 열흘 동안의 로잔대회에서 오늘날 기독교의 변화와 주요 주제를 모두 담아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또 대회에서 발표하는 내용이 상호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이번 제3차 로잔대회에서도 대회 기간 내내 각 진영은 자신들의 관점과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복음 전도를 강조하는 측,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측, 젊은이들, 여성 등 모두가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결국 로잔대회는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복음주의라는 신학적 관점에 근거해서 모이고, 나뉘고,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장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해야만 올바르게 평가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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