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잔 운동

다시 로잔을 생각하다 (이강일 2023. 7월)

희년선교회 2023. 9. 1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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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로잔을 생각하다 - 복음과상황

로잔운동 5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제4차 로잔대회’가 2024년 9월 한국에서 열립니다. 1974년 1차 대회로 시작된 로잔운동은 ‘로잔 이후 세계 복음주의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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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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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전도(Evangelism)와 사회 참여(Social Concern)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잘못 생각한 데 대하여 뉘우친다. 사람 간의 화해(Reconciliation)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고, 사회적 참여(Social Action)가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Political Liberation)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복음전도와 사회-정치 참여(Socio-political involvement)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의무(Christian Duty)임을 인정(affirm)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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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개인전도와 사회참여는 19세기까지 복음주의 선교운동에서 구분할 필요가 없는 개념이었다. 영적 부흥이 일어나면 흑인 노예 해방운동이나 노동운동으로도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부에 두 선교 방식은 분리되었고, 각자 상대방을 의심했다. 이 분리를 해결하겠다는 복음주의 진영의 의지 표명이 1974년 로잔에서 비로소 이뤄졌다. 로잔대회는 근본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WCC 산하 세계전도와선교위원회(CWME)가 주최한 1973년 방콕대회에서 정치·경제적 자유와 구원을 동일시하는 경향에도 반대했다.

로잔대회 현장에서는 40대 초반의 남미 복음주의 지도자들인 르네 파디야(Rene Padilla)와 사무엘 에스코바르(Samuel Escobar) 등이 주제 발표자로 나설 수 있었다. 파디야는 ‘복음을 왜 미국식 삶의 방식과 동일시하는가?’ 질문하면서, ‘윤리와 복음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에스코바르 역시 ‘기독교를 서구의 공식 이념으로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며, ‘구체적 가난을 영적 메시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주도하는 500명 규모 급진적 제자도 그룹3)은 ‘전도와 참여를 구분하는 것은 악마적인 일’이라 단언하는 서한 〈로잔에 대한 응답(A Response to Lausanne)〉을 로잔대회 안에서 공개 발표하기도 했다. 존 스토트는 이들의 입장을 인정해주었다. 존 스토트가 세계 복음주의권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평가받게 된 것도 이들의 도전을 잘 받아냈기 때문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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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3차 로잔대회가 채택한 케이프타운서약(commitment)에서 새로운 접근이 등장한다. 1부 10개 항목 중 마지막인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the Mission of God)를 사랑한다’에서는 로잔언약 5항을 설명하면서 ‘미가선언문’(The Micah Declaration on Integral Mission)을 인용하여 이렇게 달았다. ‘총체적 선교사역’(integral mission)에서 선포(our proclamation)는 사회적 결과(social consequences)를 낳고, 사회참여(social involvement)는 복음적 결과(evangelistic consequences)로 이어진다.6) 이는 존 스토트 사역 후계자로 알려진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그가 쓴 《하나님의 선교》에 이 관점이 좀 더 자세히 설명되어있다. 복음전도는 우선적 가치(priority)가 아닌 궁극적 가치(ultimacy)를 갖는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총체적 선교에서 전도 우선성을 주장하면 사회참여는 언제나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7)

그에게 ‘하나님의 선교’란 하나님의 속성이자, 피조계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행동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해야 한다. 이는 교회가 선교의 내용과 영역을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전통적인 ‘교회의 선교’ 논의를 넘어서는 주장이기도 하다. 복음전도가 모든 사역의 궁극적 목표가 된다는 복음주의 전도 입장을 견지하면서, 선교사역의 총체적이고 다양한 접근을 개방하는 효과를 낸다. 마치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수학 난제를 풀어낸 천재 소년의 등장처럼 보였다.

총체적 선교는 항상 전도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고 회개와 믿음과 순종을 요청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이것을 포함하지 않는 선교는 ‘과제를 다하지 못한 것’이고 ‘결함이 있는 것’이라고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강조했다.8) 그는 복음전도의 위치를 우선성이 아닌 궁극성 개념으로 위상을 변경하여 3차로잔대회 주제인 ‘화해’를 자기 영역에서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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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조종남 편저, 《로잔 세계 복음화 운동의 역사와 정신》(IVP, 1990), 15쪽.
2) 앞의 책, 56쪽. 역자는 ‘concern’ ‘action’ ‘involvement’를 모두 ‘참여’로만 번역했으나, 각각 ‘관심’ ‘행동’ ‘개입’ 등으로 더 분명하게 번역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정하다’로 번역된 ‘affirm’도 1차적 의미인 ‘단언하다’로 표현되었다면 원래 의미가 더 선명하게 전달되었으리라.
3) 이들은 1982년부터 ‘International Fellowship of Evangelical Mission Theology’(INFEMIT)이라는 단체로 활동한다.
4) 브라이언 스탠리, 이재근 옮김, 《복음주의 세계 확산》(CLC, 2014), 265쪽.
5) 앞의 책, 267쪽.
6) 로잔운동, 최형근 옮김, 《케이프타운 서약》(IVP, 2014), 61쪽.
7) 크리스토퍼 라이트, 정옥배 외 옮김, 《하나님의 선교》, (IVP, 2010), 399쪽
8) 앞의 책, 4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