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신학아카데미 가을강좌 5회차 변혁적 제자도의 현안에 관한 알 티존(Al Tizon) 교수의 최신작 “ 청년신학아카데미 가을강좌 5회차 변혁적 제자도의 현안에 관한 알 티존(Al Tizon) 교수의 최신작 “계급사회 속의 그리스도(Christ among the Classes) 강의와 해제 및 토론에 대한 소회 강의와 해제 및 토론에 대한 소회
- 문지웅 목사
모처럼 남반부(Global South) 출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화끈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신학과 선교를 항상 ‘미제’ 껄로 수입에 의존했던 우리에게 티존 교수는 미국의 식민지도 경험하고 여전히 자신의 조국이 빈곤과 양극화 속에 있는 것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모국인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섬겼던 경험도 있었고 르네 파딜랴, 사무엘 에스코바와도 스승이자 남반부 선교학자 동지로서 교감도 많았으니 ‘선교적 사상가’(missional thinker)의 면모를 이번 최신작에서 맛볼 수 있었다.
제자도 없는 선교에 대한 심각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다. 교리와 예전을 교회 개혁의 대상으로 여겼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도의 여부가 관건이러면, 이제는 계급화 된 사회 속에서 예수를 따르는 것에 대한 성찰을 한 책이었다. ‘경제적 양극화 속에서 어떻게 예수를 따를 것인가’를 분석하고 그 대안 실천을 다뤘다.
알 티존은 '경제적 제자도'를 개인적 차원에서의 대응과 공동체(교회/사회)적 차원에서의 대응으로 편의상 구별했고 최신작에서는 우선 개인적 차원에서의 총체적 회심(세계관의 회심 및 행동의 변화와 새로운 지향 행위)을 다뤘다. 아마도 차기 저작에서는 동영상에서 언급했던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대응(실천)을 연구할 것 같다.
일만악의 뿌리가 되는 돈(맘몬) 앞에서의 연습된 경건 없이는 교회 다니는 것도, 선교들을 하는 것도 죄다 개뿔이 된다. 왜냐면 은폐된 동기의 진면목이 바로 금전학(金錢學)이고 배금(拜金)에 물든 교회와 그런 교회의 선교는 ‘어찌 저런 일이?’를 과감하게 낳으며 '가관(可觀)의 선교들'을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근대 선교 운동이 교회와 기업의 커플링(난 ‘짬짬이’란 표현 선호) 속에서 상호 공존과 상호 이득의 공생관계로 변질되었음을 지적하는 대목에서 정신이 번쩍들었다(Scott A. Bessenecker, ‘Overturning Tables-Freeing Missions From the Christian-Industrial Complex’를 소개하며 군산복합체의 말 바꾸기로 ‘교산복합체’의 실상을 다루고 있다고 했다)
이번 청신아에서 제작한 알 티존 교수의 동영상은 아마도 남반부 선교학자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하는 것이고 앞으로 더 많이 북미산 신학보다는 제국에 의해 강탈당해 본 자들이 그 원통과 절망을 창조적으로 극복한 멋진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이제는 지역적인 것이 글로벌 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알 티존의 책이 교회에서는 고급 제자도 교재로 사용하면 좋겠다. 설교에서도 각 주제들과 연결되는 결정본문을 갖고 성서의 언어로 담아내도 되겠다. 선교사 훈련 교재로는 안성맞춤이다. 선교가 아직도 '정복형 무찔러 가는' 구습에서 출애굽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돌봄이 선교가 되는 이유, 환대가 선교의 중핵인 것을 알 티존은 ‘성찰하는 실천가’로서 학문적 성실함으로 우리에게 앞으로 상식이 될 교회의 제자도와 교회의 선교 미래를 '예리한 따뜻함'으로 나누고 있다. 한국은 이주민 250만 시대인데, 앞으로 10년 후 이주민 500만 시대가 올지도 모르는데, 한국사회와 교회는 망친 잼버리 대회 수준으로 피상적이고 날림이다.
교회는 ‘먼저 온 미래’의 첨병이고 다음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전시(display) 백성이니, 상아궁을 떠나 이 혼돈과 슬픔의 땅에 ‘이사 오신’(임마누엘) 선교의 하나님을 따르고 사랑하려는 자들일 테니, 그 씨가 있다면 교회든 선교들이든 죄다 바꾸려 할 것이고,그렇게 된다면 교회의 선교는 세상을 뒤집는(변혁하는) 저력도 있을 것이다.
'로잔 운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잔너머 2차 심포지움 (백소영) (0) | 2023.11.29 |
---|---|
순종하는 신앙 (크리스토퍼 라이트) (0) | 2023.11.29 |
왜 로잔인가? (한철호) (0) | 2023.09.30 |
케이프타운 서약과 로잔문서의 선교적 성찰 (김은수) (0) | 2023.09.30 |
단순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복음주의적 헌신 (앨런 니콜스) (0) | 2023.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