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투병중인 강명규 강도사
- 기자명노충헌
- 입력 2000.01.14 12:00
- 업데이트 2000.01.14 12:00
외국인근로자 선교 10년 외길, 식이요법으로 암과 투쟁
한국사회의 인권 사각지대인 외국인근로자 선교를 위해 10여년 헌신했던 젊은 사역자가 암투병중이다. 강명규 강도사(35·성남중원교회), 그는 1991년 총신대신학과(85년 입학)를 졸업한 뒤 당시로서는 미개척지였던 외국인근로자 선교에 뛰어들었다.
그해 희년선교회 창립멤버로 활동했던 강 강도사는 성남지역 공단에서 열악한 노동을 하고 있던 외국인근로자들의 친구로 동거동락하기 시작했다. 그가 활동한 희년선교회는 낯선 한국 문화에 충격을 받고, 이유없이 얻어맞고, 안전사고로 손가락 등을 잘린 후 절망에 빠져 있던 근로자들의 보금자리였다. 그는 근로자들의 안타까운 사정이 해결될 때까지 관공서와 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호소했다. 때론 1주일씩 집에 들어가지 않고 노동자들을 고용한 공장주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공단지역의 매연때문인지 알수 없으나 그는 오른쪽 명치 아래쪽에 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비로소 간암이란 사실을 알았다. 지난해 7월 31일 그는 기독의사들의 도움으로 대수술을 받았다. 간을 1kg 잘라냈다고 한다. 당뇨를 지병으로 가지고 있었음에도 모험을 할 수 밖에 없는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생존이라는 시한부 선언을 내렸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채식위주의 면역요법과 한달에 1주일간 병원에서 받는 대체의학치료다. 통증이 오는 간격이 더디다는 것 외에 몸속의 암이 어느 만큼 치료가 됐는지는 아직 아무도 자신하지 못한다.
강 강도사는 1996년 수원 합동신학교에 입학, 강도사 시험을 거쳐 올해 목사로 안수받을 예정이었다. 생활은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에서 주일 오전 유초등부를 지도한 뒤 받는 사례비와 사모(총신대 신학과 87년 입학)의 교회 사역으로 받는 사례비로 꾸려가고 있다. 경제적 형편 때문에 몸에 좋다는 영약은 구할 엄두를 못내고 현미밥에 채식 위주로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밝게 웃었다. 고난을 겪고 나니 갈라디아서 2장 20절과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이 큰 은혜가 되었다고 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 하나님이 저를 주님의 일을 위해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혼을 애타게 사랑하는 마음을 새롭게 부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허락하신다면 앞으로 암환자를 위한 사역에 도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사모와 6세 2세의 두 아들이 있다.
노충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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