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년공동체/본부

2022년 버마 공동체 사역보고

희년선교회 2023. 1. 6. 19:13

소개

버마 공동체는 미얀마 국적의 버마인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E-9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 노동자들로서 불교도들입니다. 공동체를 담당하고 있는 민뚜 목사는 버마족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절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난 후 버마족을 향한 복음사역에로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M.Div를 마친 후 한국에서 신학수업(아신대 Th.M, 횃불트리리티 Ph.D 과정중) 과 함께 버마 노동자 대상으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내전으로 인해 가족이 지난 10월에 입국하여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담당자 : 민뚜 목사

대 상 : 미얀마 버마족

구성원 : 20 여명

시 설 : 쉼터

사 역 : 한국어교육 오전 10:00 12:00

           열린예배 오전 12:00 13:00

           식사 오후 1:00 2:00

           교제 오후 2:00 5

           상담 수시

 

현황

1. 202121일 발생한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인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미얀마인들(대부분 E-9 근로자)도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국내 도시 곳곳에서 군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는데 버마공동체 회원들도 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2. 쿠데타로 인한 어수선한 분위기로 인해 2021년도에는 모임을 제대로 갖지 못했습니다. 금년엔 한국어 교실을 새로이 개설하여 회원들을 모집하여 새롭게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3. 고용허가제 기간이 만료되어 미얀마로 귀국해야 하는 E-9 근로자들은 미얀마 사태로 인한 한국 정부의 배려로 본인이 원하면 1년 단위의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아 한국에 머물고 있는 회원이 늘고 있습니다.

4. 집 주인의 퇴거 요청에 따라 부평역 인근에 새로운 장소를 마련하여 1127일 이사하였습니다.

5. 민뚜 목사는 횃불트리니티신대원 박사과정을 2023년에 예정이며 지난 10월 미얀마 내전으로 인한 안전 문제와 자발적 등교거부운동으로 인한 자녀교육 문제로 가족(부인과 두딸)이 한국에 입국하였습니다.

 

 

기도 제목

 

1. 구성원 소식

미얀마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후 한국에 와서 상담학을 공부하던 카잉와 자매는 버마 공동체의 첫 열매입니다. 한국에서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며 공동체 멤버들의 한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 매 주일 4시간 이상 한국어를 가르쳐왔던 아름다운 자매입니다. 이 자매의 헌신으로 인해 공동체에는 미얀마 불교도 청년들이 몰려왔었고 자연스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 후 카잉와 자매는 학업을 마치고 미얀마로 귀국하였고 그곳에 한국어 학원을 세워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대학원에서 한국어 석사과정을 하며 공동체에서 지금 예전처럼 미얀마 근로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섬기고 있습니다. 이전처럼 많은 미얀마 근로자들이 공동체로 와서 한국어를 배우며 복음 듣기를 소망합니다.

 

카잉와 자매 외에는 아직 예수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본국으로 귀국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남아 있는 6명의 기존 회원들은 여전히 공동체 내에서 유대관계가 깊지만 아직 믿음이 없습니다. 한국어 교육을 통해 새로이 모집한 5명의 회원도 신앙이 없지만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있으며 모두 공동체를 좋아하여 서로의 유대 관계가 깊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구원하여 주시기를 애통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2. 민뚜 목사 가족 내한

민뚜 목사의 아내와 두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군부 테러군과 지역 PDF(시민방위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 마궤 주 강고지역입니다. 마을은 테러리스트 군인들에 의해 봉쇄되어 의심되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총을 쏘고 있고 매일 마을 근처에서 총소리와 폭탄 폭발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하는 가운데 지내오고 있습니다. 두 자녀들은 시민들의 자발적 등교거부운동과 코로나로 인해 지난 3년간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안전과 자녀 교육 문제로 지난 10월 한국에 입국하여 미얀마에 평화가 올 때까지 잠시 머물고자 하는데 이 길도 쉽지 않습니다. 주의 은혜를 구합니다.

 

3. 모임 장소, Father’s House

집 주인의 퇴거 요청에 따라 급히 임시거처를 마련하여 부평역 인근의 새로운 오피스텔로 이사하였습니다(11/27). 새로 마련된 집의 계약기간은 4개월로서 민뚜 목사 가족들이 따뜻이 겨울을 날 수 있게 하였고 그동안 가족들의 비자 문제, 자녀들 학교 입학 문제들을 해결하며 새로이 사역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미얀마에 있는 사람들이나 한국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내전으로 인해 마음이 많이 황폐해 있습니다. 미얀마를 떠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날 것 같습니다. 민뚜 목사 가족이 거주하는 집에 이러한 사람들을 초대하고 이들이 언제든지 방문하여 쉬어가며 교제를 통해 복음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부모님 집에 온 것 같은 쉼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미얀마에는 다수 종족인 버마족 외에 135개의 소수 부족이 있습니다. 19세기, 미얀마가 영국 식민지하에 있을 때 소수 부족들은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였고, 이에 반하며 버마족들은 기독교를 미얀마를 지배,수탈한 서구의 종교로 배척하며 기독교를 받아들인 소수 부족들과 갈등해 왔습니다. 그러나 버마족과 소수 부족은, 그동안 군부가 이 둘 사이의 갈등을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해온 것을 이번 군부 쿠데타를 계기로 깨닫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근로자로 체류하며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소수 부족인 미조 공동체(KMC)와 다수 종족인 버마 공동체(GMC) 리더가 복음 안에서 교류하고자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할렐루야! 두 공동체가 미얀마의 복음화를 위해, 샬롬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나아갈 기회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후원 계좌:

국민은행 435001-01-352365 )국제민간교류협회

 
 
 
 
 

미얀마 강가우에서 한국으로

 

강가우 는 미얀마 마궤-(Division)의 강가우-지구(District)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수도인 친(Chin) 자치주(State)와 가깝습니다. 20212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에는 매우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저와 두 딸도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1년 쿠데타 이후 테러군에 맞서 싸우는 시민방위군(CDF-Civilian Defence Forces)인 친 방위군이 결성되면서 친 주와 강가우 인근에서 많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시민방위군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테러리스트 군대와 싸우기 위해 미얀마 전역에서 지역별 민중방위군(PDF-People Defence Forces)이 결성되었습니다. 그 중 민중방위군의 대부분은 마궤-도 및 사가잉-도에 있습니다.

강가우 마을은 거의 매일 전투가 일어나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민중방위군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테러리스트 군대의 군인들은 집들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공포에 휩싸인 동네 젊은 남녀들은 집과 노인들만 남겨놓은 채 아이들을 데리고 숲속으로 달아나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군인들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불안하고 두려워집니다. 테러리스트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 중 민중방위군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면 바로 사살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강가우 마을에서의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고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거의 매일, 총소리와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밤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달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쿠데타 이후로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1년을 포함하면 벌써 3년째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두 아이들(물론 이 곳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만)은 미래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은 마을을 떠나 양곤이나 만달레이와 같은 대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대도시에 집이 없기 때문에 강가우 마을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항상 하나님께 내 아이들의 교육과 그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를 강가우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8월 어느 날,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남편이 두 아이와 함께 한국에 오라고 초청장을 보냈다는 소식을 뜻밖에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뻤고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즉시 양곤으로 갈 준비를 하고 우리 가족 셋의 버스표를 예매했습니다. 그러나 양곤으로 가는 버스는 전투로 인해 오직 한 편 밖에 없었고 그나마 언제 출발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속절 없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일주일 후, 저는 버스 기사로부터 출발에 대한 연락을 받았고 우리 가족은 전투 중에 양곤으로의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출발 첫 날, 4시간 30분의 운전 끝에 버스는 아주 작고 가난해 보이는 마을 조그마한 동네 노점 앞에 멈췄습니다. 점심시간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버스는 바로 우리 앞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전투 때문에 멈춘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상황은 매우 심각했고 우리는 전투 지역에 갇힌 것 같았습니다. 그 곳에는 여러 지방에서 온 버스가 밀려 서 있었고 승객들은 모두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버스 기사는 추후 공지할 때까지는 버스가 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승객 모두는 머물고 잘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밤 사이 모기에 물릴 것을 생각하니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어디서 자야 할지, 어디로 잘 곳을 찾으러 가야 할지 막막하였습니다. 아주 작은 마을이었고 집들도 너무 작아서 승객들 모두가 머물기에 충분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집은 사람들로 이미 가득 찼고 머물 곳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야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작은 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오~ 하나님, 한 여성의 도움으로 우리는 감사하게도 숙소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강가우 를 떠날 때부터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투 상황에 길을 떠났기 때문에 옷과 담요를 여유있게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따뜻한 옷과 담요는 없었지만 저와 두 아이는 무사히 밤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집을 떠나 온 첫째 날에는, 먹을 것을 작은 판에 담아 들고 다니는 행상인에게서 먹을 거리를 샀습니다. 그런데 2일 차부터 4일 차까지 지내는 동안에는 인근 마을 사람들이 와서 음식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 작은 마을에서 대기하는 4일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분한 식량을 은혜롭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 마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안전한 여행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셋째 날, 그 지역의 PDF 리더가 머물고 있는 곳에 와서 우리가 전투 지역을 통과할 때까지 안전하게 안내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넷째 날 아침, 드디어 PDF 병사들의 도움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민중방위군 군인들은 우리를 잘 보호하며 존중해 주었습니다. 버스는 큰 도로로 갈 수 없었고 이상하고 험하고 바위가 많은 숲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테러리스트 군인들이 큰 도로에 지뢰를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버스가 통과한 대부분의 마을은 테러리스트 군대에 의해 불탔고 심지어 많은 시체를 보았습니다. 이번 양곤 여행은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6시간여의 버스 운행 끝에, 공터에 작은 천막들이 쳐 있고 많은 사람들이 먹을 거리를 준비하고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를 안내해 주던 PDF 리더가 알려주길, 우리 앞에는 테러리스트 군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오늘 밤은 이 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몇몇 PDF 병사들이 5구의 시신을 운반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 이런 경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경험은 한밤중, 시신을 화장하는 깊은 숲 속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숲속 추위에 따뜻한 불도 담요도 없이, 달려드는 모기와 싸우며 잠을 계속 청하다 날을 맞이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5일 째 되는 날 아침, PDF 리더는 우리에게 출발하도록 했습니다. 버스는 테러리스트 군대가 출몰하는 지역을 피해 마을과 마을, 숲과 숲을 지나 하루 종일 달려갔습니다. 그 날 저녁 늦게, 우리는 파코쿠(Pakokku)로 가는 예사교(Yesagyo) 교차로에 무사히 도착했고 관할 지역의 끝인 그 곳에서 PDF 병사들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마궤 도 및 사가잉 도의 PDF 병사들은 모두 테러리스트 군대에 맞서 싸우는 젊은 영웅들입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삶과 미래, 가족 그리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니었다면 저도 그들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테러리스트 군대가 통행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에 밤에는 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저희들은 파코쿠에서 야영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다음날 6일째 되는 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양곤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양곤 가는 길엔 통과해야 할 검문소가 엄청 많았습니다. 검문소에는 완전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고, 의심되면 아무 질문 없이 총을 쏘거나 체포했습니다. 우리는 6일째 되는 저녁, 양곤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강가우에서 양곤까지의 여정은 하루(20시간)면 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꼬박 6일이 걸렸습니다. 너무 무섭고 생명이 위협받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축복과 보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두 자녀는 930일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였고 그리워하던 남편을 3년 만에 만나 지금 부평의 한 방에 온 가족이 평화로이 머물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여정과 같은 상황으로 저희 고향 강가우로 다시 돌아가라 한다면, 솔직히 못 갈 것 같습니다. 가족의 안전과 자녀 교육을 위해 한국에 잠시 머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022. 10. 28

 

속히 평화가 오기를 기도하며,

부평에서 니니리 드림

 

 

 

* 니니리 씨는 민뚜 목사의 아내로서 군부 쿠데타와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서 지난 3년간 남편을 만나지 못하다가 이번에 두 딸과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하였다.

 

 

2022. 12

 

이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