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환상을 깨우쳤던 수련회
(말씀의 철창에 옹기그릇처럼 부서진 코리아드림)
돈 벌러 온 사람들에게 물질의 허상에 대해서 깨우쳐주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리라. 그러나 대화는 생각보다 자연스러웠고 솔직했다. 이번 수련회는 지난 주일의 연장 선상에서 치루어졌다. 뭘 따분하게 설날, 밖에 나와서까지 화제가 그런 쪽으로 이뤄져야하는가 할수도 있겠지만 열성적인 사람들은 이 기간에 구정 수련회에 부흥회다 해서 기도원에서 숙식하며 은혜받는 사람들에 비하면 약한 편이이라. 물론 외국인, 그것도 므슬림권 친구들에게 모처럼 바람 쐬는 시간에 과하지 않느냐 할 수도 있지만 이곳 사역자의 나름대로의 판단에는 오병이어의 현장 이후의 따르던 무리들과의 만남에서 주님의 지적을 피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거나 주변에 있거나 막론하고 생각의 밑에는 오병이어란 표적보다는 다시 말해 십자가와 부활의 표적보다는 빵과 명예, 기타 표적과는 거리가 먼 것들을 소유하며 감지하려 다가서고 있음에 외국인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이들의 생각은 돈만 벌어가면 꿈이 그냥 자고나면 불어나는 줄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안 먹고 안 쓰고 송금하는 자나 이곳 생활을 마음껏 누리는 자나 다 마찬가지로 공허한 마음은 달래주지 못한다는데 동감인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근본적으로 공허한 인간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란 점을 나눈 기회로 이번 수련회의 주제로 삼았다.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돈이 좋은 놈이냐? 나쁜 놈이냐 ?라고..
돈(물질)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전환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대답인즉 돈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오해하며 착각하고 있었다. 돈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관리자의 마음 가짐에 따라 좋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것이 될수도 있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칼을 예를 들었다. 칼이 강도의 손에 들리면 흉기가 되지만 요리사의 손에 들려지면 생활의 유용한 도구가 되는 것이라고 .....모두가 뒷통수를 맞은 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돈의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일단 돈에 대한 오해의 칼날을 무디어 놓은 다음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왜 방글라가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라고...
돌아가면서 대답인즉
1. 관리들의 부정부패 (대통령 일가) 유숩
2. 종교적인 교만 (알라에 대한 고 자세) 모닐
3. 달란트의 관리부실 (경제관념부재) 모닐
4. 국민의식의 피폐 (대다수 국민이 나쁜 생각) 샤합
5. 국가적 가난의 대물림 (빈익빈 부익부) 알롬.... 개인 경제생활이 그렇듯
6. 현실의 가난을 내세의 보상으로 오해 (현실의 난관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의지 부족)알롬
이렇게 역사적으로 국민의 의식 가운데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경제전문가적인 구체적 대답은 할 수 없노라고 하면서 말씀으로 다가섰다. 성경적인 대안인 어리석은 부자의 예를 들면서 진정한 행복은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노라고.....제시했다. 사실 이 점은 누구도 부인 못하는 상식수준의 진리다. 이점을 강조하면서 이 시간 그 누구라도 하나님이 부르면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허무한 인생의 현주소임을 깊이 생각하도록 환기를 전환시켰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금번 수련회 소요 예산의 내막을 밝혔다. 민감하고 자존심 상하는 부분이지만, 아니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말씀에 준하여 이야기할 때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자세히 밝혔다. 한국교회의 재정은 대부분 십일조에 기인하고 있다. 그 십일조의 일부분이 지금 이 자리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왜 한국교인들이 십일조를 하는지 아느냐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뻔히 못할 줄 알면서... 그러면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방글라 사람들은 몇 사람이나 자기 재산을 알라의 것이라고 믿고 사느냐고?
대답은 거의 100퍼센트 자신이 주인이지, 알라가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곧 이 대답은 자신들의 실상을 그대로 내보인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하면 전혀 신앙이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무신론자들로 이름만 므슬림이란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고 스스로 그렇게 고백한 자리가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나눔의 진리, 평균원리의 부재에 대해서 실제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30여년 전 한국도 미국의 도움을 받아 살았고 그 미국은 지금도 수많은 나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물이 수평을 이루는 원리라고....
물이 수평을 이루는 것은 물의 생리다.
아래로 흐르고 흐르다 막히면 수평을 이루는 것처럼 부자의 돈이 가난한 구덩이와 내를 채우고 나중에는 하나가 되어 수평을 이루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한 일도 또한 그 일을 했다고 누가 칭찬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탐심은 물을 역류시키는 것이다. 역류시키려면 둑을 쌓아야 되고 항상 둑이 터지지 않는가, 염려해야 하고 지켜야 하는 마음의 수고가 필요하다. 바로 그게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모든 병의 원인이 되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 결론은 물이 흐르게 하도록 해야 한다.흘러보내야 한다. 나눠야 한다. 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에 대한 주인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며 나아가 몸을 움직이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 위에 영혼이 있는데 그 영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 영혼을 불러가면 네 마음은 어디에 가 있을 것이며 네 마음이 떠난 네 몸은 어디에 가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자며, 말씀을 맺었다.
그중에는 몸이 뒤틀려 하는 친구도 있었다. 예배 시간 처음부터 아프다고 자리를 같이하지 않으려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그 친구들이 그때 이후 진통을 겪고 난 다음, 지난주는 예배에 참석하기까지 하였지만....
암튼 이번 설 수련회를 통하여 비록 적은 사람이 모였지만 엄청난 변화의 영적 기류가 흐리고 있음은 사역자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기적이 아닌가 생각한다. 수련회 참석한 1명만 제외하고 전원이 공식 모임에 열심이다. 두 명은 아예 스스로 고백하며 다짐을 하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하였다. 부담스럽고 미안할 정도로 목사님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오겠습니다. 좋아하였다. 이번 수련회를 마치고 떠오르는 생각은 작년 말 세례식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수많은 후원 교회와 성도님들이 기도하며 사랑을 베풀어주신 그 사랑이 전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서 두렵고 전면에 나선게 오히려 미안하고 감사하며 고마웠다.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들
세례가 처음이면 성찬도 처음이라는 것을 한국 성도들도 잘 모르기에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은 것으로 안다. 고 손톱만한 빵 한 조각이 뭐라고 목도 못 축일 포도주 한 잔을 가지고 나눔을 차별하는 엄청난 이유를 소개했다.
사실 세례식만 행하지 않았을 뿐 신앙고백과 믿음을 소유했을 때는 이해가 더욱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오해와 차후를 대비하여 만나와 오병이어 십자가와 부활을 연관지어 실물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니까 다음 성찬을 위한 예비 성찬을 실습한 것이다.
성경을 보면 많은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신구약을 연관지어 설명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 어느 시대에는 이런 오해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인육을 먹는 자들이라고 까지 하였다. 그러나 사실 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진정한 크리스챤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성찬을 단순한 의례에 앞서 행하는 행사나 은혜 받는 수단 정도로 생각해서는 아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횟수를 가지고 의견이 분분한데 진정한 의미는 모두가 같으리라 믿는다. 큰 틀에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말씀의 은혜요 체험이라는데 상징이나 기억 이상의 복합적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별히 감성적인 민족이나 백성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영적 각성과 성장의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반대로 이지적인 사람들도 모처럼 다른 방법으로 말씀의 은혜에 다가선다는데 영적환기의 기회가 되리라.
특별히 방글라 민족은 절차, 의식, 집합,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기에 이런 예식에서 얻는 교육의 효과는 크리라 믿어 장로교의 성찬 형태보다는 자유스런 형태의 성찬도 어울릴법한 판단이 든다. 또한 그동안의 복음의 말씀들을 십자가와 부활로 이끄는데 새로운 시각적 교육을 실시함이 필요할 것 같아 예비 성찬을 실시한 것이다.
모두가 처음 보는 것이기에 호기심이 가득했고 말씀에 준한 조목조목의 설명에는 하나같이 이런 배경과 내용에서 비롯되었구나 배워나가는 모습들이 사뭇 진지하다 못해 즐거워했다.
그리스도인을 무식한 시대의 식인종이라 칭하던 우를 저들은 결코 범하지 않으리라. 그 이상 성찬을 사모하며 눈물짓는 그 자리를 가불하여 연상하며 감사와 기쁨의 기도를 올렸다.지금 계획으로는 부활절 예배에 첫 성찬식을 행할까 계획하며 준비하고 있다.
누가 외국인인지 ....수련회 첫날(6일) 나들이 길
사역자가 졸지에 외국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목사님, 5호선 타고 오시면 더 쉽게 빨리 올수 있는데.....
한국 사람이면서 그것도 서울에 살면서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 처음 온 것이 화근이었다.
11명이 갔는데 7-8명은 이곳에 적어도 2-3차례 온 경험이 있었던 것이었다. 차 막힐 것을 예상하고 전철을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 그만 주객이 바뀐 격이 되고 말았다. 행사는 외국인라고 했지만 중국동포들을 위주로 한 프로그램이었고 진행 역시도 인사하는 시간만 거의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각당 국회의원에다 관계자들을 다 소개시키다보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전철 타는 시간만 1시간 이상이다 보니 식사 시간도 지나서 포장마차에서 겨우 떼울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예상한 일이지만 간식은 허기지고 이미 식사를 한 다음에야 공급이 되었다.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고 중간에 복음 전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한국어를 알아듣긴 하지만 저들에게 전달되기에는 언어의 장벽도 환경도 분위기도 그리 가깝지 못했다.
뒤이어 이어지는 오락 프로그램은 그나마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행운권 추첨 시간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박수로 막을 내려야만 했다. 큰 기대를 하고 갔다기보다 연휴 첫날 따분하게 집에서 송우리에서 지내게 할 수 없어서 나들이겸 나온 길이었지만 인도한 사람으로서 미안한 감이 들었다. 더 나은 프로그램으로 즐거운 시간을 갖을 수도 있었는데 생각하기도 했지만 저들은 모를 사역자의 고충 속에서 진행된 일정을 저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알리라 믿어 위로를 삼아 보았다. 다름 아닌 중국동포의 교회는 센타에 식량을 공급하는 공급원이다. 그 곳에서 프로그램에 함께 동참해주기를 부탁해온 터라, 송우리 자체 순서를 마다하고 참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올 때는 저들이 가르쳐준 대로 5호선을 타고 조금은 쉽게 돌아왔다.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며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다행히 다음날에는 이 인원 거의 다 참석했고 몇 명만 교체되어 남은 설 수련회를 편안한 가운데 갖게 되었다.
세례 그 이후
어릴 때 바둑을 둔 경험이 있는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대승 아니면 대패였다. 그런 식으로 바둑을 두면 절대로 실력이 늘지 않을뿐더러 이겨도 져도 서로에게 좋을 수 없다는 것을 매번 느끼면서 바둑알만 잡으면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절대로 그렇게 살 수 없다. 대마가 나 잡으라고 그렇게 호락호락 허리띠를 내어주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가라는 말이 있듯이 참새가 수 십번 두리번거리고는 겨우 한걸음 옮기듯이 심사숙고해서 일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더더욱 주의 일은 말할 것 없이 기도하고 말씀의 응답을 받아 감사와 기쁨, 확신이 설 때 일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작년에 세례식을 갖을 때를 돌아보면 몇 달이 아니라 사역초기부터 그러니까 3년 이상 이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기도해왔던 것이다. 첫 부임해서 예배를 드리고 영적 분위기를 읽었을 때의 기도제목이 3년이 되어서 실천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례 그 이후 1,2월 그러니까 2개월 동안 저들은 세례를 받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갔지만 그러나 남겨진 것은 침과 물리치료와의 싸움뿐이었다.
또한 그날 그 신유의 현장도 세례받은 기억도 점차 사라져 갔지만 필자의 온몸에는 그날 그 기억과 장면이 계속 따라다녔다. 침을 맞으면서 싸우나에서 저린 발바닥을 주무르면서 그 기억을 생각하며 지금껏 지내왔다. 만약 신유의 현장에서 그가 없었다면 아니 그 신유의 현장을 제외하고 세례식만을 가졌다면 하는...가정을 하면서 말이다.
이후 몸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차 나아져 지금은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감사한 것은 그 이후다. 3명 모두 열심은 기본이고 그 3명에 다른 친구들이 붙어 전체적으로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고 있다.
스스로들 말한다. 이제 베트남 공동체처럼 방글라도 활성화될 거라고...그러나 중요한 것은 수가 다가 아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와야 듣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오게 되는 것이다. 소나 말을 물가 까지는 끌고 올 수 있다. 총동원 전도 주일, 할 수 있다. 그러나 먹어야 먹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이 먹고 마시고 있다. 왜 먹고 마시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분명 먹고 마신다. 머잖아 왜 먹고 마셨는지 토로할 그날이 오리라고 믿어 보채지 않는다. 아직까지 그래왔으니까, 어떤 모임이든 조직이든 카운트는 피곤한 일이다. 세례수, 예배인원, 행사인원, 아주 피곤한 일이다.직접 담당하는 관리자는 이보다 더 큰 스트레스가 없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을 동원시키지 않았다. 물론 주님 당시와는 다르지만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떡의 증가) 따랐지만 그보다는 표적(깨라무띠)을 보고, 십자가와 부활의 기적을 보고 와야 할 것이다. 부활 그 이후의 제자들처럼 ...
송우리는 연합의 중요성을 놓지지 않으면서 교회 본연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외국인의 특수한 모임이라고 해서 교회의 본질을 흐리게 하라는 법은 없다. 지금 한국은 영적으로 현실적 선교 지평에서 초대교회의 번지는 복음의 역사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항상 느끼며 붙잡고 싶은 이 사역의 특수성을 순간순간 기억하며 행동으로 옮기고 싶음이다. 그러니까 저들이 언제 송우리를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제나 복음은 급박하고 절실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 물었다, 베트남 청년이 사고 당해 영안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맨 처음 질문이, 그 친구 교회 나왔냐고 .,교회 나오는 그 누나는 세례 받았냐고..
예수 없는 소망보다 더 비참하고 불쌍한 소망이 어디 있겠는가!
살면서 소망을 가져야 하지만 예수 소망보다 더 크고 화려하고 고귀한 소망은 이 땅에 없으리라. 할렐루야!
송우리는 이 소망을 붙잡는 것이 첫째도, 둘째도, 모든 기도의 제목이요, 이 소망을 위해서모든 것을 포기하고 대항할 영적 준비 태세를 갖추는데 온 힘을 모으고 있음이다.
중보기도제목
1. 세례 받은 세 형제들의 신앙과 주변 사람들과 가족을 위하여
샤합(기혼) 알롬(기혼) 셧다 (미혼)
2. 영육 간에 놀라운 은혜와 능력으로 송우리센타를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
3. 송우리센타를 위하여 후원하며 어려울 때마다 기도와 물질로 봉사로 도우시는 후원교회와 기관 봉사하시는 모든 분들을 위하여
(남서울은혜교회, 일산은혜교회, 남서울평촌교회, 산울교회, 화성교회, 염광교회, 아시안미션, 서서울여전도회, 전국여전도회 , 온누리 선교약국(장 명섭) 심상희, 일산은혜교회 송우리목장, 희년선교회, 이레커피, 중계충성교회)
4. 사역자들의 영력과 2008년 계획(년중 행사)을 위하여
사역자: 영적훈련(기도,말씀), 언어훈련(뱅갈어, 베트남어)
5. 이주근로자들을 한국에 부르신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소서
6. 쉼터 마련을 위하여
7. 2008년 각종 년중 행사가 전도에 중요한 접촉점이 될 수 있도록
8. 일과 야간 신학(한국성서 신학대학)을 병행하고 있는 샤합 형제를 위하여
(학업 및, 경제력을 위하여)
9.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 귀국과 실직, 구직등 갈등을 겪고 있는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10. 세례 받은 세 형제들에게 두려움과 걱정이 없게 하시며 셀 수 없는 복을 내려주옵소서
11. 설 수련회를 은혜 가운데 마치게 하심과 지속적인 관계가 이뤄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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