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년공동체/송우리문화센터(2대 정승진 2005~)

특집 : 구도자 교육

희년선교회 2024. 8. 19. 23:00

송우리다문화선교회

외국인근로자교회

( 특집 구도자 교육 )

2024. 08. 10. 24-55호 여름호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솔모루로 98번길 11

대표: 정 승 진 목사

031-543-9201, 010-4325-2077

(www.songwoori.or.kr , simjichurch@hanmail.net)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죽었던 자

(구도자 교육 복음의 진수 = 죄론 )

 

지금은  이러한 기도를 들을 수 없지만 이전에는 많이 듣고 은혜로운 기도인 줄 알고 아멘 하였다 . 그냥 기도는 기도로 알지 뭘 꼬치 꼬치 따지고 말 장난 하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게 한국 교회의 신앙의 수준이요 , 잘 못 가르친 폐해 중에 아주 큰 폐해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와 이미 죽었던 자와의 차이는 비교도 안되고 말도 안된다 . 그런데 성도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생각없이 ..그 이상 그게 뭐가 문제냐 고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도 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다 .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기 전의 상태는 이미 죽은 상태다 . 그런데 아직도 모른다. 물론 신학적인 차이에서 오는 오해나 몰 이해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교파를 떠나서 분명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도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 만일 이 기도가 문제없다면 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가 ?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이라고 기록했어야 했다 . 만일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라고 이해하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

첫째 예수의 십자가는 큰 은혜가 아니다 . 완전 죽은 자나 큰 죄가 아니라 , 기절한 자를 살려낸 자로 고맙긴 하지만 암 치료해준 의사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 그러나 썩어 냄새나는 완전 죽은 자를 살려낸 의사라면 그는 의사가 아니고 창조자다 . 예수는 의사가 아니라 완전한 재창조자다 아멘 ?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는 모든 사람은 다 죽었으니 . 시체요, 냄새나는 주검이라는 말이다 . 그런데 누가 그렇게 생각하고 설교 하고 가르치는가 ? 그러니까 거의 모든 교회와 목사들이 성경대로 이해도 설교도 안하고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그렇게 안하고 못하는가 ? 그 사실이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를 돌려 해석하고 이해 하려 한다 .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와 닿지 않는 것이다 . 그러니까 심하게 말하면  아직 설죽은 상태로 목회 하고 있다는 말이다 . 이런 상태에서는 복음에 대해서 절절하지 않다 . 그리고 긴박성과 절박한 마음이 없다 . 그러니까 죄와 죄의 결과에 대해서 한국 교회는 반만 가르친 것이다. 아니면 죄와 죄의 결과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증거다 . 사람들이 세례 받는 것을 보면 감기 정도도 아니다 . 전혀 감격이 없다 . 세례 주는 자도 그렇다 . 지켜보는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이해가 안 간다 . 그러니까 송우리는 목사 혼자 미친 사람 같다 .아무리 알려주고 설명해도 이해가 안되는 가보다 . 말로는 아멘 이다 .

사실대로 믿는다면 세상이 뒤집어져야 정상이다 , 밭 문서, 아내, 자녀가 문제가 아니다 .세상이 온데 간데 없어야 정상이고 반쯤 정신이 나가야 정상이다 . 그런데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도 절반만 미쳤다. 설 미쳤다. 죽을 수 밖에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 그 정도도 대단한 것이지만 그 정도가 오늘 날 한국 교회의 현주소다 .  이런 사람들이 목회자요 선교사요 , 교회 직분자다 . 생명있는 살아 움직이는 교회와는 상관이 없음이다 . 그러면 죽은 자의 부활의 상태는 무엇인가 ?

동네 북이 되어야 한다 . 이 놈 저놈이 다 치고 다녀도 미친 여자처럼하고 살아야 한다. 얼핏 보면 사람이 아니다 . 그런데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 목사가 조금 자기와 다른 말을 하거나 돈 이야기를 하면 안색이 변하고 다음 주일 교회 안 나온다. 두 번 들으면 교회 옮긴다 .결국 이런 교회는 문을 닫는다. 그래서 너도 나도 다른 말을 하고 돌려 말하다 보니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 그러니까 복음의 기본도 안된 교회가 천지다 . 원죄와 자범죄에 대한 기본 가르침도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설교를 해도 다람쥐 쳇바퀴다 . 오뚜기 . 변한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흰 개 꼬리 삼 년이다 .그리고 이상한 목사가 등장했다고  수군거린다 . 송우리에서 매월 여는 세미나가 바로 이런 부분을 수정하고 복음의 진수를 소개한다는데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이 찾아 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는 배운 대로 하는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필자의 몫이 아니니 할 수 없고 다만 정확한 복음의 진수인 죄와 죄의 결과를 한국교회에 전하고 외국인 사역에 집중하려 함이다 .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4살 아이의 교훈

 

애들은 울고 징징거려야 정상이다. 지난 주일에  애기 엄마가 4살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한 시간 내내 엄마한테 오지 않았다. 그래서 속으로 한주간 엄마가 단단히 교육하고 아이와 약속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예배 시간 내내 나름대로 놀이를 한 것이다. 각종 차, 커피 가 들어 있는 칸칸의 박스가 있었는데 그 칸마다 정수기에서 컵에 물을 받아서 그곳에 부은 것이다 . 그러다 보니 다용도 실 바닥이 물천지요,  칸칸이 들어 있는 차마다 한강에 배처럼 둥둥 떠 있었다.

애들이 조용하면 아프거나 잠을 자거나 거의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애어른이나 길 잘 들여진 애완동물처럼 사육 당한 아이들도 조용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애들은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았다 하더라도 한 시간이면 한 두 번은 엄마를 찾게 되어있다.

무슨 말인가 ? 교회가 커지면 대체적으로 울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자기 할 일을 잘 해서가 아니다. 거의 대부분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 예를 들면 무인텔에서 권사와 상담하느라 아주 조용하다. , 어른들이 징징거리지 않는가 ? 세상에 다른 재미가 있는 것들이 많은 것이다 . 교회 일로 바쁘다고 ? 거의 속음이다, 배 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조용하다. 그러나 배고프고 문제가 있으면 징징(기도)거린다 . 그래서 예수님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니까 대부분 징징거릴 일이 없는 것이다 .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울 일이 엄청 많다. 또한 성도들도 애비 닮아서 울 줄 모른다 . 거의 다 마비 수준이다 . 자기가 하는 짓이 무슨 짓인지도 모르고 몰두해 있다. 4살 아이처럼.. 이게 세상이요 교회다 .

정상적인 아이는 한 시간에 두 세 번은 혼자 놀다가도 그냥 엄마를 찾고 징징 거린다. 왜 심심하다. 그리고 아무리 재미 있는 것도 하다 보면 실증 난다. 그리고 놀면서도 그냥 엄마에게 온다. 그 이유를 자기도 모른다. 교인이 많으면 그만큼 징징거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용히 딴짓 한다. 아니면 아니다.  열 받을 것 까지는 없다. 그러나 거기서 거기요 머리 써서 별이별 모임을 만들어 징징거림을 위장하고 포장 하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일 저지르고 있음이다. 양떼 돌봄이 아니고 거의 본질에서 벗어난 딴짓이다. 그런데 성도들은 주의 일이요, 거룩한 일인 줄 안다 . 이는 성도에 대한 기만이다 .

 

울 줄 아는 것이 겸손이요 장성한 성도의 모습이다. 부모가 볼 때는 60넘은 자식도 애로 보이건만 하나님이 볼 때는 교회 크기는 고려 사항은 커녕 건방지기 한이 없는 작태다 . 왜 인간들이 이 모양인가 ?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머리 속이 비어 있다. 아직 철이 안든 4살 아이다 . 아이에게는 사고가 재미다 . 세상에 사고는 거의 다 18세 이상이다. 지금은 말세라 초딩부터 사고다 . 그래서 주님은 어린 아이 같아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럼 주님이 말하는 아이의 나이가 몇 살인가 ? 세상의 재미, 즉 종이컵에 물을 받을 줄 알면 이미 아이가 아니다 .

한시라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달려 오는 것이 아니고 울며 정신이 나가야 아이다 . 그리고 엄마가 보이면 앞에 웅덩이가 있는지 뱀이 있는지 , 모르고 달려 드는 아이가 진정 예수님이 말하는 아이다. 아멘 ? 나는 그런 아이인가 ? 세상에 그런 아이는 한 명도 없다 . 다 딴짓하기 바쁘다 . 그래서 죄인이고 회개 노트다 . 그래서 돌아가야 한다,  4살 이하로 ... 어떻게 ? 이 찬송이 생각난다 .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그런데 이 찬송 부르면서 딴 생각한다 . 오호라 ! .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 사람이 언제까지 4살 아이로 사는가 ? 죽을 때 까지다. 구제불능이다 .  아멘 ? 그런데 어디다 대고 까부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철 없는 인생들이다 . 그리고 뭐 성역 몇 주년  ? 은퇴 ? 안식년 등등.. 알아서 살면 된다 . 주일 예배 후 제냐라는 4살 꼬마는 필자에게 새롭게 조직신학, 인간론과 죄론과 산상수훈을  상기하게 해 주었다 . 오 주여 ! 오호라 !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한 세상사

-묵상 칼럼-  

 

유다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배우고 익히고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광야 40년처럼 순종의 삶을 배운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것이라면 왜 두번이나 같은 훈련을 반복 시켰을까 ? 큰 죄의 결과는 같지만 보다 디테일한 내용은 순종이다. 그러니까 두리뭉실한 훈련이 아니다 . 더 중요한 것은 계시의 확대와 발전을 보여준다 .

첫째 십계명에 대한 보다 명확한 훈련이다. 그러니까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훈련이다 . 만일 한 눈 팔면 작살 난다는 훈련을 뼈저리게 훈련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잘 안된다 . 원리적으로 못하게 되어 있다 . 그러나 광야 40년은 성막을 통해서 그럭저럭 명맥을 유지한다 . 그러나 바벨론에서는 다윗의 왕의 후손이 나서서 직접 구해낸다는 확대와 발전을 보여주는 점이다. 이 점이 애굽과 바벨론의 큰 차이다 . 이 다윗의 후손인 왕들이 바로 오실 예수의 예표적인 끈 나풀, 인물들이다 . 이 점이 계시의 발전적 모습이요  신구약을 관통하는 구원의 메시지다 .

둘째-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한 신자들의 세상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묵상의 암시가 있다 . 이 세상사는 가정생활과 교회 생활을 의미함이다. 결국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은 철저한 회개의 십자가를 유발시키는 세례 요한의 교회 사역장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요한이나 그의 메시지는 없다 . 그러나 그 70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이다. 만일 이게 아니라면 수박 겉 핥기의 조두순의 만기 출소다. 진정한 성찰과 반성이 없이 만기 채운 확신범이다 . 구도자 교육 받으면서도 도와준다니까, 그냥 시간만 때운 것이 되고 만다는 점이다 .

이런 면에서 바벨론 70년은 완전하고 온전한 회개로의 용광로다. 그 시범 케이스가 다니엘과 3친구들이다.  다시 이를 세상사에 비유하면 아담과 하와의 속죄적인 에덴 밖의 삶이다 . 그 삶에는 희생양이 항상 따랐고 반면에 땀과 해산의 고통이 수반 되었다 . 아멘 ? 바로 그 점을 70년 동안 경험하고 훈련한 것이다. 즉 이들의 훈련장은 바벨론이요 훈련 대장은 느부갓네살이다. 훈련 교관은 애를 낳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억지로 낳았어야만 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명령이다 . 그리고 죽도록 고생해야만 했다.

 

바벨론이 곧 이 세상 삶이다 . 모든 자들은 이 지구란 감옥에 갇혀서 천국 삶의 훈련을 받고 있음이다 . 만일 이 훈련이 없으면 천국에 들어가도 꽝이다 . 지구에서의 훈련이 무엇인가 ? 가정생활과 교회 생활이다 . 먼저 교회생활을 통해서 우리는 통치의 원리를 배운다 . 이 통치의 원리는 질서다 . 즉 하나님, 사람, 인간의 질서다 . 현재 이 교회의 머리는 예수요, 그의 영인 성령이다 . 우리는 성령 묵상 설교를 통해서 영혼이 통치의 훈련을 받는다. 이 훈련은 가히 바벨론 그 이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교회생활이 아니다 . 중구난방 오합지졸 수제비 나라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 그런데 걸레를 모아 놓은 리사이클링 외국인 일터 같다 . 이름만 교회지 신학교에서 배운 교회가 아니다. 이는 목회의 가장 큰 딜레마요 , 숙제요 기도 제목이다 .

가정도 마찬가지다 . 가정 생활은 부부 생활만이 아니다 . 첫째 아비를 통해서 2차 통치를 배운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는 드물다. 그냥 낳아 주신 육체의 아버지일 뿐이다 . 가정의 아비는 소요리 문답이 가르치는 바, 영적 아비를 알고 실천하는 샘플적 대리 하나님이다 .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세상 삶이 가볍다 . 부담이 없다. 심지어 덤비는 세상이다 . 이는 교회 책임이다 . 교회에서 목사에게 덤비는 것을 배웠으니 집에 와서 덤비는 것이다 . 예수 신랑에게 하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으니 남편을 무시하고 가볍게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70년 동안 땡땡이 쳤다는 증거다 . 교회 마당만 밟고 경력만 쌓은 것이다.

바벨론은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철저한 자기 정체성의 확인 하는 기회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감각과 그 감각을 몸에 익히는 기회였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배우고 익힌 것이 무엇일까 ? 그 가운데는 예수와 그의 영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인 것을 보게 한다 그러니까 이들이  오늘 우리에게 있어 예수와 성령에 의지해야먄 하는 영적 자각과 촉발 점을 생성되게 했다는 점이다 .

지금 우리는 이런 여러가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토대가 다 마련되어 있다는데 행복한 사람들이다 . 이제 대입하여 적용하면 된다 . 이게 바로 교회생활이다 .

바벨론은 하나님의 이주 훈련학교다. 이런 면에서 현 교회생활은 천국의 맞춤 이주 학교 생활이다 . 다시 말해 지구에서의 거듭남과 70-80년의 수련회를 온 것이다.  아멘 ?

(예레미야 묵상 중에서 )

 

 

 

기도, 금식, 절박

 

성경에 보면 기도와 금식 중에 나타난 사건들과  사건 이후 금식하고 기도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이에 보통의 경우는 사건을 접하고 집중하여 금식하며 기도한다 . 일전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몸에 이상이 생겨 기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 목사들은 거의 매순간 이런 저런 기도의 부탁을 받는다 . 그때마다 습관적으로 네 기도하겠습니다 하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기도하며 또 몇 차례 기도하는 것이 전부다 . 물론 더 심각한 경우는 집중적으로 기도하기도 하지만 이번 동생의 전화를 받고서 금식하며 기도하기는 근래 처음이다 .

더 이전과 다른 것은 동생이 아주 세게 기도를 부탁하며 뇌물까지 보내왔다. 뇌물은 십일조다 . 이전에도 십일조를 언급해서 단칼에 거부했지만 최근에는 감사헌금 정도를 보내 왔다 . 십일조는 출석 교회(하나님) 특히 목장 (선교와 전도)과 목자 (교육과 구제)를 위해서 헌금 해야지 , 이는 기본이라고 가르쳤다 . 본교회 목사님과 구역식구들에게 알려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기본일진에 왜, 오빠인 교회와 목사에게 십일조를 내면서 기도를 부탁할까 ?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에 본인이 생각할 때는 절절한 것이 분명했다.

만일 우리 성도중에 누가 이렇게 절절하게 기도를 요청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 중요한 것은 기도의 능력을 앎이다 . 십일조, 기도 부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보 기도와 기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다 . 그런데 이상하게 피 붙이라 그런지 아니면 십일조 약발인지 몰라도 , 순간 주일인데도 금식 해야겠다는 감동이 왔다. 금식이랄 것도 없이 주일 아침에 미숫가루, 우유, 계란, 과일 정도인데 그 정도 중단하고 동생의 절박함에 부주 하려 하나님께 의뢰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 정도다 . 

기도의 부탁이 지나가는 소리처럼 하면 지나가는 소리로 기도한다 .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물 부스라기라도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구걸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이미 부도난 기도 부탁이다 . 기도는 응원이나 위로, 인사 치례가 아니다 . 목숨 거는 결단이다 . 그러니까 기도 부탁하려면 제대로 알고 해야 한다 . 차라리 그냥 입다무는 것이 훨 낫다 . 그런데 언제가 부터 기도 부탁이 남발이 되어 끄떡하면 기도 부탁이다 . 또한 무책임하게 하고 대답한다. 왜 안 할 수 없고 지금까지 그렇게 배워 왔고 습관화 되었으니까 …..그리고 서로 하는 말은 생각날 때 기도해달라고 한다 . 해도 되고 아니면 아니고 …. 물론 기도 부탁하지 않아도 생각이 나 기도하는 경우도 있다 . 그런 일상적인 기도 말고 …. 금식하며 기도하는 중에 나타난 문제에 대하여 그리고 이 일은 죽자 살자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해야 하는 경우를 두고 볼 때 .

도대체 기도의 삶이란 무엇인가? 365일 년중 무휴기도 ? 매일 기도 ? 이번 같은 경우 ? 매번 상시로 부탁 받는 기도 ? 기도를 쉬지 말라 ? 기도를 쉬는 죄를 짓지 말라 ? 다 의미가 있고 새길 말씀들이다 . 다만 기도를 왜 누구에게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 기도는 던지는 것이 아니다 . 대화다. 기도는 공중에 쏘는 것이 아니다 . 한풀이나 떼를 쓰는 것도 아니다 . 성경에 부르짖으라 , 금식하고 기도하니 생명이 연장되었더라 다 맞는 말이요, 성경에 나온 내용이다. 그러니 기도의 사항마다 다 다르다. 뜻도 목적도 상황도 다 다르다. 되나 못되나 기도 부탁 말이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 목자와 상담하라 . 아멘 ? 그 외는 당신을 모른다. 그런데 한국교회와 일반적인 상황은 그냥이다 . 대책 없는 한국 교회다 .

기본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함이다 . , 동생을 위하여 기도하는가 ? 목사가 말이 많다고 ? 알아 들을 만 하면 말한다 . 그러나 알아 들을 만한 수준이 아니면 그냥 복을 빈다 . 아플 사람은 아파야 한다 . 고생할 사람은 고생해야 한다 . 낫고 치료 받는 것이 다가 아니다 . 그게 무슨 목사의 성도 (의뢰자, 약자) 에 대한 태도냐 고 ? 그래서 무턱대고 기도 부탁하면 안된다 . 따지지 말고 그냥 하나님이 아니까 부탁하라고 ? 목사가 아니면 그냥 해도 된다 . 그리고 쌍방 같은 처지다 . 그러나 목사는 성령의 하인이다 . 보면 안다 . 목사는 괜히 세운 사람이 아니다 . 정신차려야 한다 . 목사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이런 수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냥 같이 간다 . 같이 2천년 동안 생각없이 왔다.  그래서 할말이 없음이다 .

 

모든 문제와 질병은 우연이 없다 . 다 이유가 있다. 새상 의사들도 질병의 원인을 다 안다. 그리고 무슨 문제인가 묻고 치료를 시작한다. 그런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턱대고 주여 삼창하고 합심기도 하자고 …? 물론 그럴 일도 있을 수 있다 . 그러나 매사를 그런 식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햇갈릴 것 같다 .  잘 모르면, 그냥 본 교회 목사님과 구역 식구가 최고다 . 그 이상은 알아서 할 일이지만 ,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해야 그 다음 이야기가 된다 .

소돔과 고모라, 멸망할 예루살렘 성의 장래를 생각하며 기도하신 예수님, 밥이 넘어가지 않으셨다. 금식할 날이 오리라 , 금식을 위한 금식은 진정 금식이 아니다 . 그래도 의미가 있다면 하면 된다 그 결심과 정성 시도도 매우 중요하다 . 그래서 바리새인 보다 낫지 못하면 입을 다물라고 하셨다. 바리새인 금식과 기도는 기본이다 . 그러나 완전하게 하려 함이다 . 그게 바로 앞에서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함이다 . 죽을 자는 죽어 의를 이루고 살 자는 살아서 그의 나라 통치를 받을지어다 . 고침 받고 자기 멋대로 살면 차라리 죽은 만 못하다 . 고침 받은 9명의 문둥이들처럼 ….주여 삼창이 다가 아니다. 합심기도가 다가 아니다 . 우리나라 통일기도 ? 왜 통일 되어야 하는가 ? 꼰대라고 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라 ! 통일의 이유를 대라면 ? 정신차려야 한다 .

그분이 어련히 알아서 70여년 분단 시켰으리 ….큰 영감이 없는 사람이 봐도 아니다 . 아닌 것을 요구하면 , 답답할 뿐이다. 담배 사 피우고 술집 갈 것 뻔히 아는데 용돈 줄 아비가 있으랴 탕자처럼 뺏어 가면 몰라도

기도는 강탈이 아니다 . 문등이 짓무른 손으로 겁주는 것이 아니다 . 가슴이 아파 식음을 전폐하는 속 울음 , 통곡 , 절절함 , 절박함이다 . 영혼의 신세를 알고 울 줄 아는 사람의 고통이 기도다 . 노아 홍수때의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오버랩 되어 터져 나오는 눈물이 기도다. 그냥 한순간이 아니라 석 달 열흘 끊이지 않는 눈물이……자고 나도 먹어도 밖에 나가 보이는 것은 다 허우적 거리는 영혼들의 모습을 보며 속터짐이 기도다 .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 자기 신세도 모르면서 기도 하라니 한다면 ? 인터넷 개통도 안 되었는데 카톡 하라고 ? 너의 주민번호, 세례 번호가 어떻게 되는가 ? 언제 , 누구한테 세례 받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 줄리 만무하다. 오빠 내 주민 번호가 이래 구원의 확신과 거래 실적이 있어야지 대화가 된다 . 그리고 어느 정도 점수가 나오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는지소견서 써내야 한다 . 그러니까 고침 받고 무엇을 하려는지 ….자기 의견, 마음을 보여야 한다 . 당신은 왜 그렇게 복잡하냐고 ? 그럼 의사, 목사 하면 된다 . 성경과 성령님을 우습게  자기 수준에서 보면 절단 난다. 기도는 성경과 성령과 함께다 .묵상과 설교 없이 질러 대면 억지 부리는 아이나 겁주는 문등이다. 아멘  ? 그러니까 묵상을 통해서 왜, 이 질병(문제)이 왔는가,  먼저 뜻을 구해야 힘이다 .그러나 대부분 모른다.  그럼 가르쳐 주면 ,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 무슨 말인가 ? 교회는 이렇게  살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다 . 죄의 가리움을 받고 수백만 가지 죄의 증상을 용서 받기 위함이다,  평생 …. 아멘 ?

 

 

✝️우리가 나으뇨 ? ✝️

●정오의 묵상 (예레미야와 바울의 죄론) 

 

12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백성은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네가 당한 부상은 고칠 수 없다.

13 네 아픈 사정을 들어 주고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네 종기를 치료할 약도 없으니 너는 나을 수 없다.

14 네 친구였던 나라들이 모두 너를 잊었고, 다시는 너를 찾지 않는다. 내가 너를 원수처럼 쳤고, 무서운 벌을 주었다. 이는 네 죄가 너무 크고 허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30 )

 

👉예레미야는 실제 인간들의 집단인 유다의 죄의 참상을 직접 보았고 경험한 사람이다. 대신 바울은 예레미야가 말한 죄의 실체를 갖고 산 사람으로서 죄의 심각성과 그 죄의 확산의 과정과 현상과 결과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성경을 기록하였다. 이 두 사람이 말한 죄는 한마디로 모든 인간은 구제불능이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오늘 아침 묵상을 통해서 인간 말종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 그러나 이 두 사람에 비하면 순화된 표현이다 . 예레미야는 개와 돼지라고 표현했고 바울은 구정물통 , 정화조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죄의 괴수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필자의 표현을 과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 그 이유는 그 자체의 표현이 틀린 것이 아니고 당신이  예레미야와 바울이냐는 말일 것이다. 지당한 의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표현한 것이지 의롭고 말종이 아니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

 

👉이 두 사람의 말을 먼저 보자 .

예레미야는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여기 만물은 일체의 생명(인격)이 없는 쓰레기들을 말한다 .

이에 반해 바울은 할 말이 많다.  ? 자기가 직접 경험했기에 메모 없이 줄줄이 써 내려가는 것이다.  물론 성령의 감동에 의한 것이지만 ….그게 아래 로마서 3 9-18절이다 . 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바로 이게 나와 여러분이다, 유대인들만 아니다 . 아멘 ?

 

✝️ 정오의 묵상으로 아침의 예레미야의 유다에 대한 진단에서 이 죄론 , 다시 말해 유다의 정체성 지금의 나 , 이미 세례 받은 분들은 자신의 정체를 정확하게 돌아 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 그런데 왠지 인간 말종 , 쓰레기 , 개와 돼지란 표현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고 영 아니란 생각이 드는가 다. 왜냐 ? 처음 세례 받을 때 이런 배움과 진단의 절차가 없었던지 심각하게 느끼지 않은 상태에서  영접하지 않았기에 생기는 자연 현상이다 . 더 자세하게 말하면 내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증거다. (신학적인 차이라면 할 수 없지만) 아침에 입이, 나온 이유가 바로 이 말이다 .

👉그러면 오늘 이 시간으로 해결되냐 ? 절대 그럴 수 없다 . ? (1-2=신론)과 뒤( 4-16)  교회론)다 짤라 먹고 이 부분만 받아 들여서는 나는 믿고 혹 구원의  반열에 설지 몰라도 전도는 요원하다 . ? 앞 뒤가 없기 때문이다. 앞 뒤가 있어도 전체적으로 바울 그 이상 열린 계시의 확인이 없으면, 가운데 도막만 떼어 먹고는 자기는 물론 자녀나 부모 ,가족조차 돌 볼 수 없다 .  결국 왜 세례 받았는지, 왜 사는지 무개념이다 .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사명이 있고 때가 있다고 그 나쁜 놈의 작당에 위로 받고 놀아난다 .

👉더 큰 문제는 이 죄론의 정리가 성경의 기준에서 미달하거나 이탈하면 영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신앙의 진보를 기대할 수 없다 . 그래서 아주 예민하게 이 부분을 항상 깊게 다루어야 한다. 설사 안다 해도 계속 지적하고 알려주는 자(목자)가 없는 상태에서 문제 () 가 발생하면  급속하게 순간 영적인 속도가 떨어진다. 그러면 뒤차가 와서 박아 버린다 . 곧 파멸이다, 누구나 ….

●이렇게 신앙의 상태 변화나 진보는 죄의 민감도에 따라 달라진다 . 요즘 장마인지라,  밖에 나갈 일도 별로 없는데 로마서를 다시 읽고 눈물의 선지자가 들려주는 예언의 말씀을 소처럼 다시 깊이 묵상 (되새김질) 하며 복된 오후, 남은 하루, 7-8월이 되길 바랍니다 .

 

 

구도자 교육 필요한가 ?

 

복음은 예수 십자가만 전해서는 전인적인 거듭난 삶이 안된다는 것을 이 번 교육을 통해서 다시 확인하고 구도자 교육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오해 할 수 있는 이런 결론을 스스로 내리게 되었다 . 25- 30분 설교는 복음의 이해나 보충은 될 수 있지만 복음은 아니다 . 아무리 설명을 잘하고 논리적으로 피력한다 해도 2-3시간 가지고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 . 복음에 대한 알기, 궁금증, 호기심은 불러 일으킬 수 있지만 그 정도는 가지고는 영접이란 말은 조금은 어설프다는 확증된 사례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면 그 모든 교육과 설교가 잘 못된 것인가 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 문제는 연결 고리가 매끄럽지 못하고 설명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접으로 진전 되었다는 말이다 . 이게 무엇이 문제인가는 평생 신앙생활과 연계 되어 있다는데 목사는 물론 성도들에게 엄청난 파장을 가져 온다는 점이다 .

 

말해 바이러스 상태에서 전혀 다른 프로그램으로 작동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산다는 사실이다. 죽은 것과 죽을 수 밖에 없음도 그 한 예요 . 다른 예로 같은 미움이라도 신자들의 미움의 유전자와 불신자의 유전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 도대체 이런 발상도 처음이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 는 더더욱 해석은 물론 적용이 불가하다.  이 점이 죄론의 부재요, 원죄와 자범죄의 조직신학 일반론의 부재에서 온 무지요 .그 무지의 피해가 거의  2천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채 묻혀 온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교육은 목사는 물론 모든 성도, 장로 ,권사 ,일반 성도들이 반듯이 들어야 한다고 이구동성 교육 수료 후의 후기다. 그러니까 지금껏 죽어도 순종하지 않던 성도들이 신앙의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 단적인 한 예다.  그 한 꼭지의 텃치는 바로 죄론이다 .  그럼 그것 만인가 ? 아니다. 그리고 그 텃치 부분인 몇 분의 교육이나 대표 성경 구절을 알고 이해하고 잘라 먹으면 되는 일인가 ? 그것 붙잡고 필자와  똑같이 복사해서 한다 해도 안된다 .   무엇이 문제인가 ?

신론에서 죄론 기독론 성령론으로 자연스럽게 정해진 시간에 연결되지 않으면 증발된다 . 효과가 반감되거나 사라진다 . 신론의 창조론에서 꼭지를 모르면 교회론에서 꽝이 된다. 그래서 답답하다 . 이 큰 사명과 숙제를 송우리란 조그만 외국인 교회에서 감당하고 있음이 한편으론 은혜요 기적이다 . 아직 깊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시작하게 하신 분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하여 나가실 지 다만 물이 흘러가듯 순종하며 나아가고 있음이다. 일전에 7월 둘째 주와 셋째 주에 영혼의 파도가 크게 일었습니다 . 우리 성도의 구도자 교육과 13차 목회자 구도자 교육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  

 

 

 

송우리 다문화 선교회기도의 제목*

  기도의 내 용
지속적인
금년
기도제목
2024년 지속적인 밧줄제목입니다.
(1) “사도신경 대로 믿고 주기도문대로 살자” 표어를 생활화하게 하소서 !
(2) 센터와 쉼터 , 교회 운영에 필요한 적절한 예산이 채워질 수 있도록…
* 각 교회와 기관의 후원 예산 조정으로 인하여 월 100만원 년 1200만원의 예산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 긴축과 운영비, 사역비를 조정하여 현재 운영하고 있습니다 .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도록 기도바랍니다 .
(3) 본국에 돌아간 성도들이 원하는 때에 속히 돌아 올 수 있도록…(릴랴 부부, 비탈리 딸) 
(4) 모든 성도들이 묵상 훈련을 통해서 신앙이 한 차원, 변화, 성장될 수 있도록
(5) 한국 교회에 목회자 구도자 교육을 통해서 교회 본질 회복에 기여하도록
( 2 8시간 교육 )  14차 목회자 구도자 교육 예정 (8 19-20)입니다 . 
 3분기
기도제목
3분기 사역을 위하여 기도의 밧줄을 함께 당겨 주세요 (8-10)
(1) 전교인 성경읽기( 성경개관 )와 묵상훈련을 통하여 성장과 변화된 삶을 살게 하소서
( 전교인 , 가족 , 해외 성도들 ( 중앙아시아 , 네팔, 방글라 , 캄보디아 형제,자매들)
(2)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의 생활화를 통해서 교회의 체질이 변화 되도록 ..
(3) 구도자 재교육을 받은 형제와 자매들이 교회 생활을 잘 배우고 실천하여 미 셰례자들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 세르게이, 이골, 알렉산더, 리기나 )
감사
기도제목
♣송우리를 향한 지속적인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1)사역자의 건강을 지켜 주셔서 새벽묵상 사역에 진력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
 (새벽 3시부터 7시까지 )
(2) 새신자 구도자 교육을 하게 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 (엘레나 알베르트  ) .
(3) 매일 아침 카톡과 이모, 텔레그램, 페이스북을 통해서 국내외 아침 큐티 묵상을 나누게 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
(4) 목회자 구도자 교육 12-13차 세미나를 성황리 마치게 하심 감사 드립니다 . 
(5) 인플레의 경제적인 파고 속에서도 기도와 후원하여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

 

 

이 회지는 특별한 은혜 가운데 년 4회 발행되는 송우리의 유일한 소식지 입니다 . 55호 여름호를 구도자 교육 ,묵상 특집으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송우리다문화선교회 후원 계좌 국민은행 066- 24 – 0207 -679  ( 정승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