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년공동체/희년네팔인교회(주선미 1995~)

2004년의 사계 [2004년 11월]

희년선교회 2024. 7. 14. 08:55

[2004년 11월]

2004년의 사계

 

주선미 선교사



어디서부터 쓸까

 

긴 여행의 끝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겸손히 선 어느 누님처럼 다소 생경한 모습으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모니터 속에서 글자와 함께 지난 시간들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펼쳐지는군요. 텔리비전에서 영상편지를 띄우며 사계를 들려주던데 그게 생각납니다.


2004

충전을 위한 시간을 간절히 원할 만큼 네팔 인을 섬기며 지도하는 일에 상당히 지쳐 있을 때 송은순 선교사님이 나타나셨고 이 절호의 기회에 저는 예수전도단 서울 예수제자훈련학교(YWAM DTS)에 입학하였습니다. 제 나이를 생각했습니다. 50.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사역의 시간들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릴 수 있도록 제가 꼭 변화되어야겠다는 절박한 소망이 단순한 충전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헌용 선교사님의 변화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는 말씀을 머리 속에 담고 그러나 가슴 속에서는 큰 기대를 하며 200438DTS를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가자마자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일단 사역을 안 하고 일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주는 한국 음식 먹고 강의와 찬양과 예배와 독서와 묵상 시간들을 누리며 틈틈이 산책도 즐길 수 있는 이 환경 자체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 곳에서 가르쳐 준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다 마치고 난 지금 과연 저의 행동은 변화되지 못했지만 제 마음 속에 기쁨과 하나님 경외의 삶이 우선순위를 차지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2004 여름

DTS를 마치고 저는 2주간의 일정으로 817일 네팔을 방문하였습니다. 10년 만에 방문하는 네팔을 누리기에는 2주가 너무 짧았고 네팔에 가자마자 DTS갔을 때처럼 무조건 좋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거리 거리를 지날 때 마다 많은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대로 눌러 앉아 이 곳의 선교사가 되고 싶은 강력한 끌림을 느꼈습니다. 그 곳에서 무엇보다 저를 기쁘게 한 것은 우리가 잘 알며 항상 사랑해오던 형제, 얼준의 모습이었습니다. 여기 있을 때보다 14Kg이나 빠졌다는 수척해 보이는 그와 함께 택시를 타고 볼품없는 거리를 달리며 느낀 첫 인상은 가난한 나라의 착한 청년에게서 전달되어지는 깨끗함과 신선함이었습니다. 그는지난 해 자진 출국 기간인 11월에 귀국해서 신앙 좋은 자매님과 기독교식으로 결혼도 하고 함께 희년 네팔 공동체에서 섬기던 알비, 비놋과 한 교회에서 잘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환자로 있을 때 자신에게 찾아온 많은 기독인들의 사랑을 의미 없이 수동적으로 받기만 했었는데 막상 네팔에 돌아오고 보니 그들의 순수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새삼 느껴지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줘야 겠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는 우선 고향의 브라만 계급이 모여 사는 자기 집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을 가졌습니다. 자기 한 사람만 유일하게 그리스도인인 그 동네에서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동생이 예수 믿고 변화되고 동생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이 놀라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또 그 과정에서 숨어 있던 그리스도인 학교교장도 드러내며 힘을 얻을 수 있는 일도 생겼고 아무튼 이상한 일이 그 동네에서 아주 약하지만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그는 고아원을 설립하여 공산반군으로 부모가 희생된 고아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만들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이 청년 얼준을 제가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예가 한명도 없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알비는 가족을 전도하였지만 믿지 않는 아내와 결혼하여 힘든 싸움을 하고 있고 비놋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있지만 그 역시 믿지 않는 아내와 결혼하여 힘들게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바라보면 소망이 있습니다. 여러 어려운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통과해야 할 시험들을 열심히 감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는 희년에서 돌아간 사람 중에서 지속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jubilee nepal branch를 세우기 원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며 동의하면서 그들이 세울 그 센터에 모여들 과거의 희년 용사들의 무리를 꿈꾸어 봅니다. 얼준이 세울 고아원에서 그 센터를 시작하고 모임의 중심으로 얼준이 그 역할을 한다면 이 곳 희년 선교회 네팔 공동체에서는 기쁨과 평안함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고 기대하며 우리의 내일을 꿈꾸는 좋은 현상들이 일어 날 것입니다.


2004 가을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또 얼준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꿈처럼 지내던 어떤 공간에서 뚝 떨어져 드디어 현실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동안 송은순 선교사님이 애쓰시고 귀하게 양육하신 흔적을 여기 저기서 발견하면서 잠시 적응기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미등록 외국인이 점점 입지를 잃어 가고 있으며 그들이 매우 소외된 채로 교회에도 올 수 없고 신앙생활도 할 수 없는 많이 위축된 모습을 바라만 보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느헤미야가 바라보던 귀환 유대인처럼 무감각한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재한 네팔인회에서 주최하는 추석 네팔 연예인 초청 행사는 참 귀하고 의미 있는 행사이지만 동시간대에 있었던 희년 선교회의 수련회에는 참석할 수 없는 영적인 무력함이 팽배해 있음을 처절하게 느끼게 했습니다. 그 장소가 그토록 매력 있는 설악산과 동해바다라 해도 말입니다. 지난 926일부터 28일까지 우리는 그 아름다운 장소에서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20명의 일행은 설악산 흔들바위, 울산 바위, 강릉의 빛사랑 교회, 경포대 바다의 줄기찬 파도, 또 강릉 빛사랑 교회, 또 올라오면서 설악산 비룡폭포 들을 거치며 아주 즐거운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강릉 빛사랑 교회는 제가 DTS 훈련 전도 여행 때 머무르게 된 교회인데 다시금 그 곳을 갈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목사님의 주 의지함과 신실함과 겸손함, 사랑, 그리고 주를 사랑하는 열정을 결코 잊을 수없었던 그 교회에서 우리는 아주 의미 있는 경험을 가진 것입니다. 설교와 묵상과 드라마와 식사 시간까지라도 마냥 즐거워하였습니다. 참석한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그 즐거운 경험은 우리만의 비밀 같은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 수련회에서 우리는 두 명의 주영접자를 얻었습니다. 박타 라울과 러메스입니다. 박타는 그동안 계속해서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마음을 주셨고 이번 수련회에서 아침 묵상 시간에 읽은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자기도 나무줄기에서 떨어진 가지일 뿐이며 영원히 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나무줄기에서 떨어진 아무 의미 없는 교회 생활을 청산하고 줄기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 새 생명을 얻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는 결심을 하였던 것입니다. 러메스는 희년과 희년 사람들을 좋아하는 아주 순진한 청년이며 그런 분위기가 좋고 그 예수님이 좋아 영접했습니다. 앞으로 그 두 사람이 옛 습관을 버리고 여러 시험을 통과하며 주님 사랑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추석은 수련회와 만남으로 바쁘게들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딱하게 지낸 사람도 있습니다. 추석에도 일을 한 공장이 많았고 또 어떤 친구는 먼 지방에 있으면서 추석 때 움직이면 단속될까봐 움직이지 못한 형제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추석을 지내고 며칠 더 일을 한 후 결국은 일을 그만두게 되고 서울로 온 네팔 사람 중에 켐이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아르바이트 하러 간다고 길을 나섰다가 지하철역에서 알카에다 테러에 대비해 경계근무를 하던 경찰관을 통해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 잡혀 가게 되었습니다. 면회를 가니 그는 초췌한 모습으로 빨리 네팔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님은 단속됐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전 이라크에서 잡혀 참수를 당한 네팔인 사건을 떠올리며 기절하셨다고 합니다. 간신히 가족들에게 그런게 아니라고 이해시켰지만 힘없는 네팔인이 괜스레 당하게 되는 슬픈 경험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희년 쉼터에 있을 동안 성경보고 예배드린 것을 잊지 않고 네팔에 가서 교회를 다니기로 했습니다. 10월 마지막날은 주일인데 그날 네팔 공동체가 바자회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네팔 고아원 평화의 집을 설립하기 위한 기금 모금 바자회입니다. 10월의 마지막날, 많은 이들이 감상에 젖을 그 날에 모두 모여서 희년 선교회 앞 양지바른 마당에서 벌어지는 옷과 네팔 차의 향연을 즐기시지 않으렵니까? 얼준 형제는 돌아갔고 우리는 그와의 형제애를 추억하며 열심히 후원을 해서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고 싶습니다. 희년 네팔 공동체가 처음으로 내어 뻗는 도움의 손길,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2004 겨울

안디옥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레섬 형제는 이제 연말이면 졸업을 하게 되고 그 다음 과정인 M.Div. 과정을 바로 할 것인지 아니면 네팔에 일단 가서 교회를 섬기다가 그 과정을 할 것인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결정을 하기 원하고 있습니다. 또 네팔 공동체를 위해 연말이 지나서는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 네팔 목사님을 전임으로 초빙하는 것에 대한 기도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는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태도를 과감히 버리고 확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희년 네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강력한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 겨울에는 일년을 마무리하는 아주 의미 깊은 계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