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1907
주선미 선교사
2007년이 지나 갔습니다. 2007년은 1907년의 대부흥 운동 후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이들이 몇 년 전부터 기도로 준비하고 기대해온 'Again 1907'의 해가 지나갔습니다. 100년 전 한 선교사님의 회개로부터 시작됐다던 그 놀라운 부흥이 이 시대의 한국 교회, 아니 구체적으로 나와 내가 속해 있는 이 네팔 공동체와 나의 가족에게 일어나기를 소망 했었습니다. 회개는 자신과 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어릴 때 교회에서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기 직전의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요? 그것은 겉으로 어떤 형태이든 내적으로는 비참하고 일그러졌으며 자유가 없고 존귀함을 받지 못하는 상태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결정할 수가 없어서 회개 후에 오는 그 자유와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겠죠. 그렇군요. 회개란 바로 결단 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겠군요. 탕자가 돼지우리의 냄새나는 벽에 기대앉아서 처참한 자신을 그대로 맡기고 있을 때 집으로 안 들어가는 것이 자존심 세우는 것이 아니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자존심 세우는 것임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삶에서부터 누구든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존귀하게 창조하셨는데 말이죠. 왜 이 모양으로 우리는 살고 있을까요?
네팔 공동체의 B형제가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영접했고 세례를 받았으며 찬양 팀이 되어 섬겼습니다. 여느 다른 신앙인이 겪을 수 있는 신앙의 기복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뭐가 불만인지 멀어지기 시작해서 사역자를 많이 안타깝게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그 자신의 죄에 대해 고백을 하였는데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몹시 떨리고 부끄러웠을 그를 바라보니 그렇게 아름답고 용기 있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근신 처분을 받는 중에 그는 또 다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다시 근신의 기간이 연장되었습니다. 그런데 회개와 근신으로 인해 앞에서 찬양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끄럽고 어두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밝고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전에 보다 더 열심히 참여하며 믿음의 능선을 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상대방 형제가 더 실족한 듯 해보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회개란 이렇게 아름답고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R형제가 있습니다. 그는 네팔에서부터 예수를 믿고 찬양의 은사를 갖고 네팔의 교회에서 섬기다가 한국에 일하러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 공동체에 와서 섬세한 감수성과 박력있는 비트로 찬양을 리드하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처음 볼 때의 그의 아름다운 섬김이 점점 퇴색되어 가고 주일날 열리는 다른 행사에 참석하느라 교회 출석도 못 하고 걸핏하면 삐쳐서 안 나오고 하는 일들을 반복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번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회개보다는 원망을 더 하였습니다. 그와의 동역은 이제 불투명해 보입니다.
또 다른 R형제가 있습니다. 그는 몸집이 작지만 눈빛이 살아있고 예수를 믿어 그 증거가 나타나는 아름다운 형제입니다. 일 때문에 교회 못 나올 때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화하고 아니면 토요일 밤 늦게라도 의정부에서 달려오는 형제입니다. 언제나 이리저리 둘러보고 필요한 섬김에 앞장섭니다.
또 다른 R형제가 또 있네요. R3라고 해야겠네요. 아까는 R2. 이 형제는 제주도에서 일했던 형제입니다. 그 쪽의 일을 그만 두면서 저희 쉼터를 오게 됐는데 드라마를 통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형제입니다. decision time이라는 이 드라마의 강력한 복음제시에서 그는 매력적인(?) 마약중독자 역할을 했죠.
이제 R4 형제를 소개합니다. 그는 지난 추석이 되기 전 남동공단 회사에서 동료 외국인에게 구타를 당했고 그것을 호소해도 회사에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와 같은 조에서 일하게 해 거부하다가 나중에 사장에게서 구타당하고 또 한번 또 사장에게 구타당하는 아픔과 수모를 겪었습니다. 구타건에 대해 고소를 하였는데 어이없게도 사장에게 혐의가 없고 오히려 무고죄로 이 형제에게 고소하겠다는 아주 얼굴 두꺼운 늙고 타락한 사장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잘 해결되지 않아 제 마음은 아주 불편한데 오히려 이 형제는 이 교회를 사랑하고 열심히 출석하고 있습니다. 내년쯤 세례도 받고 싶다고 하네요.
R5 형제 이야기입니다. 그는 오래 전 희년 네팔 공동체 시작할 때부터 섬겼던 귀한 형제입니다. 그러다 네팔에 돌아갔고 다시 한국에 일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바뀌어 버린 낯선 형제들 때문인지 서먹함을 견디지 못해 근처의 한국교회를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말하자면 저의 무관심, 비전 없음 때문이라는데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은 이 쪽을 향해 있음을 느낍니다. 해바라기 처럼요. 2008년 1월부터는 다시 이쪽의 주일 예배를 출석하겠다고 했어요.
M형제는 한국에 온지 십 수년이 지난 사람입니다. 지병인 당뇨 때문인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형제인데 알고 보니 날마다 주와 동행하며 기도하고 멀리 떨어진 가족 아들 딸에게 전도하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V형제는 늘 신중하여 말이 없는 대신 속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속에 열정이 있어서 어떻게든 공동체를 주의 하나 된 아름다운 공동체로 이끌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도하고 잤는데 꿈에서 보여 주시고 또 기도 제목을 이뤄 주셨다고 합니다. 충북 태소에서 토요 밤 근무를 마치고 잠도 안 잔 채 찾아오는 이 영혼!
S형제는 네팔의 전통북인 마덜을 잘 칩니다. 공장 일로, 혹은 지병인 고혈압 때문에 희년 진료소를 찾아 가느라, 혹은 작은 일로 삐치기도 하여 자주 출석을 못 하게 된 형제입니다. 하지만 우리 공동체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형제입니다.
R6형제는 지난 해 초에 이곳을 떠나갔습니다. 그는 안디옥 신학교에서 신대원 까지 마친 후 네팔로 돌아가지 않고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사는 그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으나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R7형제는 지난 일 년 반 동안 아무 직책도 없이 밀알처럼 썩어져 헌신한 형제입니다. 프레이즈 찬양 신학에 들어갔으나 한국말이 어려웠고 레슨비 등 학교에 내야 하는 경비도 감당할 수 없어 끝까지 다닐 수가 없었고 재정적으로 많이 어려웠으며 우리 공동체에서 그를 어떤 존재로도 여기지 않고 뒷말들을 하는 가운데 묵묵히 주 앞에서만 눈물로 부르짖어 온 형제입니다. 그의 오랜 네팔 교회 생활과 인도 신학과 인도에서의 사역, 그의 디아스포라 네팔인에 대한 선교 비전들을 생각할 때 말할 수 없이 좌절되는 시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뻐할 일이 이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세아연합 신학원에 드디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난 8월에 우리 공동체는 네팔 기독 연합모임에서 탈퇴를 하였습니다. 습관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무료함으로 진행되는 연합 예배 및 수련회를 복음적으로 개선해보자고 제안한 것이 그만 뒤틀려져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옳다고 하여도 탈퇴하여 나온 후의 소외감은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내려 앉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 곳 영락교회 쉼터는 5층에 아담한 예배실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밤마다 같이 혹은 따로 기도했습니다. 뭔가 잘 안 풀리는 우리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위해, 네팔을 위해, 쉼터를 위해, 우리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그런데 기도를 돌이켜 보니 대부분 하소연과 회개의 시간이 많았었습니다. 저 자신도 개인적으로 마음 속 깊이 파묻고 있던 외로움의 상처들을 다루는 기도의 시간을 가졌으며 공동체를 잘 이끌지 못한 것과 아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내 힘으로 노력해 보려 했던 바 그 죄를 회개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엔 처음으로 네팔 식당을 빌려 전도 집회를 하였습니다. 다른 해처럼 교회 쉼터에서 선물 교환을 하고 친교의 시간을 갖는 것 대신 믿지 않는 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집회를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영등포에 있는 마운틴 에베레스트 식당에서 지난 12월 22일 토요일 저녁에 '크리스마스 축하'라는 제목을 달고 찬양과 드라마와 매직 복음과 춤, 메시지로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참 진지하게 경청하는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여러 멤버들이 모두 모여 와 합심하여 이 행사를 잘 해내었습니다. 그리고 영락교회의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격려해 주셨습니다. 한국인 포함해서 106명이 참가 하였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모두 기뻐했습니다. 외국인의 삶으로서가 아닌 우리 공동체로서의 지난 한 해 동안의 소외감과외로움, 쓸쓸함을 이겨내는 아름다운 결실인 셈이었습니다. 회개 후에 일어나는 부흥의 조짐이었습니다.
송구영신 예배는 많은 수는 아니지만 35명이 모여 새해의 다짐과 기도로 새 소망을 갖는 조촐하지만 깊은 연대감을 느낀 시간이 되었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신앙의 불씨를 열려 보인 가슴의 틈새로 언뜻언뜻 보았기 때문입니다. 2007년 우리 공동체 한 사람의 공개적인 회개로 우린 부흥의 서광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again 1907' 2007년에 꼭 이루고 싶었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공동체 소식 및 기도 제목
1. 새해 공동체가 새로운 다짐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성경일독,기도,잃어버린자찾기,사랑)
2. 보즈 목사님이 2월말에 사역을 마치고 귀국하시는데 그의 네팔교회 사역을 인도하시도록
3. 보즈 목사님의 후임이 잘 결정될 수 있도록(레크미 내정 중)
4. 레크미 형제가 아세아연합신학교에서 잘 공부할 수 있고 사역에 대한 인도함을 받도록
5 노트북, 앰프, 보면대가 들어 왔습니다. 나머지가 채워지도록....승합차, 컴퓨터, 기타, 드럼
6. 환자를 위해
아난따..................뇌농양 투약 중
메헤르만...............당뇨
러츠만..................척추관절염
카트리..................산재 장애등급판정 되도록
비스와스..............디스크,한방치료 중
7. 체불임금................케섭, 러빈, 옴, 지번, 쥬다, 저스푼
8. 주선미 사역자의 성령 충만과 리더쉽, 건강, 치매를 앓는 모친
9. 후원에 감사드립니다........정결한 교회90만(9,10,11,12, 특별), 이숙현 12만(9,10,11,12)
맹영아(10만원,알밤), 산울교회네팔목장(30만), 서소문교회(50만), 여인옥(5만), 할렐루야(2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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