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년공동체/희년네팔인교회(주선미 1995~)

주디디의 여행소고 [2009년 4월]

희년선교회 2024. 7. 14. 16:15

주디디의 여행소고

주선미 선교사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왔습니다. 편지를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즈음 편지를 쓰고 싶어지도록 이요. 참 그러게요. 제가 오랫동안 편지를 못 보냈네요. 먼 여행을 다녀온 셈이죠. 그럼 제가 그동안 다닌 여행을 소개할까요.

길 따라 자연을 느끼는 여행
사실 이리저리 공장이며 병원이며 출입국 관리사무실이며 노동부며 법률구조센터며 법원이며 검찰이며 교도소에 다니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지만 봄 냄새를 맡으며 길을 다니는 일은 즐거운 여행길과도 같습니다. 여행 한번 실컷 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경기도 지역, 혹은 가끔은 더 먼데 지역까지 구석구석 가 볼 수 있으니 소원을 이루고 있는 거죠. 특히 요즘 같은 아름다운 계절에는 더욱.


그 발걸음을 따라 마음을 상상하는 여행
또 이렇게 먼데서 이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주일날 찾아오는 형제들의 발걸음을 되짚어 가면서 참 고맙고 또한 그들은 올 때마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오는 것일까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운 놀이와 같습니다. 다른 교회에 가는 사람들은 공장에서 가까운 지역이고 또 차로 실어다 주는 곳도 많으니 그들에 비하면 상당히 자원하여 오는 마음이고 그 마음이 기껍게 느껴집니다. 전북 익산에서 오는 B형제나 공주에서 S형제, 서산에서 A형제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씩 오면서 미안해하는 그 마음을 보면 아이들의 마음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현장을 기웃거리는 여행
또한 매주일에는 예배를 끝마치고 레크미 전도사와 함께 그날 안 나온 형제의 공장과 숙소를 방문했습니다. 제일 가까운 길. 동대문에서 오랫동안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M형제의 신앙인다운 작은 방, 그리고 마음은 있겠지만 주일날 네팔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고 각종 회의를 주선해야 돼서 못 나오는 동대문 S형제의 당구장. 그리고 먼 길. 오산의 SK형제를 만나러 택시를 타고 깜깜한 하천 길을 따라가는 신비한 그 길, 금촌역으로 멋쟁이 파키스탄 친구의 승용차로 마중 나온 K와 그 근처 몇 공장에 있는 다른 형제자매들까지 다 만나고 돌아오는 길까지 승용차 배웅을 받았던 길, S형제가 일하는 공주 마늘 공장 심방 갔다가 사모님의 신앙열정 섞은 식사대접 받고 돌아오던 길, 깨끗하고 외로운 B형제의 익산 숙소를 방문하던 길, 얼마 전 숙소 화재로 입은 옷 빼고 다 타 없어졌다는 K,G형제들의 평택 야간 근무 현장, 외부인을 못 들어오게 해서 멋쩍게 적당히 인사만 나누고 근처 남동공단 이마트에서 교제하던 N,L자매와 R형제, 갑자기 임파선종양으로 복부와 흉부에 다 퍼졌다는 진단을 받고 국립의료원 침상에 어처구니 없어하며 앉아 있는 K자매, 손 절단 후 재수술로 인천중앙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평안해 보이는 해맑은 중년 아줌마B, 당뇨병으로 늘 고생하는 M형제가 입원한 한일병원을 방문하여 병원 캠퍼스에서 한가하게 교제 나누던 일, 당뇨병이 발견되어 적십자병원에 입원해 있던 K형제를 만남으로 더욱 가깝게 느껴진 일, 주일날 일해서 못 나온 R형제를 만나기로 한 안산역에서 연장근무 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로 돌아오며 지하철 타고 사역자끼리의 교제로 심방을 대치한 일 ..........돌아오는 길은 항상 밤12시지만 형제들의 진솔한 삶을 보고 오는 밤 여행이 가슴을 벅차게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엔터테인먼트 여행
교회에서 귀하게 섬겨주셔서 봄엔 마라톤, 전교인 체육대회, 여름엔 건강나라라는 전문 찜질방에도 갔고 휴가철에는 서소문교회의 환상적인 섬김을 받아 바다도 가고 서울랜드와 성막체험도 하고 가을에는 축구대회도 하고 추석에는 강화도 가서 점심 저녁 먹고 뛰놀기도 하고 교회 선교주간에 찬양도 하고 크리스마스와 교회 성가제에서 발표도 하고 석천제일교회 초청으로 뮤지컬도 보고 크리스마스와 설날에는 또 조촐하게 모임을 가졌고 부활주일에는 어설픈 계란꾸미기 컨테스트도 하면서 웃을 일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나가 내 맘대로 다닌 여행
그러나 항상 즐거운 여행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어려운 일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한국의 교회가 확실히 잘 도와준다는 확신이 가득 찬 것 같습니다. 자기네 나라는 모두 알다시피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지금 자기가 이런 돈이 필요하고 이런 도움이 필요하고 이런 통역이 필요하고 하면서 무릎을 꿇으며 애원하는 한 쪽으로 네팔 사람끼리 눈을 깜박였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후 이들이 갖고있는 환상이 돈 많은 대상일 뿐인 우리로부터 어떻게든 도움을 받아내야겠다는 것에만 가득 찬 것임을 보게 됩니다. 회사 사장님께 월급을 못 받는등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것은 도와줘야겠지만 자기에게 필요한 도움을 무리하게 받아내야 하는 것이 자기의 권리인 양 하는 것은 욕심이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다 몰라서 그런 거겠지만.


또 어떤 사람은 영적 권위를 찬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동안 다른 곳에서 한국 사람들과 함께하며 네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었기에 이곳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잘 돌봐주는 좋은 형제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에게 권위가 돌아가게 하는 분위기가 되고 있죠. 전에 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니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네팔예배 시간에는 관심도 없고 예배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몸짓을 하다가 한국인과 예배드릴 때는 통역이 있는데도 한국말로 엉뚱한 말을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참 미욱하게 느껴집니다. 교회에 오는 것이 교제를 위해오는 것이므로 그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오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자기들이 와 주어야 우리 교회도 존재하고 전도사 선교사도 존재하는 것이라는 무지한 생각, 그리고 그 생각들을 퍼뜨려 여론을 주도하는 그 악한 생각들.


한 형제는 매주 잘 나오다가 어떤 작은 주의를 준 일로 마음이 상하여 안 나왔습니다. “나 주 디디(누나)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안 나온다이런 말을 형제들에게 흘리고 다니더니 갈등이 생겼는지 나왔다 안 나왔다 하면서 힘겨루기를 합니다.


아마 이런 것은 여행 중에 만난 개고생(? 요즘 TV광고에 나와서 인용해 봤습니다.)이라 할 수 있겠죠. 이런 고생길을 참고 묵묵히 복음을 들려주며 지내면 언젠가 열매가 이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15년간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잘못된 길을 계속 참고 나가지 말고 이제라도 방향을 돌이켜 바른 길을 가라고 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고난주간에 묵상했던 예수님의 성전에서의 분노도 공감이 갑니다. 나를 위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분노로서 참고 있어야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 분노를 표출하니 어색하게 우스꽝스러운 몰골로 수치만 당하는 것 같아 황폐해진다는 느낌만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숫자로 표현되는 배척과 무심함에 대해 나는 마치 바람을 맞고 홀로 서 있는 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난 이들을 사랑하는 것인가 지겨워하고 미워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후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래서는 안 된다 빨리 돌이켜야 한다 내 스스로 이 공동체를 이끌어 가려고 하니 이 모양이지 하나님의 집 안에서 주께서 이끌어 가시게 하면 얼마나 편하고 신나고 사랑하는 척까지 쉽게 할 수 있는데 이젠 행동하고 실천해야 할 때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억지로 답답하게 이끌어 온 것을 잘 참고 기다려주신 하나님과 후원 동역자 여러분의 사랑과 인내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별 여행
여행 중에는 이별여행도 있죠. 함께 있으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여러 형제들 얘기를 위에서 했지만 사실 말할 수 없이 슬프고 가장 가슴이 시린 것은 이별입니다. 홀연히 잡혀간 눈이 빛나던 R형제, 스스로 돌아간 V형제, N형제, R형제, G형제, B형제, 그리고 나로 인해 마음이 떠나서 한국에 있으면서 이별상태에 있는 B형제, R형제, P형제 등이 있습니다. 그냥 개념 없이 당연히 사라진 형제들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 소속으로 당당하게 지내는 R형제, B형제도 있습니다. 이별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죠. 그래도 여행이라는 추억 속에 넣으면 그것도 유익하리라는 성숙된 생각으로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복 여행
그리고..........회복에 대한 간절한 열망으로 1주일 금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절히도 원했던 기도를 막상 시작하려니 아무 힘이 없어져 늘어져 있기만 했었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시편 1편에 나오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았던 나의 15년 사역의 허구가 바로 악인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겨우 금식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 주일 교회 젊은이 예배 때 독일에서 온 한 젊은 자매가 바이올린을 들고 간증과 연주를 하러 올라왔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주소서를 연주할 때는 그 자매가 두려울 때 위로받은 찬양이고 누군가 널 위하여를 연주할 때는 그 자매가 인간적으로 행하고 평안이 없고 기도할 힘이 없을 때 만났던 찬양이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찬송가에 있는 귀한 몇 곡을 메들리로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클래식도 연주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연주 때마다 통곡소리를 간신히 조절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나중엔 아예 연주소리가 강렬하게 커진 틈을 타서 맘 놓고 통곡하였습니다. 아마 이 평범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듣고 감동받은 사람은 있을지언정 저처럼 통곡한 사람은 그 예배실에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저만의 기도 응답을 위해 갈릴리 호수같이 그렇게 멋지고 넓은 콘서트장 예배실을 준비해 주셨고 하나님이 그 허무할 뻔 했던 금식기도를 그런 식으로 받아주셨으며 실패했던 베드로에게처럼 다시 네팔인을 맡기시는 회복의 클라이막스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멋진 회복여행이죠?



기도제목


1. 네팔 공동체 각 사람이 예수를 알고 믿고 영접하며 성령충만해 지도록
2. 네팔 공동체가 회복의 공동체로,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로 일어설 수 있도록
3. 환자를 위하여
고팔: 디스크 탈출증인데 산재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어눕:손가락 재수술 한 것이 잘 회복되며 통증이 경감되고 구부러지지 않는 손가락의 문제가 잘 해결되도록/메헤르만:조절 되지 않는 당뇨병 및 그 합병증이 잘 치유될 수 있도록/케섭: 당뇨병의 치유를위해
4. 사역자를 위하여
레크미 전도사......성령충만하여 네팔 공동체를 잘 섬기는 지도자가 되도록/학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학업에 필요한 노트북 새 것이 준비될 수 있도록/아내가 잘 초청되어서 한국에 함께 있으며 사모로서 필요한 것을 배우며 동역을 잘 할 수 있도록/아내와 함께 생활할 공간과 생활비가 채워지도록/한국어도 잘 배울 수 있도록/
주선미 선교사.....성령충만하여 네팔 공동체를 잘 돌볼 수 있도록/말씀과 기도의 능력이 배가되도록/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와 팔도 아픈 상태에서 어머니를 돌보시는 팔순의 아버지의 건강이 지켜지고 돌봄의 문제가 해결되도록/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