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년공동체/희년네팔인교회(주선미 1995~)

변함없는 행보, 조용한 행보, 매력적인 긍휼의 눈빛 [2010년 2월]

희년선교회 2024. 7. 14. 16:22

변함없는 행보, 조용한 행보, 매력적인 긍휼의 눈빛 

주선미 선교사

 

오목교역에서 지하철 출구를 나오며 하고 실소를 터뜨렸습니다. 함께 동행하던 네팔 형제는 왜 그러냐고 물어왔습니다. 수도권에서 우리 사역하는 분 중에 이 장소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르면 간첩이지요. 저는 이 한 친구를 위해 삼성역에 있는 병원과 영등포 공증 사무실과 오목교의 이 관청을 수없이 드나들었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 사람에게 향한 돌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 실소가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실소에 이어 실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의미 없는 행위들을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러다 그냥 이대로 늙어 죽는 거야.” 의미 없이 남의 뒤치다꺼리만 하며.............내 나이 지금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조직과 체계도 없이 15년전 하고 똑같이 병원가고 출입국사무소 가고 핸드폰 가게 가고 노동사무소 가고 공장에 가서 외국인과 같이 사장 앞에서 주눅 들고......이 뭐하는 짓인가 싶습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자기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주디디주디디비슷한 아무개 하고 두 분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말없이 미소를 잃지 않고 돌보아 주신다면서. ! 이용해 먹기 좋다 이 말이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위로가 되네요. 우리가 느끼기에 질리고 피곤해서 그렇지 그 사람들은 항상 고마워하고 미안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지요.

이런 시각도 있지요. 선교적 차원에서 돌봄과 선행을 통해 복음의 접촉점이 될 수 있다고 우리는 흔히 얘기 하지요. 아 미끼 얘기 할까요? 미끼만 따먹고 가지 않도록 고도의 실력으로 잘 낚아채야 우리의 미션이 성공하는 거 아니겠어요? 전 언제나 미끼만 뺏기고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고 미션에 실패만 하니 복음의 접촉점이란 말이 아주 무색하죠. 이럴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더라.

아 예수님도 5천명 그 이상의 사람들을 먹이신 후에 말씀이 마음에 걸림이 된 사람들을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 생각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또한 우물가의 여인도 삭개오도 혈루병 여인도 베드로도 바돌로매도 탁월하게 마음을 사로잡으셨지요. 아 이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접촉점으로 즉 미끼로 이들을 고쳐 주거나 먹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목자 없이 유리하는 양떼들 같이 불쌍한 인생들에게 먹이시고 고치시며 육적인 묶임에서 놓아 주시고 영적인 묶임에서도 놓아 주신 것입니다. 그저 긍휼이 가득하신 눈빛으로 우리를 총체적으로 놓아주신 것입니다. 아 그 긍휼, 그 사랑 그것이 답이었어요.

그러므로 물질적 인간적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복음적이 아닌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필요로 벌리는 손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곤고함과 갈망이 함께 묻어나 결국 복음이 해답이 되기 마련인거죠. 아무튼 저처럼 바보같이 필요를 채워주는 일로 한결같은 걸음을 느리게 행보한다 해도 사람들에게서는 존경을, 하늘에서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섬긴 것이라고 칭찬을 받을 생각을 하니 이 사역이 힘들지 않게 됐네요.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가졌던 그 매력적인 눈빛을 탐하며 좇아가는 즐거움이 크다 하겠습니다.

이 네팔 형제들은 지금 이곳에서는 한국말을 잘 못하고 권리 주장도 못하고 거기에 더 나아가 감사의 말도 못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자기 나라처럼 자유롭지 못한 곳에서 모든 사고가 얼어붙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설령 감사의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오히려 계속 요구만 하는 질리는 상황이 온다 해도 그것은 그들의 사고가 얼어 있어서 그런 것이니 그들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풀어주는 것은 예수님의 희년의 선포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희년의 이름으로 돌아왔군요. 자꾸 말해도 좋은 이름, 그 이름 예수, 희년을 사랑합니다.

지난달에 우리 교회를 출석하곤 하던 샴 구룽 형제가 화재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요즘은 연기가 사람을 질식시키는 게 더 무서운데 2층에서 일어난 화재연기에 질식돼 몸에 그을린 자국도 없이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그를 서산의료원 안치실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희년을 사랑하며 빈손으로 오지 않고 마실 것 등을 사오곤 하며 말수 없이 다녔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유족이 한국에 찾아와 머물고 있었던 구룡사에 찾아가는 이상한 상황이 됐지만 위로와 성금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조용히 관조하며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부모님과 계속 흐느끼는 부인을 뒤로 하고 온 천지에 눈이 가득한 밤길을 여러 가지 상념 속에 미끄러지듯 돌아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 죽음에 대해서, 인간이 너무 나약한 존재라는 것과 개인의 죽음이든 주님의 재림이든 운명의 시간은 오고야 만다는 것, 언제까지나 떵떵거리고 살 줄 알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사는 우리들의 모습 같은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122일 네팔에 갑니다. 평화의 집 개원 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그리고 돌아간 형제들을 만나고 또 한국에 있는 형제들의 가족을 만나며 배달부 역할도 할 것입니다. 이런 변함 없는 행보에 네팔의 산하가 좀 더 뜻있는 모습으로 맞이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제 말은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예수님의 긍휼의 눈빛이 네팔인에게 향하듯 제게도 비춰질 것이니까요. 참 오늘은 엄살을 많이 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