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년공동체/희년네팔인교회(주선미 1995~) 51

환희의 귀환 [2011년 11월]

환희의 귀환주선미 선교사 한 3년여간 우리교회는 네팔연합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도 들어서 합류하여 연합예배를 다시 드리게 되었습니다. 2000년도에 시작된 아름다운 연합 이었었지요. 그걸 다시 기리며 주안, 군포 교회 연합예배도 참석하고 영락교회에서도 연합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회장의 불참, 현수막 준비 차질, 헌금송 하는 교회의 지각으로 불참, 광고하는 부회장의 지각으로 어수선함 이런 것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연합예배 보다 성령 충만한 예배가 되었습니다. 함께 참여한 영락 이주자 예배 운영팀과 다른 교회에서 온 네팔 성도들의 증언, 그리고 무엇보다 예배 드리며 직접 느낀 성령의 역사로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잘 준비한 음식과 기념품, 4남선교..

진주와 진주상자 [2011년 2월]

진주와 진주상자주선미 선교사  2010년을 지나보내고 2011년을 맞습니다. 뭐든 새해가 되면 다시 한번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면서 새롭게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희망이 솟습니다. 우리 네팔 공동체도 새롭게 되길 소망합니다.비스와스, 씽, 비스마, 삼부와 런저이 형제가 단속되어 네팔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갈 때 교회 다니라고 당부했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씽은 이곳에서 한국인 교회를 많이 다녔고 한국어로 예배드리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나중에 우리 교회에 오게 되면서 네팔 예배를 드리고 정말 진지하게 예수님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대전의 비스누 형제의 지도 아래 기도원도 다니고 세례 받는 것까지 고려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네팔로 돌아가게 되었고 결혼하라는 가족의 압박 ..

쉼터와 작은 예수 [2010년 8월]

쉼터와 작은 예수주선미 선교사 외국인 사역 특히 도심에 있는 교회에서는 쉼터가 필요합니다. 공단에 있는 교회라면 모이기가 쉽지만 도심에 있는 교회는 2-3시간 걸려서 주일 1시간 예배를 위해 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쉼터가 있으면 사랑방 역할을 하고 일자리 없어 숙소가 필요한 이들이 모여 오며 예배에 참석하기도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모여와서 예배드리고 이야기들을 나누며 잠을 자고 아침에 성경공부 , 아침식사, 또 주일예배를 드리면 공단에 있는 교회만큼의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죠.본 교회 외국인 쉼터가 재정비를 하는 의미에서 문을 닫았습니다. 곧 다시 열겠지만 그동안 쉼터가 필요했던 이들이 많이 아쉬워하며 주일날 열적은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네팔 사람들이 흔히 잘 쓰는 말로 ‘..

네비게이터 사랑 [2010년 5월]

네비게이터 사랑주선미 선교사 1월 말 네팔을 다녀왔습니다. 평화의 집 얼준 원장과 아이들, 라잔, 람, 싸테, 너레스, 쁘라카스, 비놋, 써리따, 너빈, 상감, 버추람, 뿌런, 박타, 야꿉을 만나고 몇몇 선교사님과 이쪽에 있는 네팔 형제들 레크미 전도사, 돌, 바산, 꾸마리, 메헤르만의 가족도 만났습니다. 네팔은 거기에 그대로 있었고 저도 그대로였습니다. 아이들도 모두 평온하게 잘 지내고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네팔 형제들도 머쓱해 하면서 반가운 제스처들을 나누었습니다. 이번에 확인한 변화는 제가 여왕 대접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다행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연륜이 깊어간 그들의 안정되고 의젓한 모습도 보기 좋았고 삶의 고민을 함께 나누어보기라도 할 양 조용하고 진지하게 나눈 대화도 좋..

변함없는 행보, 조용한 행보, 매력적인 긍휼의 눈빛 [2010년 2월]

변함없는 행보, 조용한 행보, 매력적인 긍휼의 눈빛 주선미 선교사 오목교역에서 지하철 출구를 나오며 ‘픽’ 하고 실소를 터뜨렸습니다. 함께 동행하던 네팔 형제는 왜 그러냐고 물어왔습니다. 수도권에서 우리 사역하는 분 중에 이 장소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르면 간첩이지요. 저는 이 한 친구를 위해 삼성역에 있는 병원과 영등포 공증 사무실과 오목교의 이 관청을 수없이 드나들었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한 사람에게 향한 돌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 실소가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실소에 이어 실언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의미 없는 행위들을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러다 그냥 이대로 늙어 죽는 거야.” 의미 없이 남의 뒤치다꺼리만 하며.............내 나이 지금 60을 바라보는 나..

하나님의 모략 [2009년 11월]

하나님의 모략주선미 선교사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번에 네팔의 “띠할” 이라는 명절이 있었는데 안 믿는 모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음식도 먹고 네팔의 형제들이 자매들에게 찾아가 자매들의 축복 띠까를 이마에 받고 준비해 간 선물을 주는 명절을 지키는 날입니다. 집집마다 불을 밝혀서 부의 여신인 러츠미를 맞이하고 또 노래와 춤을 추면서 집집마다 돌고 선물도 받아가는 모양새가 크리스마스 불 밝히고 새벽송을 도는 것과 흡사하죠. 아마 작년 이맘 때 였나 그 때 이런 날에 주일날 한명만 교회에 온 적이 있었었죠. 모두 그 형제자매 모임에 가서 이마에 힌두식 티까 받고 선물 주고 음식 먹느라 교회는 오지 않은 거죠. 네팔의 교인들은 띠할 명절 때 형제들이 띠까는 안 받고 자매들에게 선물만 준다고 합니다. 그렇기..

저는 참 이것이 궁금해요 [2009년 8월]

저는 참 이것이 궁금해요주선미 선교사  저는 참 이것이 궁금해요. 15년 사역의 원동력 말이죠. 15년 동안 잘한 것이 없고 현재도 그렇건만 진짜 끈질기게 붙어 있다는 자평 가운데 하루하루를 연명할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건가 하는 것이 말예요. 정말 궁금해요.D형제는 전에 가리봉 쉼터에 있을 때부터 왔던 약간 터프한 친구였고 말씀 들을 때 비상한 눈빛으로 흡수하고 질문하면 정확히 답변했던 친구입니다. 그러나 그 터프함이 그를 평온하게 두지 못했는지 한참 동안 사라진 후 최근 1년 전 부터 다시 나타났다가 또 안 나오곤 했지요. 물론 어디선가 열심히 일은 했지만요. 그 친구가 최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 문제가 해결된 뒤 이제는 회사근무만 아니면 꼭 주일날 오겠다고 스스로 말을 하였습니다. 그가 잠시 자유..

주디디의 여행소고 [2009년 4월]

주디디의 여행소고주선미 선교사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왔습니다. 편지를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즈음 편지를 쓰고 싶어지도록 이요. 참 그러게요. 제가 오랫동안 편지를 못 보냈네요. 먼 여행을 다녀온 셈이죠. 그럼 제가 그동안 다닌 여행을 소개할까요.길 따라 자연을 느끼는 여행사실 이리저리 공장이며 병원이며 출입국 관리사무실이며 노동부며 법률구조센터며 법원이며 검찰이며 교도소에 다니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지만 봄 냄새를 맡으며 길을 다니는 일은 즐거운 여행길과도 같습니다. 여행 한번 실컷 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경기도 지역, 혹은 가끔은 더 먼데 지역까지 구석구석 가 볼 수 있으니 소원을 이루고 있는 거죠. 특히 요즘 같은 아름다운 계절에는 더욱.그 발걸음을 따라 마음을 상상하는 여행또 이렇게..

주안에서 문안드립니다 [2009년 2월]

주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주선미 선교사 주안에서 문안드립니다.이 땅에 있는 네팔 형제자매들을 섬긴지 14년이 되었습니다.이 14년을 돌아보니 수많은 네팔 사람들을 만나고 보내고 하면서 14년 전 처럼 오늘도 여전히 이들과 동행하며 병원을 같이 가주고 모든 일상사에 통역을 해주고 출입국관리 사무소에 가방 들어다 주고 노동사무소에 체불 임금 진정해주고 등등의 일을 변함없이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의사에게는 맹장수술이 아주 간단한 수술이지만 그 환자는 걱정되어 신경을 잘 써주시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수없이 반복해온 각종 자질구레한 돌봄과 동행이라 할지라도 이 새로운 네팔 형제는 걱정되고 잘 돌봐주시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돌봄만 반복되고 양육과 성장은 없어 보이는 사역이라 할지라도 주께서 다른 ..

AGAIN 1907 [2008년 2월]

AGAIN 1907 주선미 선교사 2007년이 지나 갔습니다. 2007년은 1907년의 대부흥 운동 후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이들이 몇 년 전부터 기도로 준비하고 기대해온 'Again 1907'의 해가 지나갔습니다. 100년 전 한 선교사님의 회개로부터 시작됐다던 그 놀라운 부흥이 이 시대의 한국 교회, 아니 구체적으로 나와 내가 속해 있는 이 네팔 공동체와 나의 가족에게 일어나기를 소망 했었습니다. 회개는 자신과 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어릴 때 교회에서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기 직전의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요? 그것은 겉으로 어떤 형태이든 내적으로는 비참하고 일그러졌으며 자유가 없고 존귀함을 받지 못하는 상태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