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 럼/이만열 (초대 대표, 1993.6~2020.2)

세계 난민의 날 (이만열)

희년선교회 2021. 9. 8. 22:17

620일은 세계난민의 날이다. 난민의 날은 본래 아프리카단결기구(OAU)1975년부터 아프리카 난민의 날로 정하여 기념해 오던 것인데, 국제난민기구인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그 설립 50주년을 맞아 지난 2001년부터 세계 난민의 날로 기념하기로 했다. 세계난민의 날을 맞아 자신이 태어난 조국으로부터 온갖 박해와 차별을 받아 타향에서 정처없는 나그네가 되어 구차스럽게 생활하는 이들을 돌아보게 된다.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 제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난민은 한마디로 박해와 공포 때문에 자기 조국에서 다른 나라로 피난, 되돌아갈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말한다.

 

현재 세계에는 1000만 내지 3000만 명의 난민이 있다. 한국에도 20075월 말 현재 미얀마, 우간다, 콩고, 코트디부아르, 네팔,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이란 등 세계 각지에서 온 1300여 명의 난민신청자가 있고, 그 가운데 62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다른 인권문제와 마찬가지로 난민문제도 제2차 대전 이후 국제 사회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모든 개인은 국적국의 보호를 받으며, 외국에 있는 동안에도 국적국의 영사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난민은 국적국이 그들을 박해하므로 국적국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제 사회가 이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고, 그 결과 1951년 난민협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난민 수용을 부담스러워한다. 대부분의 나라는 난민보호에 따르는 부담을 회피하기 위하여 난민의 존재 자체를 은폐하거나 난민 인정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려고 한다.

 

-배타적 한국 난민 수용도 인색-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은 지금까지 외국인의 수용에 대하여 배타적이었다. 이러한 국민의식은 난민수용에서도 인색한 태도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이 단지 62명의 난민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1000만여 세계 난민 가운데 20만분의 1에 불과한 난민만을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난민부담률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의 경제 수준에서 볼 때도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난민지원단체들은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자들에 대한 보호나 난민지위를 신청하여 그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난민신청자들의 지위가 모두 열악하다고 지적한다. 난민지위를 신청한 외국인들이 1년 이상 2~3년까지 아무런 지원이나 취업허가 없이 난민심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며, 난민지위가 주어져도 체류와 취업 및 여행허가 외에 별다른 사회경제적 보호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난민보호는 난민협약에 따른 국제사회의 부담스러운 의무이긴 하지만 인권과 문화를 공유한다는 측면에서는 축복이다.

 

한때 우리 민족은 난민이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했던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외환이 있을 때나 일제 강점기에는 더욱 그랬고, 군사정권 하에서도 민주화, 인권운동에 종사했던 많은 지식인들이 각국에서 난민으로 동가식서가숙 했다. 이같은 뼈아픈 경험은 난민문제에 적극 활용될 수 있는 충분한 자산이다.

 

더구나 지금도 그 수를 정확하게 헤아릴 수 없는 탈북동포들이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한 채 중국 등지에서 유리방황하며 고통을 겪고 있다. 때문에 난민문제는 강건너 불보듯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 동족의 문제다. 난민 인정 및 그 보호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할 이유는 또 있다. 한국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이며 UNHCR 집행이사국이다. 이제 개발도상국 시절에 가졌던 치기어린 생각을 극복하고 국제적 책임을 공유하는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

 

-국제 책임 공유 성숙함 보여야-

 

지구촌 개념이 확대되면서 세계는 이제 공생 공유해야 할 천부의 터전으로 변해 가고 있다. 탈북난민 외에 700만에 가까운 동족이 해외에 진출해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도 우리만이 배타적으로 살아야할 땅이라는 관념은 극복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지금껏 62명의 난민만을 받아들인 우리의 난민인정 기준과 정책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문턱에 서게 되었다면 거기에 걸맞은 국제적인 인권책임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민문제는 국제사회에서 나눔과 봉사를 평가하는 또 하나의 시금석이다. 오늘 난민의 날을 부담스럽게 맞기보다는 책임과 축복으로 맞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7.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