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 럼/이만열 (초대 대표, 1993.6~2020.2)

많이 나누는 사람이 참부자 (이만열)

희년선교회 2021. 9. 8. 22:29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그가 선택하는 단어는 평범했다. 말맺음은 겸손했고 내용은 따뜻했다. 그래서 희년선교회 대표로 17년째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봉사활동을 해 온 이만열(71) 숙명여대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는 복음을 전해 듣는 듯했다. 그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봉사의 원칙으로 삼았다. 당연히 그의 선행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작은 규모로 일을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심으로 감동해 그 향기가 퍼져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28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 자택에서 이 대표가 직접 끓여 준 향 깊은 홍차를 마시며 희년선교회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제가 미국에 교환교수로 갔다가 19932월 귀국했는데 그해 3월 희년선교회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선교 및 봉사활동을 한다고 도와 달라고 부탁해 대표를 맡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를 쓰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오다가 이후 동남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 벌써 17년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 오신 것을 감안하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직원들에게 항상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자연히 도네이션(기부)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봉사를) 하라고 했으니까 다른 적절한 방법으로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를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된 데는 주변의 권고 외 다른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두 가지 내적 동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사랑을 나누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사 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외국인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한국 사람들은 능력과 상관없이 심한 차별을 당했는데 그 이유는 민족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제에 대해 저항했고 일본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 일제가 우리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국내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런 자각 때문에 이 일을 적극적으로 하게 된 것 같습니다.”

 

―17년 봉사활동을 하셨으니 보람을 느낀 경우도 많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도움을 받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가끔 점심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분들로부터 당신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아 나도 고국에 돌아가면 당신들이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보람을 느낍니다. ‘아 이분들이 도움만 바라고 온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우리의 진정이 이분들에게 전달됐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얼준 둥겔이라는 네팔 사람이 있었는데 오토바이를 타다 다리를 다쳐 무려 아홉 번이나 수술을 하게 돼 우리가 도와줬습니다. 치료를 마친 뒤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됐는데 한국에서 받은 은혜가 많은데 귀국해서 우리 동포에게 은혜를 베풀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실제로 귀국해서 크리스천 여성과 결혼해 고아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알고 보니 둥겔이란 아직 카스트 제도가 남아 있는 네팔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브라만중에서도 최상위층에 속하는 신분임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이 사람은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고 봉사활동을 시작한 겁니다.”

 

―희년선교회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까.

 

우선 법률상담이 있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로펌 중 하나인 세종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와서 다양한 인권상담을 해 줍니다. 한국어 교육도 중요한 활동이고 다른 나라 언어들을 교육하는 과정도 개설했습니다. 선교회인 만큼 선교는 역시 기본적인 활동입니다. 그러나 강요는 하지 않습니다. 본부에서 199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무료진료소의 경우 매주 5060명이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선교회 산하에는 희년의료공제회가 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국내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는데 월 8000원의 회비를 내면 공제회에서 보험증을 줍니다. 공제회와 계약을 맺은 세브란스병원, 고려대학병원, 현대아산병원 등 전국 500여곳의 병원에 가서 이 보험증을 제시하면 치료비의 60% 내외만 내면 되고 지불한 치료비의 절반은 다시 공제회에서 보전해 줍니다.”

 

―홍보를 거의 하지 않으면 도네이션이 많지 않을 텐데 기금은 어떻게 마련하십니까.

 

회원들이 헌금을 하고 일부 교회에서 도와주기도 합니다. 저도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매월 얼마씩 헌금을 냅니다. 요즘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여러 곳에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기아차그룹은 외국인 근로자 응급치료에 사용하라면서 올해 25000만원을 내놓는 등 지난 5년 동안 11억원 정도를 지원했습니다.”

 

―지난 17년 동안 개인적으로 헌금하신 돈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희년선교회 외에 여러 단체에 관여하고 있어 헌금을 하는 곳도 여러 곳이지만 큰돈은 아닙니다. 요즘은 수입이 연금과 강연료밖에 없는데 제 수입의 5분의 1 정도를 기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 큰돈이 나갈 때도 있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실 때에 비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처우나 이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개선됐다고 보십니까.

 

저는 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두 가지 모토를 지켜 왔고 앞으로도 지키려고 합니다. 모두 성경 말씀인데 하나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리지 않고 모금을 하는 것이 틀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가난이나 질병을 특정 기관이 모두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정부조차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구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한계를 처음부터 인정하자는 겁니다. 다만 사람을 돕는 데 있어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정말 감동을 받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향기가 나게 하고 그 향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게 하면 내가 못하는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채워 줄 거라고 믿습니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부나 힘 있는 사람들을 동원해 기금을 한꺼번에 끌어오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것은 시민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한 사람의 의지를 조금씩이라도 묶어 내는 것이 진정한 시민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국내 외국인 거주자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우리 사회도 다문화사회가 됐는데 어떤 철학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내 민족이 귀한 것처럼 다른 민족 역시 귀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민족주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제 저서 한국기독교와 민족의식의 서문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내 민족이 하나님의 축복하에 나타난 것처럼 다른 민족 역시 하나님의 축복 속에 나온 거고 따라서 내 민족의 문화가 중요한 것처럼 다른 민족의 문화도 중요한 것이다. 이걸 인정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민족마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그건 상대적인 것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겁니다. 우리 민족이 귀하게 대접받으려면 다른 민족으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하고 존경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다른 민족을 존중하고 도와야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나눔과 봉사의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저는 강연을 할 때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참부자가 아니라 많이 나누는 사람이 참부자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물을 주는 것은 우리만 쓰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통로다. 주기를 원하는 사람, 주는 것이 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만큼 더 많은 재물을 주신다.’ 그런 나눔을 통해서 결국 우리 사회가 더 풍요해지고 더 성숙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10.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