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 럼/이만열 (초대 대표, 1993.6~2020.2)

외국인근로자를 섬기는 이유 (이만열)

희년선교회 2021. 9. 8. 22:34

비 때문에 질척거리던 지난 811일 오후, 내가 돕고 있던 희년선교(의료공제)회에 몇몇 일본 손님이 왔다. 릿쿄(立敎) 대학 산본마츠(三本松) 교수를 단장으로 한 일행 9명이었다. 이들은 문부과학성 소관의 일본학술진흥회에서 연구비를 받아,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의 생활 실태와 복지 지원에 관한 연구를 실시했고, 2009년부터 향후 5년 동안은 이주생활자의 생활 지원과 이민정책의 복지 과제에 관한 한일 비교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데, 한국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회의에 앞서 나는 인사말을 겸해 이들에게 내가 섬기고 있는 희년선교회의 설립 동기와 그동안의 경과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전파를 타게 되자, 한국의 발전상을 알게 된 동남아 젊은이들이 코리언 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밀려왔다. 그러나 그들은 곧 차별대우와 인권, 체불 문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희년선교회는 1993년 무렵부터 구로 지역에서 그들에게 쉼터를 제공했고, 매주 무료 진료를 마련하는 한편 2년 뒤에는 의료공제회를 세워 사실상 의료보험을 실시하게 되었다. 지금도 전국의 500여 뜻있는 병원들이 협조해 주어서 그런 대로 꾸려가고 있다.

인사말 끝에 나는 외국인근로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일본과 관계가 있다고 했다. 내가 이 일에 관여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못지않게 일제 식민지시대를 공부하고 있는 역사학도이기 때문이다. 일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민족에게 학정을 감행했다. 19세기 후반 개항 전에는 일본이 한국을 멸시하지 않았고, 식민지시대에도 문자나 업무에서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뒤떨어지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차별대우를 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일본과 한국은 민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울올림픽 이후 동남아에서 외국인근로자들이 왔을 때 그들은 한국인에게 멸시와 학대를 받아야만 했다. 당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동남아에서 온 근로자들의 65% 정도가 자기 나라에서 대학 공부를 했던 엘리트였다. 그런 우수한 사람들이 왜 한국에서 혹심한 차별대우를 받아야만 했을까. 그때 내린 결론 역시 민족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일제에게 민족적 차별대우를 받았던 한국인이 동남아 근로자들을 향해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한다는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고 한편으로는 분노가 일었다. 이것은 역사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렇게 설움을 당했으면 이제 다른 민족에게 그 설움을 앙갚음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새 동남아 근로자들에 대해서, 우리를 차별대우하던 바로 그 일제와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외국인근로자를 섬기게 되었고 이 사실을 당신들께 고백하게 되었다고 했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일말의 민족적 양심이 발동한 이후 나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등에서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해 토론할 때 상당히 힘이 빠졌다.

 

8·15 광복절을 맞으며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외국인근로자 문제를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일제와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이제 일제 식민시기를 더 이상 수치와 오욕을 반추하는 기제로 삼아서도 안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우리가 당했던 민족적 차별과 온갖 서러움, 수치와 오욕이 마치 남에게 그런 짓을 해도 된다는 정당화의 빌미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식민지적 경험을 더 이상 부끄럽게만 생각하지 말고 내면적으로 승화시켜 자산화(資産化) 할 때가 되었다. 부끄러움과 수치, 오욕을 소중한 자원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남의 지배를 받아보지 못한 민족은 깨닫기 어려운 아주 귀중한 영성(靈性)이다. 이 자산을 발전적으로 활용하여 오늘날 고난을 당하고 있는 다른 민족의 아픔을 보살필 수 있다면, 이 또한 민족적 성숙으로 가는 길일 터이다. 그래서 매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나눠줄 수 있게 되고, 다른 민족과 세계에 봉사할 수 있으며, 다른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여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기를. 우리가 식민지의 설움을 겪었기에 그 심정을 가지고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 다른 민족의 눈물을 씻어 줄 수 있기를.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게 설움을 당해 보았기 때문에 이 기도는 더 절실할 수밖에 없고, 그 염원은 결코 공허할 수가 없다.

 

2009818, ‘성숙의 불씨에 게재되었던 글을 옮겨 싣습니다.

 

 

(2010.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