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3-4]
헤어짐에 익숙해지는 목회
장 승 필 목사
4월, 부활절이 돌아오면 필리핀 마석교회 공동체가 교회창립의 해를 기념하는 부활의 축제와 교회창립축제를 함께 벌이는 것은, 2000년 4월 부활절에 마석 공동체가 주님이 인정하시는 교회 공동체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의미를 새삼스럽게 다시 되새기는 것은, 지구상의 큰 영적 사건인 주님의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의 죽음을 보는 듯한 마석의 광야 한 모퉁이에(마석 성생가구단지) 필리핀 마석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올해의 부활절 기념축제의 내용은, 부활하신 주님의 위대성이었습니다. 또한 필리핀 마석 공동체 교인들 생애 전체의 복음적인 삶의 시작이었던 것이 축제의 내용이었습니다. 5년 동안 광야 안에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된 믿음의 결과와 또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피조 된 존재의 성숙을 향해 달려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된 것도 역시 축제의 내용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석 공동체 형제. 자매들과 함께 그 첫 복음의 발자국을 다시 따라가 보는 의미를 갖게 된 것도 역시 역사적 의미로서의 축제의 내용이 되었습니다.
마석 공동체는, 처음 필리핀 형제 몇몇이 주축이 되어 그들의 숙소였던 콘테이너에서 토요일 성경공부와 성도의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모임을 계속 한 결과 매주 숫자가 늘어감에 따라 좁은 컨테이너에서는 도저히 인원을 감당하기 어려워져 공장 이층으로 장소를 옮겨 텐트를 치고 성도의 교제(fellowship)를 계속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마석 지역에 필리핀 형제. 자매를 위한 교회 세움을 선포하고 마석에 거주하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을 초청하여 말씀과 떡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척박한 땅은 경작되었고 복음의 씨는 뿌려졌으며 광야에서 연한 순이 나와 가지가 만들고 꽃은 피어 믿음과 회심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많은 생명들은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져 갑니다.
그동안 필리핀 노동자들과 함께 고달픈 삶의 애환의 시간으로 함께 노래하고 춤추면서 우는 동안에 형성된 복음 전도의 시력이, 이미 5년을 세월을 넘긴 탓이기도 하겠지요. 지난 5년 간 많은 필리핀 형제. 자매들이 마석, 한국 땅에서 주님의 은혜와 복음을 깨닫고 본국으로 귀국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도 온전한 믿음으로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필리핀 목회하는 저는 여러분과 함께 현실적인 믿음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하여, 2000년도 부활절을 통해 은혜받고 거듭난 지나(Gina) 자매의 중생 체험의 이야기와 최근 한국 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Mission을 받고 본국으로 파송되어 떠난 형제. 자매들의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첫 번째로 헤어지는 자매, 지나의 스토리
2000년도, 마석 공동체 부활절 예배를 통해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 새로운 복음적인 삶을 살다가 귀국한 지나(35세)는 1996년에 한국으로 입국, 생활의 터전을 만들어 가는 중 1999년 이민국에 붙잡혀 첫 강제 출국을 당했습니다. 그 다음해 2000년 1월에 재입국하여 다시 한국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중, 지나 자매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번째 한국 생활은 별로 모범적이지도, 성실하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만 짓고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필리핀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명목상의 기독교 신자였다”고 말하였습니다. “먼저 한국에 입국한 친 오빠를 통해 여러 번 마석 공동체 예배에 초청받았지만 늘 거절 하곤 하였는데, 어느 날 친구의 초청으로 마석공동체 부활절예배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오빠의 끈질긴 기도가 이루어진 셈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나 자매는 부활절 행사 참석을 위해 교회에 나왔으나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일종의 구경꾼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한 삶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단순한 구경꾼에서 우리 교회의 찬양 팀의 영감적인 찬양과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부르짖으며 주님께 자복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때에 그녀는 말하기를, “성령님께서 임재 해 주셔서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혔다”고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지나 자매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이룬 셈이 된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임재사건이 있은 후 지나 자매는 지속적이고 성실하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로 모범적인 교회 출석과 성경공부를 통해 많은 변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가구공장의 힘든 노동생활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주일예배와 성경공부를 약 5년 동안 한번도 결석한 적 없이 참석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 시작했으며 다른 지체들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아니 했으며, 형제와 자매들을 믿음으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윤리적인 실수로 벌어진 주변의 나쁜 소문으로 인해 남편으로부터 어려움과 좌절을 경험했지만 모든 것들을 참고 인내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남편도 그 자매의 윤리적인 실수를 용서하게 되었고 마석 공동체뿐만 아니라 마석 성생가구단지 내에서 많은 필리핀 친구들에게 좋은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한국 땅에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녀에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잘못을 회개케 하셨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신 다음 돌아갈 준비를 시키셨기 때문에 필리핀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후회가 없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나의 필리핀 고향 친구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본국으로 다시 파송시킨 것”이라고 믿으면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다”라는 말로써 오히려 우리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한국에 남아있는 그녀의 형제. 자매들에게 삶의 애환의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나 자매를 향하신 특별한 선교계획이 있으셨기에 필리핀으로 귀국시킨 상황을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의 역동적인 역설의 축복이라고 우리는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나 자매와 나는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3월17일)을 마치고 출국을 기다리면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지나 자매에게 몇 가지로 당부했습니다. “우리는 자매를 필리핀으로 다시 파송하는 것입니다. 자매가 한국으로 이주해 노동생활을 하였던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매는 그 결과 한국에서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던 진리를 잊어버려서는 안 되며 자매가 그동안 한국에서 말씀과 삶을 배우고 하나님과 성령의 은혜를 체험했던 많은 사건들을 기억하여 필리핀 이웃들에게 말씀을 증거 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라는 격려와 부탁을 했을 때, 그녀의 해맑은 미소로 답례 하였습니다. “장 목사님, 저는 결코 예수님의 사랑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며 주님을 위해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장 목사님, 저를 위해서 늘 기도 해 주세요”. 주님의 사랑 안에서 <목자와 양>이 헤어지는 이 아픔의 순간을 위해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쁨의 눈물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두 번째로 헤어지는 나의 오랜 친구 ...
2005년도는, 나에게는 정들었던 믿음의 친구들과 헤어지는 해이며, 필리핀 가족들에는 해후하는 특별한 해인가 봅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또 해후하는 가족 중에는, 나와는 아주 오랜 친구이자 교우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며 가리봉 공동체 생활을 했던 미드나 자매(47세)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지난 2004년 4월3일 한국에서 우리와 마지막 성찬을 나누었고, 또한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구수한 된장국으로 작별인사를 대신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최근 들어 한국 음식을 만드는 솜씨가 너무 훌륭하여 공동체내에서 인기가 너무 좋은 ‘넉넉한 아줌마’로 통했습니다. 모두가 미드나 아줌마를 좋아했지요. 공동체 친교를 위해 필리핀 형제. 자매를 위해 한국음식을 만들어 제공하였을 때마다 우리는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그러던 그녀도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나 그녀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미드나 자매는 한국으로 이주하여 삶을 시작한지가 올해로 14째 되는 해였습니다. 30대 초반에 한국으로 이주해 젊은 시절을 다 보냈습니다. 그녀가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이주했을 무렵 그녀의 아들은 5살이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객지로 떠도는 사이 아들은 어느덧 장성해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말없이 그녀를 비켜갔고 많은 세월 속에 젊음과 인생이 덧없이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그녀에 있어서의 유일한 희망은 그녀의 분신과도 같은 아들에 대한 끊임없는 연민과 사랑으로 만나고 싶었던 인간의 본능적인 기다림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녀를 한국 땅에서 버티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나는 미드라 자매의 한국에서의 삶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초창기 그녀의 삶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보다는 친구와 물질과 세상을 더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14년 동안 여러 공장을 전전긍긍해야 했습니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적 불안과 공장의 힘든 노동을 동시에 극복해야하는 현실이 그녀에게는,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불안정한 생활로 인해 그녀는 교회에 출석하였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낀 채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교회 출석은 단지 정보와 친구들 만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1996년, 희년선교회에서 필리핀 노동자들을 위한 예배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자매였지만 신앙과 삶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라는 격언처럼 , 미드나 자매는 서서히 믿음의 삶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과 성령님의 간섭하심으로 과거에 입었던 상처들을 치유하게 되었고 회복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전과는 다르게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되었고 교회생활을 성실하게 했으며 주님과 교제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올해 겨울 수련회(2월) 때에 많은 은혜를 받았고 과거의 상처와 한국에서 받았던 상처가 완전히 치유가 되었습니다.
공동체에서는 2005년도 3월, 그녀를 집사로 임명, 일꾼으로 세워 본국으로 파송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을 떠나기 전,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동안 피터 목사님, 속 많이 상하게 해 드려 무척 죄송합니다. 피터 목사님이, 오랜 세월 저를 위해 영,육간의 사랑과 관심을 갖고 격려해 주셨지만 저는 세상이 너무 좋고 돈이 좋아 교회생활을 충실하게 못해 죄송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제 늦게나마 구원의 확신을 얻고 공동체 지체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셨던 주님과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겪었던 일들과, 그리고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저에게 베풀어 주셨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때가 되어 필리핀에 돌아가지만 피터 목사님께서 늘 말씀해 주셨던 예수님에 관한 말씀들 절대로 잊지 않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그 자매에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자매가 14년 동안 한국에서의 살면서 좋지 않았던 기억들은 인천국제공항 바닷가에 다 버리고 좋은 기억들만 간직했다가 어렵고 힘들 때 그것을 마음에서 하나씩 꺼내어 생각하면 좋지 않았던 생각들이 회복될 것입니다”라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권면해 주었습니다. 항상 수줍음을 타는 그녀, 또한 그녀만이 내보이는 햇살처럼 고운 미소와 웃음을 뒤로 한 채 나는 또 한 마리의 양을 그들의 둥지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세 번째 친구들과 헤어짐
제이슨 형제와 말루 자매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로, 1997년 겨울 각각 한국에 입국, 서울 가리봉 이주 노동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리봉에서 만나 서로 의지하면서 정을 나누었습니다. 말루 자매는 제이슨 형제보다 나이가 연장이었습니다. 제이슨 형제는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런 관계가 인연이 되어 말루 자매는 동생 같은 제이슨 형제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했고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되어 1999년 10월 24일, 나의 결혼 주례로 해맑은 가을에 하나님과 많은 친구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 올린 후,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하나님의 축복으로 귀여운 아기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부부는, 한국의 IMF를 맞이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잘 다니던 공장으로부터 임금체불의 어려움이 생기자 그들은 가리봉을 떠나 성수동으로 이사, 봉제공장 보조공으로 힘겨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 공장 역시 경기가 좋지 않아 그들 부부는 실직을 자주하게 되었고 그 결과,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이슨 형제는 “절망감과 불안감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나에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말루 자매에 의하면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주를 마신다”고 하였습니다. 가끔씩 교회 출석해 기도제목을 나눌 때면 항상 남편의 술 문제가 거론이 되었습니다. 저희 공동체에서는 이런 제이슨 형제를 위하여 항상 기도를 했습니다.
그들은 성수동에서의 빈번한 실직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옛날에 살던 가리봉으로 생활 터전을 옮겨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말루 자매는 우리 공동체에 자주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말루자매는 눈물이 마를 때가 없었습니다. 항상 그렇게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으며 또한 성령님의 만지심을 경험했고 차츰차츰 그녀의 남편인 제이슨 형제도 술을 의지하지 않고 그녀와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며 살았습니다.
최근에 제이슨 형제는 “교회를 잘 출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미안한 마음이 항상 있어 왔다”고 그의 부인인 말루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불경기로 인해 일자리가 없어지자 고민하다가, 계속 지내기가 어려워 필리핀으로 귀국하기로 결정했다”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들 부부는, 지난 4월 14일로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들 부부가 떠나기 전날, 저는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격려를 했습니다. “비록 당신들이 한국에서는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고향에 돌아가면 예수님 절대로 잊지 말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기를 바랍니다. 필리핀은 한국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울 텐데, 예수님 없는 삶은 너무나 비참하고 공허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기 바란다”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또한 “내가 금번 가을, 단기 필리핀 선교를 위해 당신의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 우리 그때 다시 만나 기쁘게 서로 교제할 것”을 약속하면서 헤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필리핀 공동체에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친구들과의 헤어짐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남은 자들에 대한 계획과 꿈을 갖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람을 세워 교회의 일꾼을 세우신 일입니다. 가리봉 공동체에서 7명의 집사와 마석 공동체에서 9명의 집사를 포함한 모두 16명의 집사를 일꾼으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지도자적인 자질과 신앙이 겸비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동안 훈련을 통해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믿음의 모범을 보였으며 다른 이들에게 신앙적으로 귀감이 되었으며 많은 친구들을 위해 섬김과 나눔으로 봉사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격려한 후, 나는 주님과 교인들 앞에서 책임적인 사명을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믿지 않는 이웃을 찾아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국에 돌아가서는 그들이 한국에서 만난 주님에 대한 영적인 경험과, 성령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은혜들을 동일한 원리(마28:19-20)로 필리핀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헤어진 경험을 통해 배운 목회적인 아픔과 그 아픔 속에서 꽃피워진 필리핀을 향한 선교의 열정을 위하여 그들과 복음적인 접촉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들을 ‘주님의 전사’(warrior of Jesus)로 세우기 위해 우리 필리핀 공동체 교회는 성령님의 절대적인 역사하심을 주님께 요청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방을 향한 구원의 큰 계획 속에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을 특별히 택하셔서 한국으로 보내주셨다고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경륜 속에, 가난한 자와 부한 자를 공평하고 정의롭게 대하시기를 희망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동역자들과 헤어짐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응답하는 현실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복음의 희망’을 위하여 외국 나그네들을 쉬지 말고 정진되기를 열망합니다. 나는 오늘도 그들을 향한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하여 그들을 섬길 것입니다.
“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14;14-15).”
희년국제선교교회 소식
1. 3월 27일 신우교회(이익재목사)에서 마석 공동체를 방문해 주셔서 미용으로 봉사해 주셨습니다.
2. 4월 17일 박용대 선교사님께서(필리핀) 가리봉 공동체 방문하셔서 주일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3. 4월 17일 장영필 목사님께서(미국) 마석공동체에 방문하셔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4. 장승필 목사는 4월 18일부터 22일까지 “가정교회” 세미나에 참석합니다.
기도제목(가리봉)
1. 본국으로 돌아간 Myrna 자매와 Jason 부부들이 지속적인 신앙생활과 정착을 위해
2. 주니형제의 재입국을 위해(5월 9일 출국예정)
3. 가리봉 공동체에서 리더로 세워진 형제들이 신앙으로 잘 성장되고 믿음을 지키도록(주니, 칼로이, 신디어, 수잔)
3. 준 전도사님 10월에 귀국하여 교회 개척을 잘 할 수 있도록
4. 가리봉 지역에 형편이 어려운 어린아이들을 위한 “영어야학교실”을 개설할 예정인데, 잘 진행되도록(재정, 선생님, 학생수급). 일차 협의회를 4월 24일 할 예정임.
5. 현정남 전도사님이 인도하시는 한인들을 위한 성경공부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마석
1.귀국한 형제들이 정착과 함께 교회생활을잘 할 수 있도록 (살리, 지나 자매, 크리산토 형제)
2. 공동체 리더들이 믿음으로 성장하고 성숙되어 형제들을 잘 섬기며 성령충만 할 수 있도록(아토, 길도, 보얏, 형제, 벨리아, 테레사, 제시, 바뎃, 자매).
3. 매주 금요일 성경공부에 많은 친구들이 참석 할 수있도록
3,4월 후원해 주신 교회 및 개인
신광(5),일산은혜(20).남서울 평촌(20), 하나로(5), 은곡(5), 분당소망(10), 새희망(7),
신우(10), 남서울산본(11), 할렐루야새가정부(15), 나들목영등포 가정(15), 밤비니교육센터(30), 산성(5). 사랑남412 (5). 동성(5) 황태선(3) 김종철(5) 배순영(10),
'국내 희년공동체 > 희년국제선교교회(故 장승필 2003~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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