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 럼/이만열 (초대 대표, 1993.6~2020.2)

민족해방의 교훈 (이만열)

희년선교회 2021. 7. 17. 22:23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찌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 8:11-16)

 

 

 

  며칠 전에 우리는 다시 8·15를 맞았습니다. 이 날 저는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거행된 제 58회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이날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날이면서, 새로운 나라 대한민국을 건국한 날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이 날을 광복절이라고 하는데, ‘빛을 회복했다’는 의미의 광복이란 말은 이 때  국권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복은 1910년까지 존재했던 그런 전제군주국가의 국권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서  일제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다는 해방이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제가 광복이라는 단어 대신 해방이라는 말을 강조한 것은 우선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던 그 시기를 조명하자는 의도도 있지만, 아직 해방은 맞았지만 완전 독립을 의미하는 ‘광복’을  찾았다고는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토와 민족은 아직도 분단된 상태를 면치 못했고, 이산가족 1천만명을 그대로 둔  채 그들의 눈물어린 애소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죄송한 표현이지만, 외군군대는  언제쯤이면 철수하게 될지 그 시한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고 보니, 광복이라는 말이 완전자주통일 독립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좀처럼 광복이라는 말을 쓰기가 힘듭니다.  
말씀드리기에 앞서, 오늘 8·15 기념주일에 역사를 공부하는 저를  초청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리며 그런 의미있는 초청에 응답하는 내용으로 말씀을 드리겠다는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평소 이 시간과는 달리 한국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좀 나오더라도 8·15 기념예배라는 틀에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평소에 구약 성경이 주로 역사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그 때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제국주의는 19세기이래 세계사에 본격화된 침략주의·강권주의를  통틀어 일컫는 것입니다.  19세기에 들어서서 산업혁명을 통해 등장한 강대국들이 자기 나라의 산업자원과 원료생산지를 구하고 자국에서 생산된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해외에 식민지를 구축하는 것을 본격화했습니다. 그들은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주로 서구국가들이 제국주의의 선봉에 서서 아시아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구축해 갔습니다. 동양에서는 1850년대에 구미 열국과 통상을 시작한 일본이 산업화에 앞장서면서 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식민국가들이 서구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서구국가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만, 일제의  침략이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는 판이하게 다른, 매우 악랄한 식민정책을 펴 왔다는 데서 주목되는 것입니다.
보통 서구형의 식민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유형화하고 있습니다. 영국형과 프랑스형 그리고 네덜란드형입니다. 영국형은 경제적 수탈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여, 피식민지 지역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려 했으며, 보통 간접지배 방식을 지향했습니다. 최소한의 관리와 군대를 파견했고 식민지 행정에서는 토착인으로 충원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고등교육도  시켰습니다. 프랑스형은 경제적 수탈의 극대화를 목표로 했으나 영국형과는 달리 직접지배를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식민지 관리는 대부분 프랑스인을 고용했습니다. 프랑스형은 토착인의 민족보존운동에는 방관적이었지만 그들의 민족문화운동을 통제하고 강제적으로 프랑스어와 카톨릭교, 프랑스 문화를 이식하려고 했습니다. 네덜란드형은 경제적 수탈의 극대화를  목적으로하고 직접 지배 방식을 취했으나 프랑스와는 달리 토착인의 민족보존과 민족문화운동  등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때문에 서구형 중에서는 프랑스형의 식민정책이 가장 악랄했습니다.
일본이 당시 조선에 대해 쓰고 있던 식민지배 정책은 프랑스형의 정책에다  민족말살정책을 가미한 것이었습니다. 흔히 일제가 내세운 ‘내선일체’니, ‘동화정책’이니, ‘황국신민화정책’이니 하는 것은 민족말살정책을 기만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일제는 세계사에서 가장 악랄한 식민정책을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10년 일제는 강점 이후, 조선은 야만민족이라고 단정하고 야만민족에게는 총칼에 의한 탄압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총칼에 의한 소위 무단통치를 감행했습니다.
관리들이 여러 가지 색깔의 테를 두른 모자를 쓰거나 또 칼을 차는 등의 행위는 바로  그런 무단통치의 한 상징이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한국인의 거족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들은 정책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위 문화통치라는 유화정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몇몇 한국어 신문을 만들게 하고 고등교육기관도 세워주면서 소위  내선일체라고 하여 동화정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형의 수탈 정책에다 민족말살정책을 가미한 일제의 식민정책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매우 강화되었습니다. 일제의 침략전쟁은 만주·중국으로  전선을 확대했고 미국과의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제는 그들의 동화정책을 황국신민화정책이라고 불렀습니다만, 민족말살정책을 기만적으로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 본질은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역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일본 궁성을 향한 궁성요배,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데서 드러나듯이, 민족말살정책 그것이었습니다. 이 무렵이면 징용과 징병을  강요하고 여성들에게는 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성노예까지 강요하고 나섰습니다. 그 수가 징용·징병·정신대·성노예까지 합치면 수 백만에 이르렀습니다. 최근에 그 명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해방 후 몇 십년간 이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하던 한국인들이 우리 정부의 무성의함을 탓하여 최근 국적포기운동을 감행한 것은 이미  언론에 공개된 바 있습니다.
오죽하면 그들이 한국국적을 포기하겠다고 나섰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시기에 우리에게 해방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백성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 (행 17:26) 하셨다고 했습니다. 민족의 존재를 그의 창조와 섭리의 질서 속에서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은 이같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습니다. 때문에  민족말살의 위기에서 우리 민족을 살려낸 그 해방은 한민족의 존재를 복원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민족  지배에서 이 민족을 해방시킴으로 잃어버릴 뻔한 우리 말과 우리 글, 우리 역사도 되찾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해방은 단순히 정치  경제적 속박에서 벗어난, 다른  식민지국가의 해방과는 차원을 달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남다른 감회가  있는 해방입니다. 아시다시피 일제는 그들의 천조대신을 주신으로 하고 당시의 천황을 현인신으로 받드는 소위 신사참배를  한국인들에게 강요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초등학교 학생에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지방에까지 설치된 신사에 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사참배는 한국인들에게 일상화되었고 거부항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천주교회는  1930년대 초에 이미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으로 인식하여 참배해도 무방하다고 지도부에서 결론을 내리고 신도들에게  시달했습니다. 교단과 신자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합니다마는, 일제 말까지 신사참배에  항쟁하면서 옥중 투쟁 혹은 순교까지 당하게 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서 거의 유일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일제 말기에 이르면 대부분의 교회마저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하면서 우상숭배를 국가의식으로 정당화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이면  한국 기독교는 그 정체성마저 짓밟혔고,  종래 우상숭배와 대결하던 기독교의 순수성은 훼손되어 그 명맥을 유지하기가 대단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해방이 주어졌습니다. 전거가 불확실하긴 하지만, 일제는 8월 17일경에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을 몰살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틀 앞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방을 주셨던 것입니다. 일제의 계획이 사실이라면  당시 신사에 무릎꿇지 아니한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대부분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엘리야 때에 바알신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두었듯이(왕상 19:18), 하나님께서는 일제의 태양신에게 무릎꿇지 않은 자들을 보전해서 해방 후의 한국 교회를 재건케 했습니다.  이렇게 1945년 8·15의 해방은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8·15  기념식 때에도 부릅니다만, 애국가의 일절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애국가가 구한국 때부터 이미 불려졌기 때문에 그 구절을 꼭 8·15 해방과 결부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국가의  작사자가 윤치호 혹은 안창호로 좁혀지고 있고, 어떤 분은  두 분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그 가사를 합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윤치호나 안창호가  기독교인이라는 점에 유의해 본다면 그 구절이 기독교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8·15를 떠올리면서 애국가의  그 일절을 연상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국가의 내용대로 우리에게 해방의 기쁨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거대하신 섭리 속에서 우리 민족에게 해방의 그 날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해방을 맞았다고 해서 우리 민족이 독립과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주장은 자칫 연합국의 승리로 우리가 해방을 저절로 맞게 되었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믿음 좋은 기독교인들은 바로 연합국의 승리에 관련시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절을 결부시키기도 합니다. 이것은 해방을 위한 우리 민족의  노력과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연합국을 통해 우리에게 해방을 주셨다는 것으로 이해되기  쉽습니다. 이런 생각이 사실을 전부 외면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 강점 후 곧 복벽운동(옛 왕조를 회복하려는 독립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만, 독립운동이 본격화되는  것은 3·1운동을 계기로 해서입니다. 독립운동의 양상을 보면, 상해를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운동과 만주·연해주 지방을 거점으로 한 무장독립운동, 하와이·미주를 중심으로 한  외교운동, 한반도 안에서 전개한 실력양성운동 등으로 대별될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운동은 안창호·이승만·이동휘·김규식·김구 등의 기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전후 27년간 계속되었습니다.
세계 최근세사는 해외에서 27년간이나 망명정부를 가지고 독립항쟁을 계속한 민족이 한민족 외에는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무장독립운동은 1920년대의 봉오동승리와 청산리대첩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1930년대에 이르러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중국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함에 따라 점차 위축되었습니다. 그 뒤  무장독립운동은 중국 관내에서는 한국광복군과 조선의용군으로 재편되었고, 만주지역에서는  중국 항일투쟁세력과  연합하여 동북항일연군 등을 조직하여 일제에 대항했습니다.
이렇게 전개되던 항일독립운동은 1945년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이르면, 김구·김규식·김원봉·지청천 등이 이끄는 중경의 임시정부(한국광복군)를 비롯하여 하와이·미주의 미주한족 연합회, 김두봉·최창익·무정·한빈 등이 이끄는 연안의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대,  만주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 그리고 한국  안에서는 건국동맹을 이끈 여운형 등의 세력으로 크게 구분되었습니다. 해방을 맞이하던 시기에 광복군은 미얀마 전선에서 연합군과 합동작전을 벌였는가 하면, 미국 OSS부대와 힘을  합쳐 국내 진공까지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해방은 한국 독립운동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연합국 측의 승리에 의해 맞게 되었습니다. 해방이  우리의 독립운동에 의해서 이뤄졌다면 아마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을 맞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같은 한국의 독립투쟁의 실상은 해방이 단지 연합국의 승리에 의해서만 이뤄졌다고  하는 생각을 교정시켜 줍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해방이 연합국의 승리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해방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더 많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존심을 약간 높여 주시면서도 해방이 우리만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더 겸손케 하고 감사할 일이 많게 했으며, 하나님을 더 의지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 읽은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에, 애굽 땅에서 종노릇하던 시절과 광야 40년의 고난을 더욱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 불뱀과 전갈이 득실거리는 물 없는 사막에서도 만나와 물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경고합니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과 자유를 맞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케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오늘날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었다고 하지 못하도록 하며 더 겸손한 민족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해방하시고 자유케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방자요 자유케 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성경 여러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시편 146편 5-10에서는  총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천지와 바다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억눌린 자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해방은 바로 억눌린 한국인을 위한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때 연합국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연합국이 정의로워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빌로니아왕 느부갓네살을 들어 유다를 치는  막대기로 사용하시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나의 목자’(사 44: 28)라고  하시면서 포로된 유다민족을 귀환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케 하셨습니다. 그들이 정의로워서 채찍으로 혹은 성전건축 명령자로 세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한 것입니다. 연합국을 들어 일본을 항복시키고  한국의 해방을 도운 것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소련과 미국이 정의로웠기 때문에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시편 146편에 나타난 해방자 하나님은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갇힌 자를 해방시키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해방자 하나님은  맹인들의 눈을 여시고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의인을 사랑하시고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고 악인들의 길을 굽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을 통해 해방하시는 성부 하나님을 발견한 자들은 신약성경을 통해서 이 땅을 해방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 보면 성자 예수님은 자신이 보냄을 받은 사명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신다”(눅 4: 18). 예수님은 이사야서 61장 1절 이하를 인용하여 당신께서 이 땅위에 보내심을 받은 사명을, 포로된 자와 눌린 자에게 자유함을 주고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의 말씀에서, 해방하시고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이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한다 하여 추상화시키고  말았습니다. 포로된 것이나 눌린 것에서 자유케 한다는 것은  모두 죄로부터 해방하고 자유롭게 한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틀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진의가 죄악으로부터 해방하고 자유케 하는 것만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풍요함을 인간의 자의로 협소화시킨 것입니다. 죄악으로부터 자유케 함은 물론이고, 온갖 억눌림과 부자유와 불의로부터 자유케 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 했습니다(고후 3: 17).
여기에 기독교의 핵심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 없이  설정한 온갖 울타리와 구덩이, 제도와 관행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자유케하여 참 인간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말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 31-32)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은 전 국토가 하나의 포로수용소와 같았습니다. 거기에다 일제는 민족말살책까지 획책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통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해방하시고 자유케 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되면, 우리 교회와 신자의 사명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해방과 자유를 상징하는 8.15를 맞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해방과 자유정신을 이 시대에 온갖 압제세력에 대항하는 힘으로 양성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와 같은 노골적인 침략국가는, 한 두 나라를 제외하고는,  보기 힘듭니다. 그 대신 권력화된 많은 집단들이 생겨나 활개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힘없는 개인과  집단은 또 하나의 억눌린 자와 포로된 자가 되고 눈먼자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과거 약자로 취급받던 단체들이 권력화하여 오히려 자유와 해방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이끄는 교회는 이제 거대한 권력집단으로 변해서 자유와 진리를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대형교회 목회자 세습반대에 관여한 경험은 이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학·박사와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지성인들이 교권 앞에 무력화되는 현상을 보면서 한국 교회는 사회에서 건전한 지식인을 교회로 끌여들여 또 하나의 포로된 자·눈먼자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교회가 복음의 이같은 정신에 따라 진리와 자유가 넘치는 기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와 신자들이 기독교의 해방정신을 체득하여 온갖 죄악과 불의한 제도와 관행, 권력화된 집단으로부터 인간을 참으로 해방하는 역할을 감당토록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주는 또 하나의 귀한 교훈은 이스라엘을 향해 애굽에서 종되었던 시절과 광야에서 방황하던 40년의 고난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기억하고 역사화시키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 속에서 말살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부끄러운 역사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그 하나님은  8.15를 맞은 한국민족에게도 부끄러운 과거를 잊지  말라고 요구하실 것입니다. 독일의  전 대통령 폰 바이첵커는 종전 40주년을 맞아  행한 연설에서, 과거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자에게는 미래도 없다고 했습니다. 독일 뮌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하우에는 나치하에서 설치된 유대인 수용소 유적이 있습니다.  그 곳의 개스실  유적 앞에는 “용서하라  그러나 기억하라”라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광된 과거만 역사로  남기기를 원하지만 사실은 부끄러운  과거를 더 확실하게 역사로 남기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부끄러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과거 식민지의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여 그것을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 식민지적인 경험을 자산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우선 선교활동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구미교회의 선교에 대한 반성이 많이 일어나면서 구미계통의 선교사업이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적인 선교라는 비난 때문이지요. 구미계통의 백인선교사들의 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식민지 경험을 가졌던 한국 교회는 그 쓰라린 경험을 교훈 삼아 복음으로 세계를 섬기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식민지 경험을  가진 지역일수록 부담없이 한국 선교사들을 원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식민지 경험을 활용하면서 그 경험을 다른 민족에게 나누고자 할 때에는 약한 민족들을 섬기거나 때로는 그 민족들로 하여금 쓰라린 식민지를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섬기는 것도 그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코리언 드림을 안고 우리에게 온,  우리보다 약한 외국인근로자들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일본에게 식민지로 억울함을 당한 경험을 자산으로 간직하면서 활용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식민지적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민족에게는 주체적인  공동체를 조직토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식민지의 나라없는 설음을 경험한 우리들의 자세요, 해방하시고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쿠르트 족이 있습니다. 성경에 메디아 민족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오랜 동안 나라를 갖지 못했고 현재는 터어키, 이락, 이란, 시리아 등 강대국에 분할 통치되면서 갖은 혹독한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받는 학대는 독립국가를 결성함으로 감소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때에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은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이들 힘없는 민족과 주권없는 민족을 위해 나눠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주권국가를 만들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식민지 경험의 활용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해방되어 분단된 국토로 남아 있는 우리 민족을 향한 경고와 약속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 끝에 하나님께서 우리는  해방시키시고 광야 40년과 같은 가시밭길을  걷게한 것은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를 해방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가나안 땅을 정복토록 한 것은  히브리 민족이 의롭거나 정직해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꼭 같이 우리 민족을  해방하시고 분단 속에서도 사회와 경제를 성장시킨 것은 우리가 의롭거나 정직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브리민족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출애굽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한민족이 울부짖는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한민족에게 해방과 자유를 허락하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국의 역사를 보시면서, 대내적으로는 오랜동안 귀족·양반 계급과 전제군주에 의해 압제받던  민초·민중들을 생각하셨을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대륙과 해양의 침략을 받아 수난을 겪어온 한민족을 배려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해방은 한국에 새로운 국가로, 전제군주국가가 아닌 민주국가를 세우도록 해 주셨습니다.
한국사의 큰 틀에서 본다면 한국이 식민지로 전락된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견해일 수도 있지만, 한국을 근대 민주국가로 만들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한국이 식민지로 전락되지 않았다면 전제군주와 혈통차별적인 양반계급이 다스리는 나라가 민주국가로 변혁되는 데에 얼마나 오랜 시간과 심한 진통을  요구했을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연합국의 승리와 함께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하나님은 통일자주국가는 우리의 힘으로 이룩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동족상잔의 시련으로  깊은 원한의 골이 패여 있지만,  통일하지 않고서는 이 민족에게 완전한 해방과 자유는 낙관할 수  없습니다. 한민족을 내신 하나님은 우리 민족이 자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해방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민족해방의 의미와 교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에너지화하려면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겸손한 자세로 감사하면서 아직도 해방과 자유의 혜택을 받지 못한 계층·이웃·민초들을  향해 나누고 섬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다른 약한 민족과 세계를 섬기기 위해 해방과 자유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아서는 안됩니다(갈 5: 13). 우리에게 주신  해방과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아서는  결코 안된다는 뜻입니다. 자유하게 된 자들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할지언정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아야 합니다 (갈 5: 13, 1). 기독교 복음은 이런 진리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민족해방이 주는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200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