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선교'라고 했을 때 핵심 원리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사회선교의 신학적 핵은 하나님의 통치, 즉 '샬롬(shalom)'에서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정의와 평화가 두 축이 되겠지요. 예전에는 이를 구현하고 실천하는 중간 공리로 민중성이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교회의 기초 공동체를 신앙공동체이자 해방공동체로 보았기에 현장 투신, 가난한 자와 소수자와의 연대 등을 바탕으로 교회는 개혁과 갱신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드러낸다는 구도입니다. 그것이 1970~1990년대까지 왔다고 보는데, 요즘은 사회 주변부에 놓이게 되는 것이 경제나 노동 등의 계급 혹은 계층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 소유의 여부 등으로 다양화되고 분화되는 상태인 것 같아요.
문제가 과거보다 다양화되고 분화되고 있다면 대응하는 방식도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이제는 어떤 문제를 다루는데 전문성과 영성이 함께 가야 합니다. 그리고 샬롬에서 정의와 평화가 핵심인데, 과거에는 정의의 문제가 강력했습니다만 이제는 평화의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평화운동 제대로 한 적이 있습니까. 김두식 교수가 평화주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의미가 큽니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서구와 비서구가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충돌이고 그것을 이데올로기화해서 문명의 충돌로 설명하고 있잖아요. 다시 평화의 문제가 중요해졌어요. 종교다원주의로 풀 것인가? 나는 다원주의는 아니지만, 다원성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종교전쟁에 빠져들지 않고 멈출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가장 비기독교적, 비예수적 행위가 전쟁 아닙니까. 폭력이라는 악기로 예수의 노래를 연주할 것인가 말이죠. 평화의 원칙을 지키는 신학과 신앙운동이 필요해요.
오늘 우리의 현실도 평화의 문제를 긴급하게 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한반도 평화 문제가 크지요. 우리는 동서간, 친미반미, 친노반노 등 대내적 평화도 필요하고, 남북간이나 인근 국가간 평화도 필요해요. 기독교가 평화주의자(peace-maker) 역할을 해야 해요. 평화 문제를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진보 보수 논쟁보다 더 급진적 논쟁이 벌어질 거라고 봐요. 예수는 종말론적 무정부주의자 아닙니까. 공권력이 필요 없는 세상이 산상수훈의 세상입니다. 실현 방식은 '아가페의 길'이구요. 그걸 위해 전도하고, 선교해야죠. 영성적 인프라 위에서 남북, 남남, 한일 간의 갈등을 넘어서야 합니다. 핵 문제에 있어서 평화주의자는 비핵화를 선택하고, 현실주의자는 대응 논리를 주장합니다. 과거 동서독이 분열되었을 때, 핵을 들여오는 문제에서 서독 기독교계가 분열되었어요. 보수주의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입장을 선택했습니다. 평화주의자들은 산상수훈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우리 상황은 ‘핵 평화주의’를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핵은 정당한 전쟁론의 7가지 조건이 해당되지 않는 예외적 상황입니다. 무차별적 희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평화주의 노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렇죠. 그렇게 되면 시민운동과 공동 대처할 영역도 많이 생깁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일할 여지가 생기는 겁니다. 물론 평화운동에는 우리 고유의 기본 이론과 노선이 있어야 합니다. 이라크 파병 때 ‘국익 때문엷라고 했는데 ‘애국 시민’은 그 이유로 침묵할 수 있으나, 교회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국가이익 때문에 침묵한다면, 나치즘의 국가 교회가 저지른 오류에 다시 빠지는 것입니다. 나는 복음주의자들이 과거 남미의 급진적 제자도 운동 그룹이 지녔던 정의의 추구를 평화의 추구로 되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와 번영은 정의를 추구할 때 오는 것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 구로희년교회 사역을 하시고 이곳에서 목회를 하시게 된 과정을 들려주시죠.
1980년대 복청학련 세대가 관계 기초가 되어 희년교회를 했어요. 학생 일부가 공장에 위장 취업도 하고, 탁아소, 노동자 학습하는 공동체 등을 하고 있었어요. 최은석(SFC) 이승재(ESF) 박문재(장신대) 등이 주요 멤버였고, 대학촌교회의 박영범 유욱 등은 나중에 부분적으로 참여했었지요. 같이 교회를 하기로 했는데, 기문노련 사건(당시 거의 와해된 상황이었던 서울대 중심의 '기독문화연구회'를 이적 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구속한 전형적 공안사건―편집자 주)이 터져 그 단체에 관련된 사람들은 다 잡혀가 버리는 사건도 있었지요. 1989년 교회를 시작했는데, 그때는 이미 노동운동이 활성화되어 1993년 희년선교회로 재편되면서 외국인노동자 사역으로 방향을 잡았지요. 당시 기독교권의 노동운동 단체나 민중 교회들이 급속히 쇠퇴하던 무렵이었어요. 당시 활동하던 여러 기독 단체들이 복음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공동화하거나 와해되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영성적 공동체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전문성과 영성의 조화가 보기 좋으라고 하는 주문은 아니었군요.
이 교회는 두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는 외형적 성장으로 자기만족에 빠져 서로 속는 겁니다. 특히 중산층 교회는 문화적 화려함, 세련미, 미학적 만족 등을 제공하다 보니 영성적으로는 피상화, 자아도취 되는 위험이 있지요. 이른바 '강남 복음주의'의 약점입니다. 둘째는 '균형 잡힌 기독교'의 오류입니다. 영성의 깊이를 추구해야 합니다. 급진적 제자도가 필요합니다. 균형만 잡아서는 안 되고, 통전적 복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산술적 균형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좌충우돌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복음에는 편파성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백성 사이에서 산술적 중립을 취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충돌이 있고, 적용점에 있어 편파성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러셨으니까요. 양비론적 기독교는 영적 기만입니다.
* 복음과 상황 161호 인터뷰 기사를 허락하에 게재합니다
(200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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