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3. 11)
인력(人力)을 원했는데 인간(人間)이 왔다
이헌용
새로운 외국인 노동자 고용제도인 ‘고용허가제’가 작년 8월, 정부에 의해 발효, 시행되고 있습니다. 산업연수제와 병행 시행되어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이 제도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동자’에서 ‘근로자’ 수준으로 끌어 올려진, 미약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의 개가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노동부도 이에 발맞춰 임금체불 및 구직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깊은 탄식 소리가 여전히 하늘을 울리고 있음은 어찌된 일입니까?
여전한 인간모독
새해 들어 선교회를 방문한 외국인 노동자의 상담 내용은 여전히 임금체불과 업주의 모욕적인 언행, 그리고 견디기 힘든 노동 조건 등입니다. 전반적인 불경기로 인해 업주들의 공장 운영이 어려워짐에 따라 불가피하게 임금을 체불하는 경우도 많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업주의 외국인노동자 임금체불은 다분히 의도적인 선택이라는데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외국인 노동자가 선교회를 방문하여 상담하기까지엔 그간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고통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합니다. 그 마음의 상함을 어찌 다 어눌한 한국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가슴을 후려칠 뿐입니다. 그들이 당한 비인간적 모독과 수모는 달리 하소연할 데가 없습니다. 본국이라면 서로 치고박고 하여 속이라도 풀겠건만 이방 땅에서 싸우면 즉시 출국 조처 당하니, 참으며 손해보는 쪽은 당연히 외국인 노동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일방적인 상황 속에서 누가 감히 한국인과 싸우려 들겠습니까?
임금체불과 같은 금전문제는 노동부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릴 법적 창구가 마련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체불임금을 받아내기 위한 복잡한 민,형사 소송은 외국인 노동자에겐 실현 불가능한 제도에 불과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알고 악용하는 업주들에 대한 대응정책이 시급하다 하겠습니다.
고생하며 일한 품삯을 받지 못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한국의 노동 현실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합니다. 모국에서 ‘겨울연가’를 보고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마음은 기억하기도 싫은 ‘겨울 한국’이 되어 마음 문을 닫고 한국을 떠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법적 보호 장치가 이제 미약하게나마 시작되었습니다. 정부는 이들을 위한 법적, 행정적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외국인 노동자와 우리 모두가 살 길입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말라기 3:5)
한국이라는 이질적 나라, 다른 언어, 다른 문화 속에 들어와 이 사회 하부구조의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우리 대신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할 때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자본주의의 논리로 이들의 노동을 당연시하는 이 시대에, 한국 교회가 빚진 마음으로 이들의 아픔을 돌아볼 때 하나님은 진정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라기 3:12)
(200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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