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외국인에게는 외국인의 모습으로
이헌용
한국을 찾아와 일하고 있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그의 자녀들, 결혼 이민자와 그의 자녀들 그리고 점증하는 유학생 등 다양화 하고 있는 외국인 현상에 정부의 ‘다문화 정책 사업’은 작년 하반기 열풍처럼 몰아쳐 왔다. 특히 국제결혼의 부정적 측면이 사회 문제화 되자 중앙 정부와 각 지자체는 이미 시작된 다문화 가정을 위한 프로젝트에 많은 자금을 급히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역곳곳에 다문화 가정을 위한 한국어 교실, 상담소 등이 세워지고 거리 곳곳엔 플랑카드가 걸리기 시작했으며 쏟아지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로 각 대학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시설들이 세워지고 조직은 갖추게 되었지만 정작 참여해야 할 다문화 가정은 어디에 숨었는지 나타나질 않았다. 급기야 다문화 가정 사람 좀 보내달라는 청탁(?)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던 웃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이주 노동자들과 결혼 이민자들이 안고 있는 오늘의 문제는 한국어교실이나 상담소를 세워서 풀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한국에 살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여 이 사회에 적응해야 할 것이지만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한국식 입맛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들의 대화에 갑자기 긴장감이 도는 것은 우리가 혹 알아들을까봐 그런 것은 아닐까? 어쩌다 그들끼리 만나면 봇물처럼 쏟아내는 그들의 모국어가 슬프게 들리는 것은 왜 일까? 그동안 한국에서 당한 온갖 어려움과 비인간적 차별로 인해 한국어 교육에 오히려 거부감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때이다.
우리 가운데 있는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것만을 계속 강요한다면 그들의 겉모습은 복종시킬 수 있겠지만 결코 마음을 사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이 침묵하며 따라오는 것 같지만 기회가 오면 서슴없이 자기 길로 나설 것이며, 우리는 그들 가까이 있지만 사이에 놓인 큰 장벽을 발견하고는 의아해 할 것이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린도전서 9:22)
우리는 영혼 구원을 위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다가갔던 사도 바울의 뜻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산다고 하여 그들의 구원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강자의 입장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스스로 겸손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우리를 곧 외면해 버릴 것이고 이로 인해 그들의 구원은 더욱 요원해 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겸손해 질 수 있을까? 우리는 먼저, 그들이 태어나 자란 곳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서 그들의 친구가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더듬거릴지라도 그들의 언어로 표현코자 하는 우리 사랑의 몸부림 앞에 스스로 마음 문을 열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희년선교회는 여러 단체들과 협력하여 각 나라, 민족별 언어훈련원을 세우고자 한다. 이 훈련원을 통해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움으로 그들의 영적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훈련코자 한다. 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길게 보고 배우기 시작한다면 그리 어려울 것도 아니다. 이러한 시도가 무모하다고 비춰질 수 있지만 우리는 긴 안목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주 현상으로 인해 이 땅에는 점점 더 다양한 민족, 다양한 언어의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될 전망이다. 이들로 인해 맞이하게 될 한국의 사회, 경제, 문화, 교육, 정치, 종교적 갈등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교회는 이에 대한 해답을 준비하고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이 한 민족을 품고 한 언어를 배울 수 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찾아온 다양한 여러 민족들을 섬길 수 있겠다. 세상엔 ‘영어’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지만, 교회는 아무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언어를 준비하자. 각자의 '난 곳 방언’으로 하나님 높이는 소리가, 많은 물소리처럼 가득할 그 날을 꿈꾸자. 우리는 지금, 다문화 이주민 사회를 맞이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 조용히 준비해야 할 때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200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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