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정재철 목사
헤세드홀딩스 대표이사, 전 아시안미션 이사장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신명기 10장 17-19절)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이 땅 위에서 자랐습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동남아의 한 나라에서 선교 및 비즈니스를 했는데 그때가 외국에서 나그네로 산 유일한 6년 반의 기간이었습니다. 언어를 배우고,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그 나라의 사람을 고용해서 비즈니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귀한 경험이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적도 있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현지인의 관심과 사랑과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타향살이란 어쨌든 눈치가 보이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 인한 적응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제 가족의 구성은 여섯 형제입니다. 부모님은 요즘으로 따지면 일찍 돌아가신 편입니다. 그런데 형들 가운데 두 분이 사우디에 70년대 말에 돈을 벌기 위해 노동자로 가신 경험이 있고, 두 분의 형은 80년대 초에 미국으로 이민 가셨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 작은 아버님 내외분은 60년대 말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일하러 가셨다가 한국으로 오지 않으시고 캐나다로 이민 가셨습니다. 작은 아버님이 한국을 떠날 때 중학교의 교감 선생님이셨습니다. 괜찮은 직장이며 지위였지만 광부로 서독에 가면 당시 월급의 10배 정도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척 형들 가운데는 월남전을 참전한 분들도 계시고 적지 않은 친척들이 미국에 이민하신 경우들이 있습니다. 영화 국제 시장의 축소판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이 사연은 비단 저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고 이리저리 따져보면 여기에 계신 여러분도 이 사슬에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가 어떻습니까? 잘 사는 나라가 되어서 동서남북의 여러 나라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를 찾아옵니다. 일하러 오신 분들도 있고, 공부하러 오신 분들도 있고, 관광과 혹은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 때문에 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있는 것조차도 모르는 시대가 불과 반세기 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긍·부정을 포함해서 전 세계가 관심을 두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기뻐할 일이고 감사할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나라들에 의해 빚을 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6.25 전쟁 때 18개국이 군사적 지원 의료적 지원이 7개국, 물자의 지원이 29개국에서 이뤄졌습니다. 그 가운데는 지금 우리가 소위 후진국이라 무시하고 홀대하는 동남아의 국가들도 많이 있고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겸허히 생각해 보면 이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이 나라가 있을 수 없습니다. 공산화되었을 수도 있고, 더 참혹한 빈곤과 고통 속에 내몰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교만해서는 안 되고, 이런 성장과 발전 그리고 풍요 속에서 어떻게 은혜를 베푼 나라들과 그 국민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또한 실행해야 합니다. 그 시작은 그들에 대한 존중이며 감사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SG KOREA 개강에 맞춰 이곳을 섬기는 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을 설명하는 많은 표현이 있습니다. 교회는 항상 인간을 설명할 때 죄인, 타락한 존재인 것으로 시작해서 구원의 필요성을 언급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죄인, 타락이라는 말은 죄인이 아니었을 때도 있었고, 타락하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렇다면 타락하기 전, 죄인이 되기 전에 묘사한 인간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똑같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정의를 따라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존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리라는 존재의 기원을 추적해서 올라가 보면 결국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아담과 하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든 먼 친척뻘인 셈입니다. 그런 우리가 남을 차별하고, 비하하고, 혹은 상대적인 비교 의식으로 주눅들 필요는 없는 셈입니다. 나아가 사람 위에 사람 있을 수 없고, 사람 밑에 사람이 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이들의 종교, 신앙, 문화, 민족, 나라, 신분, 남녀노소 및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사람이라는 자체로 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도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조직이 필요하고 관리가 필요해서 계급이 있고, 책임 이 따를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기능과 역할의 다양성으로 인정해야지 상하 혹은 우열의 영역으로 나누는 것은 건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선택한 이 일에 자부심을 가져도 될 분들이라 믿습니다. 좋은 경력과 경험을 가지고 계신 여러분은 자본주의 논리로 따지자면 엄청난 시급을 받을 수 있는 실력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재능을 기부함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동참하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왕 이 일을 하기로 했으니 어떤 마음과 자세로 할 것인지 말씀을 통해 세 가지 교훈을 받도록 합니다.
1.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17절)
세상에는 신도 많고, 주도 많으나 당신들의 주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 되시고 참 주님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사람을 차별하거나 뇌물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을 닮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못된 세 종류의 개가 있습니 다. 그것은 바로 선입견, 편견, 그리고 꼴불견입니다. 경험하지도 않고 미리 판단하고, 규정해 버리는 것을 선입견이라고 합니다. 외모와 경력과 출신으로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을 편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입견과 편견을 근거로 무례하게 구는 것을 꼴불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그들의 경험과 실력으로 판단하지 않으시는 공정한 분이십니다. 여기에 찾아오는 여러 나라의 여러 유학생이 있을 것입니다. 나라가, 피부색이 외모가 판단 기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수용하고 품고 사랑해야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2. 약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18절)
공평과 정의를 잘못 이해하게 되면 모두 똑같이 대한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생각입니다. 대상에 따라 그 수준에 맞게 대하는 게 공평과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라는 전제는 같지만, 그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그 사람이 처한 형편과 상황에 따라 달라야 합니다.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더 약한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을, 더 모르는 사람에게 더 많이 가르쳐 주고, 더 없는 사람에게 조금 더 주는 것, 그것이 공평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대우하셨습니다. 데이비드 보쉬 ‘길의 영성’에 보면,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엄격하셨지만, 용서의 은혜에 대해서는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인공호흡기만 대어선 안 됩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약자가 아니라 삼류인생으로 전락하기 때문이고 회생 불능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과로써 지원자나 수혜자 모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인권은 존중하되 마중물이 되는 도움을 제공해야 합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아야지 사회가 그리고 공동체가 순기능을 발휘합니다. 지식과 기능의 가르침을 넘어서 인격과 성품이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3. 우리의 봉사는 은혜 갚는 것임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19절)
본문 말씀은 우리가 나그네를 사랑해야 할 이유를 말하기를, 당신들도 한때는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이랍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그네가 아니라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했는데! 맞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한 것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 때부터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거의 출애굽 얼마 전의 일입니다. 처음에 이들은 기근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의 왕이 요셉의 공로로 자비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푼 것입니다. 말로 할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셈입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생면부지의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살리려 수많은 젊은이가 이 땅에서 자신들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쳤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구호물자와 의료단을 보내서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처지에 내몰린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살려냈습니다. 거기 사람 중에는 우리가 무시하고 하대하고 무례히 행하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린 너무나도 큰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홀대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정말 무례한 것입니다. 태국, 베트남, 필리핀, 아이티, 인도네시아, 미얀마, 인도, 등등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심정으로 여기 계신 선생님들이 섬김과 봉사, 사랑을 실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행여 잘못된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상처를 주거나 입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와 기쁨, 자발적 헌신을 통한 성장의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마고 데이’ 즉,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인류애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역의 결과가 복음 전파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 희년선교회 협력기관인 SG Korea(교차문화청년지원센터) 의 2학기 수업 개강 예배에서 행한 설교문을 허락을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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