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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뜨거운 눈물 [2003년 11-12월]

[2003년 11-12월]하나님의 뜨거운 눈물주선미 선교사2003년 한 해를 돌아보니 네팔 공동체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1월 1일 대야미에 있는 에덴 기도원에 알비등 6명이 가서 일년 계획을 세우고 기도한 것중에는 결혼하기, 살빼기와 같이 개인적인 것도 있었고 네팔공동체가 성장하기 위한 성경 연1독 운동, 공휴일마다 기도원 가기, 토요 성경공부 등 구체적인 것을 포함한 계획을 세우고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1월에 있는 설날 수련회는 네팔 목사님을 네팔에서 초청하여 4개 교회 연합으로 온누리교회에서 가졌고 그때 레썸(스리 바하둘)형제가 세례를 받고 수지 소재의 2년 과정 안디옥 신학을 시작하였습니다. 비놋 형제는 손을 좀 다쳐 외로운 입원 생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2월에는 지금와서 별 소용도 없는 체류..

마중 나가는 사람이 됩시다. [2003년 9-10월]

[2003년 9-10월]마중 나가는 사람이 됩시다.주선미 선교사네팔 공동체는 지난 추석에 온누리 교회에서 네팔 공동체 연합으로 120명 가량 모인 가운데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주 강사는 네팔에서 오신 몽골만 목사님이셨고 보즈라즈, 마노즈, 수리야 반다리 목사님이 또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원래 추석명절에는 다른 곳에서도 행사가 많아서 희년 네팔 공동체 형제들이 잘 모일까 우려가 됐었는데 모임에 참석한 형제들은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말씀 중 술, 담배, 도박 등의 생활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한 것도 좋았고 사랑이야말로 주께 꼭 돌아오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것도 큰 감동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또 연합 네팔 공동체의 활동을 아주 자립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

자월도야 안녕! [2003년 7-8월]

[2003년 7-8월]자월도야 안녕! 써시 커니야 / 번역 주선미2003년 8월 1일에서 3일까지 네팔공동체에서 예년처럼 여름 수련회를 섬으로 다녀왔습니다. 공동체 회장인 얼준 둥겔 형의 탁월한 지도하에 여름 휴가 기간이 맞는 사람들이 일하느라 더위에 지쳤던 몸을 시원하게 하고 쉼을 가지며 관광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섬 자월도에 가서 재미있게 보냈습니다.8월 1일 오전 12시쯤 가산동 희년 쉼터를 출발하여 대부도 방아선착장에 가기까지 시화 방조제로 하여 전세버스로 열심히 달렸지만 지독한 교통체증으로 3시에서 연기된 4시 배인데도 놓치고 말았습니다.네팔 공동체 인도자인 주선미 누나가 전화로 이리저리 급하게 연락하여 승봉도 가는배를 타고 가서 거기서 미리 대기 중인 어선으로 21명..

스리 바하둘 간증문 [2003년 5-6월]

[2003년 5-6월]간증문 스리 바하둘저는 네팔의 니르멀 포커리 가비서 1번지의 한 힌두교 가정에서 1963년 9월 25일에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부재로 사랑을 별로 받지못하고 자라다가 큰형이 영국에 가 있는 바람에 집안의 책임을 제가 다 맡아야 하는 어려움 가운데 성장했습니다. 네팔에 있을 때 교회는 딱 한번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 잡혀간다는 소리를 듣고 그 후로 계속 안 갔습니다.저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안산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근처에서 일하던 네팔형제 데벤드라가 교회를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가면 네팔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있고 일이 없으면 일도 찾아주고 몸이 아프면 치료도 해준다고 하여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와 함께 군포교회에 갔습니다...

부활절의 소망 [2003년 3-4월]

[2003년 3-4월]부활절의 소망주선미 선교사네팔 공동체는 재한 네팔 기독인 연합예배를 지난 2003년 3월2일에 군포교회에서 드렸습니다. 설교자는 보즈 라즈 바따 목사님이셨는데 겨울 방학 동안 네팔에 가 계신 네팔 목사님들이 연락도 잘 안되고 하던 터에 마침 이 보즈 라즈 목사님이 한국에 갑자기 신학 공부하러 오시게 되어 설교를 하실 수 있게 됐습니다. 잠깐 설명을 들어보니 원래 미국에 공부하러 가려 했는데 미국행 비자가 안 나오다가 갑작스럽게 한국과 연결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목사님이 전에 한국에 계실 때도 좋은 말씀과 영적인 권위로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었던 것을 생각하며 참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 이 목사님은 대전에 있는 복음 신학대학원 대학교에서 Th.M. 과정..

공식처럼 따라오는 삶의 어려움 [2003년 1-2월]

[2003년 1-2월]  주선미 선교사크리스마스와 머헨드라2002년이 홀연히 가고 2003년이 되었다. 그도 벌써 2개월째 되고 있다. 2002년 말 크리스마스가되기 두 주 전에 첫 번째 크리스마스라는 말씀을 하신 영락교회 신기도 목사님 이하 국악부와 여전도회에서 오셔서 창으로 또는 국악 연주로 찬양을 하였는데 매우 특색이 있었고 은혜로웠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고 특히 타악기를 좋아하니 장고를 칠때 저절로 흥이 났다.  그리고 네팔 형제들이 ‘크리스마스란……’ 이라는 제목으로 간단한 스킷을 보여 주었다. 고민하며 삶의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한 사람(싸테 바스넷 분)에게 친구(크리스나 빠우델 분)가 다가와 왜 그러냐 나하고 같이 즐겁게 놀자고 해도 소용없고 예쁜 여자(미투 타망 분)가 와서 유혹해도 관심이..

출국 준비를 하며 [2005년 4월]

오래간만에 소식을 전합니다.우리 가족은 현재 송우리에서 출국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송우리문화센터의 후임자가 확정되고 출국 날짜가 잡히면 소식을 전하려고 미루다 오늘에사 소식을 전합니다. 아직도 명확히 결정 된 것이 없지만 더 미룰 수 없어 소식을 전합니다. 송우리문화센터 상황저의 사역을 이어서 송우리문화센터에서 사역자을 하게 될 후임자는 일단 두 명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방글라데시어를 잘하는 한국인 사역자가 있다면 한 분만 세워도 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분이 안 계시고, 또 송우리센터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방글라데시 언어와 상관이 없는 한국인 전임 사역자를 세우는 것이 좋다고 여겨 송우리센터 운영 및 관리 책임자로 전임 사역자와 방글라데시 공동체 사역자를 각각 세우기로 했습니다. 운영 및 관리를 위한..

방글라데시 한국민간문화원 개소

지난 주 토요일 입국했습니다.출국한지 3개월 만에 귀국했습니다. 지난 3개월 방국에서의 생활 매우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문화원 개원을 잘 할 수 있었던 것과 인가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있는 방글라데시 대사관에 근무했었던 외무부 직원들과의 만남, 특히 대사관 참사였던 이슬람 씨가 국장으로 승진해 있었는데 우리 문화원 관련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어서 일들을 쉽게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귀국하면서 3개월간의 사역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드렸습니다.1. 좋은 장소를 허락하신 것과2. 은혜가운데 많은 분들을 모시고 개원식을 했던 것3. 인가 신청 등 관공서 관련 일들을 도와주고 있는 외무부 직원들(한국에서 근무했던 4명)과의 만남, 특히 디렉터가 된 이슬람 씨와의 만남4. 귀..

M형제의 근황 [2005년]

방국 소식M형제의 근황 금요일 오후에 MBB(Muslim Background Believer)들의 예배모임인 자맏(가정교회형태)에 가서 같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M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 동안 문화원 개원 준비로 너무 바빠서 M형제와 만나 차분히 이야기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귀국 이후 가족들과 친척, 이웃들의 반응은 어떤지, 또 어떻게 대처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예배 2시간 전에 만나서 쌓인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놀랍고 감사한 것은 M형제가 자신의 믿음을 숨기려 하지 않고 가족들과 친척,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간증하며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몇 일전에는 M형제의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친척들이 모두 병문안을 왔는데 그 자리에서 자기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를 공개적으로 간증..

몬뚜가 돌아왔습니다 [2006년 ]

몬뚜가 돌아왔습니다(송우리를 떠나 오기전의 일)이석봉선교사몬뚜는 송우리센터에서 두 번째로 회심한 형제였습니다. 그 당시 센터 주일 예배에 몇 번 참석하기는 했지만 그는 무슬림이었습니다. 6년 전 어느 날 저녁에 그가 내게 찾아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그는 내가 날마다 그 토록 기도하면서 보내달라고 했던 그런 부류의 방글라 청년이었습니다. 분명 진리를 찾아 헤매는 길 잃은 양이었습니다.복음을 전했고 순수하게 영접 기도를 같이 했습니다(이때의 기쁨은 전도를 해본 사람은 다 알지요). 특별히 한 무슬림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은 선교사로서 내가 누리는 특별한 축복이라 여깁니다. 예수님을 주와 구세주로 고백하는 영접기도를 마친 후 몹시 두려워했던 그의 모습을 6년이 지난 지금도 전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