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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모략 [2009년 11월]

하나님의 모략주선미 선교사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번에 네팔의 “띠할” 이라는 명절이 있었는데 안 믿는 모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음식도 먹고 네팔의 형제들이 자매들에게 찾아가 자매들의 축복 띠까를 이마에 받고 준비해 간 선물을 주는 명절을 지키는 날입니다. 집집마다 불을 밝혀서 부의 여신인 러츠미를 맞이하고 또 노래와 춤을 추면서 집집마다 돌고 선물도 받아가는 모양새가 크리스마스 불 밝히고 새벽송을 도는 것과 흡사하죠. 아마 작년 이맘 때 였나 그 때 이런 날에 주일날 한명만 교회에 온 적이 있었었죠. 모두 그 형제자매 모임에 가서 이마에 힌두식 티까 받고 선물 주고 음식 먹느라 교회는 오지 않은 거죠. 네팔의 교인들은 띠할 명절 때 형제들이 띠까는 안 받고 자매들에게 선물만 준다고 합니다. 그렇기..

저는 참 이것이 궁금해요 [2009년 8월]

저는 참 이것이 궁금해요주선미 선교사  저는 참 이것이 궁금해요. 15년 사역의 원동력 말이죠. 15년 동안 잘한 것이 없고 현재도 그렇건만 진짜 끈질기게 붙어 있다는 자평 가운데 하루하루를 연명할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건가 하는 것이 말예요. 정말 궁금해요.D형제는 전에 가리봉 쉼터에 있을 때부터 왔던 약간 터프한 친구였고 말씀 들을 때 비상한 눈빛으로 흡수하고 질문하면 정확히 답변했던 친구입니다. 그러나 그 터프함이 그를 평온하게 두지 못했는지 한참 동안 사라진 후 최근 1년 전 부터 다시 나타났다가 또 안 나오곤 했지요. 물론 어디선가 열심히 일은 했지만요. 그 친구가 최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 문제가 해결된 뒤 이제는 회사근무만 아니면 꼭 주일날 오겠다고 스스로 말을 하였습니다. 그가 잠시 자유..

주디디의 여행소고 [2009년 4월]

주디디의 여행소고주선미 선교사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왔습니다. 편지를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즈음 편지를 쓰고 싶어지도록 이요. 참 그러게요. 제가 오랫동안 편지를 못 보냈네요. 먼 여행을 다녀온 셈이죠. 그럼 제가 그동안 다닌 여행을 소개할까요.길 따라 자연을 느끼는 여행사실 이리저리 공장이며 병원이며 출입국 관리사무실이며 노동부며 법률구조센터며 법원이며 검찰이며 교도소에 다니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지만 봄 냄새를 맡으며 길을 다니는 일은 즐거운 여행길과도 같습니다. 여행 한번 실컷 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경기도 지역, 혹은 가끔은 더 먼데 지역까지 구석구석 가 볼 수 있으니 소원을 이루고 있는 거죠. 특히 요즘 같은 아름다운 계절에는 더욱.그 발걸음을 따라 마음을 상상하는 여행또 이렇게..

주안에서 문안드립니다 [2009년 2월]

주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주선미 선교사 주안에서 문안드립니다.이 땅에 있는 네팔 형제자매들을 섬긴지 14년이 되었습니다.이 14년을 돌아보니 수많은 네팔 사람들을 만나고 보내고 하면서 14년 전 처럼 오늘도 여전히 이들과 동행하며 병원을 같이 가주고 모든 일상사에 통역을 해주고 출입국관리 사무소에 가방 들어다 주고 노동사무소에 체불 임금 진정해주고 등등의 일을 변함없이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의사에게는 맹장수술이 아주 간단한 수술이지만 그 환자는 걱정되어 신경을 잘 써주시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수없이 반복해온 각종 자질구레한 돌봄과 동행이라 할지라도 이 새로운 네팔 형제는 걱정되고 잘 돌봐주시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돌봄만 반복되고 양육과 성장은 없어 보이는 사역이라 할지라도 주께서 다른 ..

AGAIN 1907 [2008년 2월]

AGAIN 1907 주선미 선교사 2007년이 지나 갔습니다. 2007년은 1907년의 대부흥 운동 후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이들이 몇 년 전부터 기도로 준비하고 기대해온 'Again 1907'의 해가 지나갔습니다. 100년 전 한 선교사님의 회개로부터 시작됐다던 그 놀라운 부흥이 이 시대의 한국 교회, 아니 구체적으로 나와 내가 속해 있는 이 네팔 공동체와 나의 가족에게 일어나기를 소망 했었습니다. 회개는 자신과 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어릴 때 교회에서 경험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기 직전의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요? 그것은 겉으로 어떤 형태이든 내적으로는 비참하고 일그러졌으며 자유가 없고 존귀함을 받지 못하는 상태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뜨겁고도 시원한 바람 [2007년 10월]

뜨겁고도 시원한 바람 주선미 선교사 여름이 아주 덥고 길게 느껴졌던 7, 8월이었습니다. 이 더위를 우리의 심장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여 줬던 선풍기의 인내심으로, 아니 희생정신으로 견디어 낸 것 같습니다. 1년에 한 개씩은 죽어나가고 또 새것으로 네팔 형제로부터 혹은 영락교회 4남선교회로부터 받아 채워진 선풍기는 여름날 쉼터를 후덥지근한 바람으로 채우는, 없어서도 안 되지만 어쩐지 측은하기도 하고 매력적이 못 되는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선풍기를 만족스러워 하지 않지만 대안이 없으므로 매일 돌리고 돌리며 지내고 있습니다.12년 희년 네팔 공동체 사역에서 이처럼 쉼 없이 움직인 선풍기표 선교사가 준 바람은 어떤 바람이었을까요? 바닷바람처럼, 혹은 산들 바람처럼, 혹은 여름 추수의 ..

와우 와우 와우 [2007년 7월]

와우 와우 와우 주선미 선교사  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아론이 모세가 시내산에 하나님 만나러 올라가서 빨리 안 내려온다고 백성들과 함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숭배케 한 장면입니다. 바로 전에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과 언약을 해 놓고 말입니다. 또 모세와 함께 바로를 상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고 승리를 경험했으면서 말입니다. 백성은 백성이라 쳐도 아론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궁색하게도 금을 던졌더니 송아지가 나왔다고 변명을 합니다. 모세나 하나님 뿐 아니라 성경을 읽는 독자도 이들이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세는 분노로 인해 십계명 돌판을 던져 버리고 그 송아지를 불태워 갈은 것을 범죄자들에게 마시우고 또 그것도 모자라 그들을..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사) [2007년 6월]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사)주선미 선교사 2007년이 아직도 생소한 것 같은데 4개월이 지났고 봄이 무르익었습니다. “hi seoul festival"이 찬란한 서울의 봄에 충동질합니다. 개막식 때 쉼터의 형제들과 여의도 야외 공연장에 가서 63빌딩이 쏘아 주는 빛을 맞으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꽃놀이를 구경하였습니다. 오면서 우린 서로를 확인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인파 속에서 밤길을 걸었습니다. 봄 야외 예배가 4월 29일에 있었는데 하이 서울 페스티발과 같은 시기여서 몇 가지 프로그램도 참여하게 되어 재동 초등학교에서 조선시대 체험도 하고 비록 발을 담그지는 못했지만 한강물 위를 그냥 걸어보는 미라클 수중걷기도 지켜보고 정조행차행렬도 지켜보았습니다. 평소엔 20-30명 모였었는데 이 날은 55명이나 되..

귀한 대접 받고 가오 [2007년 2월]

귀한 대접 받고 가오주선미 선교사어떤 사람이 대전에서 서울로 오려고 열차를 타니 자기의 좌석에 한 어르신이 앉아 계셨다 합니다. 그래서 좌석 표를 보이며 자기 자리라고 하며 자리가 틀린 것인지 자리가 없으신지 여쭈니까 없다고 하시며 멋적게 일어나셨답니다. 그는 자기의 자리에 앉는 대신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하였습니다. 자리에 못 앉는 것은 조금 슬픈 일이지만 2시간 거리니까, 또 앉아 있을 때보다는 처음부터 양보하는 것이 쉬우므로 그냥 가기로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 어르신은 내리면서 이렇게 말씀하였답니다. “귀한 대접 받고 가오. 출입 간에 형통하기를 축원 하오”우리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 땅의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귀한 대접받고 갑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 출입 간에 형통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이런..

네팔인의 기도 [2006년 11월]

네팔인의 기도 주선미 선교사  9월 첫째 토요일 밤에는 장신대 뒤편 바위산으로 가서 산 기도를 하였습니다. 영락교회 4남 선교회에서 다음날 주일인데도 불구하고 차량 지원을 해 주셔서 함께 가 기도를 하였습니다. 밤의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부르짖는 기도와 찬양은 다음날 주일예배 시간만 아니라면 더 앉아서 오래오래 부르짖고 싶도록 느끼게 하였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가니 네팔 공동체가 산기도도 하고 대단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기도의 필요성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번 시도하다가 차량이 없어서 못 가곤 하였는데 영락교회로 옮기면 가자고 하던 터에 드디어 가게 된 것입니다.영락교회 50주년 기념관 7층에서 네팔 공동체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연중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