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12월]
송우리 문화센터의 변화
이석봉 선교사
7년 전 방글라데시 근로자 선교 전문화를 꿈꾸며 시작한 송우리문화센터 사역이 지난 한해 동안 발전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2년전 예배를 드릴 적당한 장소를 찾던 베트남인들이 우리센터에 둥지를 틀더니 2003년 들어 안정호 목사님 가정(이인자, 안드레, 하영, 기평)이 전임 사역을 시작하면서 사역이 매우 역동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1일 주일에는 이곳에서 신앙을 갖게 된 4명의 베트남 성도들이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공동체에서 함께 동역하고 있는 떰 형제는 한나호에서 5년간 훈련을 받고 국내 베트남인 노동자 선교를 위해 한국에 입국하여 전임 사역을 하였으나 후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금은 취업을 하여 직접 돈을 벌면서 자비량으로 자국 사람들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했던가요, 지난 10월에 시작한 러시아공동체가 요즘 우리센터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10여년 교회 개척 사역을 하고 귀국하신 은성식 목사님 가정(김경희, 믿음, 사랑)이 지난 9월 송우리센터를 방문 오셨다가 얼마동안 사택에 머무르게 되셨습니다. 그러던 중 러시아 사람들과 교제가 이루어지면서 이곳 사역으로의 하나님의 인도를 깨닫고 10월에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특히 김경희 사모님께서 러시아 사람들의 고충 해결을 위해 출입국 관리소, 고용안정센터, 노동부 근로감독관 등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한국 행정에 약한 러시아인들을 돕기 시작한 것이 사역에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항상 미소 가득한 부드러움이 주무기인 사모님은 임금을 체불하고 있는 사업장도 끈질기게 찾아가셔서 해결해 드리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날마다 벼룩시장, 가로수 등 거리의 신문이 손에 떨어지지 않고, 그 결과로 도움을 받은 러시아 인들이 입소문을 퍼뜨려 러시아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그 분은 이제 우리센터의 상담실장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으며 러시아인들을 비롯해 문제를 안고 센터를 찾는 외국인들에게는 해결사로 통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아리랑 카페가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외국인들이 바깥 출입을 하지않고 있어 아직은 활성화 되지않고 있지만 센터의 분위기를 많이 여유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문제를 안고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분위기 있는 차 한잔과 따뜻한 상담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역자들에게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외국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센터가 상당히 업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이전보다 많은 대화들이 오가는 변화가 있습니다. 사역에 있어서 공간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카페(www.bangla.co.kr/center -아리랑카페 사진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매우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송우리문화센터 사역에 지난 1년간 기도와 재정적 후원을 해주신 모든분께 중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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