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년공동체/양주진리교회 (채하경)

이주 노동자 선교의 열매들 (채하경)

희년선교회 2024. 9. 5. 17:50

이주 노동자 선교의 열매들

-   은혜 입은 베트남 사람들  -

 

2024. 9. 5

양주진리교회 채하경 선교사

고(故) 신치용 목사와 채하경 사모, 재욱, 재호 (1992년)

 

 

  1992년 베트남에 가족과 함께 가서 사역을 감당하다가 채 3년이 안된 상태에서 갑자기 귀국한지 얼마 안 되어, 생각지도 않게 희년선교회를 통해 베트남 이주민 노동자 사역에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언 30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한국 땅에서 베트남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쁘고, 베트남 사람들도 자기 나라 말을 하는 한국인을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현재는 2013년부터 베트남 다문화 가정 선교에 힘쓰며 베트남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그분들의 자녀를 위주로 한 주일학교(한국인 가정 자녀들도 있음) 사역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다문화 가정 부인들 수십 가정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지만 교회에 나오는 숫자는 사실 예전에 이주민 노동자 사역을 할 때 보다 열매는 적고 힘은 더 들었습니다. 베트남 다문화 가정 부인들은 한국에 계속 살기 때문에 현지 고향으로 돌아간 베트남 이주 노동자 사역 열매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전도를 시작하다

 

베트남에서 귀국 후 3개월이 지난 19955월부터 2004년까지 9년간 이주민 사역 초기에 1주일에 적어도 한번, 주로 2-3일간 공장 기숙사를 방문하여 베트남 선교를 하러 다녔습니다. 느낀 점은 이주민들이 거주할 쉼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오랫동안 기도하던 중 20049, 거주하던 집 가까운 곳에 비어있는 작은 기도원에 입주하지 않겠냐는 정보가 있어서 찾아갔습니다. 이주민을 위한 기숙사로 사용 가능한 방 5개와 아울러 벽돌로 된 30평 주택 그리고 30평 정도의 예배실, 전체 500평 정도로 넓은 마당이 있는 곳이 있어서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확신을 주셔서 임대아파트를 나와서 이사 가게 되었습니다. (덕도리)

 

그동안 10년 가까운 세월 베트남 이주민 사역을 해왔던 터라 베트남 사역자들 간에 채 선교사가 개척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베트남 사역자 몇 분이 다녀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사역자들이 설 명절 연휴에 이 교회에서 수련회를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20052월 첫 번째 베트남 연합수련회를 양주시 덕도리에서 베트남 목사님들이 강사가 되어서 23일 간의 설명절 수련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수련회에 연이어 베트남 목사님들은,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함께 숙식하면서 제자훈련 받기 원하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을 모집하여 16주 과정의 제자훈련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 미국과 캐나다에서 3-4 분의 베트남 목사님들이 강사로 오셔서 훈련을 해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제자훈련을 받은 휘엔 형제(서울 서문교회 사역. 현재 미국)는 한국에서 신학과정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고 도안 자매, 즈엉 형제, 꿘 형제는 베트남에 귀국하여 신학교를 다니면서 목사가 되어 교회를 개척해서 현재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1997년경 주안 장로교회에서 베트남 사역자로 이주민 선교를 시작할 때 인천 남동 공단에 1주일에 2번 전도를 나가면서 만난 이주 노동자들 중에 프엉 형제가 있었습니다. 마침 N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려는 중이어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주시면서 남동공단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고 많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그후 베트남 사이공에 선교사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프엉 형제는 베트남에 귀국해서 베트남 교단에 속한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고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프엉 어머니는 너무나 열심히 전도하시면서 교회사역을 돕고 계십니다. 남동공단에서 만난 롱 형제는 처음 예수님을 믿을 당시에 기숙사를 방문하면 벽에 온통 하나님 말씀으로 도배를 할 정도로 말씀을 적어놓았는데, 베트남에 귀국해서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습니다. 현재 타이빙의 고향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 찡-따오 부부

찡-따오 부부, 앞줄 왼쪽 두세번째

 

 

20049월 개척할 당시 찡, 따오 부부 성도가 함께하면서 (그때 본인의 남편 고신치용 목사가 병환 중이어서) 1주일에 한 번씩 찡-따오 부부와 함께 베트남 기숙사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리고 성탄절을 앞두고 10월부터 3개월간 100명 정도의 베트남 이주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성탄절에 30명 정도의 베트남 사람들과 그 외 다른 여러 나라 이주민 30명 정도 해서 60명 정도가 성탄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후 찡-따오 부부는 2010년 귀국하여 찡 짜매는 한국어를 잘해서 한국 신발 공장에 취직하여 통역사로 일하였고 따오 형제는 일을 하면서 교단에 속한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복음 전도에 열심을 품고 있습니다.

한국 체류 중 딸 둘을 낳았고 귀국해서 한참 후에 막내 아들을 낳았는데 자가호흡을 할 수 없는 희귀병으로 인해 1년 남짓의 기간 동안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로 연명하는 아들을 간호하다가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5군데의 가정 교회를 개척하여 열심히 복음 사역에 힘쓰고 있습니다.

 

 

수년 전에 베트남에 갔을 때 찡 자매가 베트남 사람들이 사는 원룸에 저를 데리고 가더니 방마다 방문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찡 자매가 다니는 공장 부근 기숙사에 직원 여러명을 초대해서 저를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복음을 전하라고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저는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선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면 안되니 주의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마음을 움츠리고 있었는데 오히려 찡-따오 부부는 한국에서 훈련받은 대로 겁 없이 오히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감사하고 훈련이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응아 자매

앞줄 제일 왼쪽이 응아 자매... 예배시 특송 베트남으로의 귀향을 앞두고

 

응아 자매는 2007년 한국에 오자마자 저희 교회에서 생활하며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령 받은 후 교회에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9년간 살다가 2016년 귀국했습니다. 고향 남부지방 빙롱에 돌아가서 그곳에서 오아잉 전도사가 개척한 (성도 수 출석 50명 이상) 축복의 원천교회를 만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봉사, 전도 생활 등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오아잉 전도사는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그곳 땅에 한국의 한 교회의 후원으로 작년에 예배당을 아름답게 건축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베트남 고향 교회에서 특송하는 응아 자매 예배당 건축 (2023.10)

 

 

찌엔 형제

 

 

찌엔은 이주 근로자로 왔다가 2011년 귀국해서 생명의 말씀 교회에 다니면서 2년제 말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주 중에는 일을 하면서 주말에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목사 안수도 받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훼 자매

 

새문안 교회 1998년경 새문안교회 사역 중에 만난 훼 자매는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서 2005년 귀국하여 쭝 형제를 만나 결혼하였습니다. 쭝 형제는 이전에 마약 중독자였는데 목사가 되어 2007년에는 부인 훼 자매와 함께 하노이에 원푹교회를 세웠고 사이공에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외 마약 중독자 치유 센터 사역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응우엔 득 주이 형제 이야기

 

대장암 2기 진단을 받고 우리 교회에 오게 된 웅우엔 득 주이 형제를 20084월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김천에서 1차 수술을 마치고 암투약을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그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금촌 지역에 있는 친구를 통해서 제 전화번호를 알고, 처음에는 통역을 도와달라고 연락이 와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로 보내신지 1년 반 동안 처음에 6개월간 희년선교회를 통해 삼성의료원에서 암투약(무료진료)을 하면서 고난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성령을 받은 후 만나는 베트남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새벽마다 함께 많은 시간을 기도했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눈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그를 절망의 수렁에서 건지셨습니다. 주이 형제는 치료를 받으면서 베트남에 계신 부모님들께 전화로 주님을 만난 간증을 여러 번 하고 수시로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후 현지에 목사님이 방문하셔서 복음을 전하도록 마련을 했고 2시간이 넘는 타이빙지역 교회의 부흥집회에 부모님께서 참석하시게 되었습니다. 결국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주이 형제는 말씀을 사모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베트남 목사님의 설교를 자주 들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베트남 현지에 있는 2대째 기독교 가정의 자매를 알게 되었고, 6개월 간의 교제 끝에 두 달의 휴가를 얻어 베트남에 귀국하여 목사님 주례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두 달의 짧은 신혼 생활을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갔는데 비자 만료일을 하루 넘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착오로 한국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주이 형제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후회와 낙심에 빠져 있던 중 멘토인 떰 목사님을 만나 대화하며 기도하던 중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베트남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라는 뜻으로 알고 한국에 재입국하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하였습니다. 이후 떰 목사님의 권면을 따라 생명의 말씀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며 교회 개척을 시작하였습니다.

 

 

 

20095, 교회가 없는 떤 흐엉지역에 부모님 집 2층에 예배 처소를 준비하고 가족들을 중심으로 가정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동생 8살 때 뇌성마비에 걸려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좁은 계단으로 동생을 안고 2층으로 옮기고 휠체어도 가지고 올라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온 가족은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주이 형제를 통해 교회를 세우게 하신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금식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였는데 첫 5개월 동안 수백 명에게 복음을 전하여 20명 정도가 주일 예배에 출석하였고 매주 다른 지역에 있는 전도사님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해주시고 한 달에 한번은 쥐 형제가 설교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늘어나자 예배 처소가 좁아져 주이 목사 아버지는 집 뒤에 100평 정도의 땅도 하나님께 헌납하였고 그곳에 예배당을 세우기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5년이 지난 즈음 한국 교회의 한 성도님이 건축비 전액 7천만원을 헌금하셔서 2층짜리 교회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예배당이 드디어 세워졌습니다.

 

주이 목사는 생명의 말씀 교단에서 2년제 신학교 과정을 하고나서, 베트남 현지 푹엄쫀벤 교단’(번역: 완전복음 교단)에서 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2019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주이 목사 아버님도 2년제 말씀학교를 나오시고 그 후에 교단 신학교를 나오셨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시며 복음전파 사역에 열심을 내셨습니다. 건축기술이 있으신 아버님이 작년에 카선 교회를 지으신 후에 애석하게도 췌장암이 발견되어 소천하셨습니다. 어머니도 2년제 신학교를 나오셔서 장애인들을 돌보시고 복음을 열심히 전하시고 말씀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마약 중독자 센터

 

 

베트남에는 26만 명으로 추산되는 많은 사람들이 마약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고 있지만 별 대책을 못 세우고 있어 정부의 고민이 깊습니다. 일찍 마약 중독자 치유사역을 하시는 목회자와 협력하여 교회 내 쉼터를 사용하여 마약치유센터를 시작하였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아침 저녁으로 예배드리고 낮에는 기술을 가르쳐 퇴소 후의 취업도 대비하고자 합니다.

 

껌단, 카선, 선동 지역에 교회 개척

 

 

2009년에 시작된 떤흐엉 진리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동안 주이 목사는 교회가 없는 인근 지역을 다니며 전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2011년 박장성 르엉퐁 지역에 가정교회가 세워졌고, 2012년엔 타이응웬성 카선 지역에 가정교회가, 박장성 껌단 지역에도 가정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최근 2023년에는 다낭에서 가까운 꽝남성에 가정교회를 세웠습니다. 카선 지역에는 예수를 믿은지 12년 만에 한 분 성도님이 땅을 기증하여서 작년에 건축 헌금 2천만원을 한국의 한 교회에서 보내주셔서 교회 건물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주이 목사는 지금도 곳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떤흐엉 진리교회 응우엔 득 주이 목사와 가족들

 

▰  글을 마치며

 

양주지역으로 이사 와서 베트남 교회를 개척하여 지내는 동안 참 많은 외국인 이주민들이 왔다 갔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영혼들이 지속적으로 교회에 나와서 정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주님 주신 은혜와 사랑과 열정으로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사역을 감당해 왔지만 주님의 제자로 세워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가 필요하였습니다. 물론 열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결국 제자로 세워지지만, 왔다가 가버리고 정착하지 못하고 가버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조리며 안타까와 했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을 추스리며 사도 바울의 말씀을 암송하며 되뇌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3:6,7).

 

 

돌아보면 하나님은 제 소망과는 달리 이들을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하시고 몇몇은 그 곳에서 주님의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트남 사람들을 노동자로 한국에 오게 하시고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주 안에서 훈련받게 하신 후 고향으로 다시 되돌려 보내셨습니다. 이들에게는 앞으로도 극복해야 할 여러 시련과 훈련의 과정들이 있을 줄 압니다만 모든 어려움들을 믿음으로 잘 이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 전도자로 더욱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채하경 선교사

베트남인 대상 선교 사역 약력 

  • 베트남 현지 선교  (1992. 7)
  • 희년선교회 통해  베트남 이주노동자 사역 시작 (1995. 5)
  • 독산동 베트남 교회 개척 (1995.5 ~ 1998.10)
  • 주안장로교회내 베트남 예배부 개척 (1996.10 ~ 1999.9)
  • 새문안교회내 베트남 선교 사역 (1998.10 ~ 2004.9)
  • 포천 지역에  송우리 베트남 교회 개척 (1998.10 ~ )
  • 양주 지역에  양주진리교회 개척 (2004. 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