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년공동체/희년국제선교교회(故 장승필 2003~2010)

장승필 목사님 죽음을 어떻게 해석 할 것인가 ?

희년선교회 2025. 3. 15. 14:24

2010. 2. 26

장승필 목사님 죽음을 어떻게 해석 할 것인가 ?



먼저 고인 되신, 고 장승필 목사님과 그의 가족, 그리고 희년 선교회와, 필리핀 가족들 위에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이미 고인이 되신 장승필 목사님을 살아 생전에 뵈온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의 음성을 들어 본적도 없습니다. 제가 처음을 뵙게 된 것은 210. 2. 24. 07시에, 말없이 누어 계실 때 였습니다.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었고, 그 분의 얼굴도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어 갔던 때였습니다. 장승필 목사님은 이미 입관하여 볼 수 없고, 오직 사진 만이 관 위에 올려 져 환한 웃음 짓고 있는 그 모습 뿐이었습니다.

나는 장승필 목사님께서 소천하시던 그날 저녁 ! 이행구 목사님의 초대를 받아 식탁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전화를 받는 이행구 목사님의 모습은 심각하고 긴장된 모습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식탁의 자리에 안지 못하시고, 안절 부절하며, 왔다 갔다하며 오랜 시간 동안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오랜 시간후에 들려 주는 말씀이 장승필 목사님은 선배이신데, 단기 선교차 이곳에 오셔서 실종 되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건의 내용은 이러하셨습니다. 필리핀 현지인들의 교회 자립을 위하여 망고 밭을 만들어 가꾸어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밭을 청소하고 관리하며 쓰레기를 불에 태우는 과정에서 불이 갈대 밭에 옮겨 붙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불을 진압하시다가 연기에 그만 혼절 상태에 빠지게 되셨습니다. 같이 오셔서 사역하신 선교단원 한분이 이 사실을 목격하고 목사님을 안전지대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혼수 상태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셨고, 일어 서지도 못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단원은 목사님께 [ 목사님 ! 불 저 건너편에 있는 단원들이 위험하여 저들을 안전지대로 옮겨 놓고 오겠습니다. 그러니 목사님은 이 곳에 누어 계십시오. ] 그러자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나도 가야 해요. 나도 가서 저들을 구해 내야지 ! ]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움직일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 곳에 모셔놓고, 불을 진압하며, 사람들을 안전 지대로 옮기고 와보니, 목사님이 않보였습니다.

단원들은 목사님을 6시 경까지 찾게 되었고, 이제 어둠이 짙어 오는 터인지라, 바기오로 연락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행구 목사님을 비롯하여 5 명이 현지로 급히 내려갔으나, 도착은 약 밤 10시경이었습니다. 이미 밤은 깊어 어둠이 깔렸고, 더구나 망고 나무와 갈대가 어울려져 있는 들판에서 목사님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이행구 목사님의 마음에 이런 감동이 왔습니다. 만일 사모님께서 이곳에 계신다면, 사모님은 이 야밤이라 하여, 목사님 찾는 일을 중단 하실가 ? 어데선가 도움을 요청하고 계신 목사님을 생각하며 밤을 지 새우면서라도,... 혼자서라도, 목사님을 찾을 것이 아니겠는 가 ?

그래서 앞선 차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다시 한번 찾아 봅시다 하고 제의 할 때,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여 다시 찾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 시간이 흐른 자정이 지나,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님을 찾았으나, 목사님은 이미 소천 하신 후였습니다. 장승필 목사님은 몸 부림 친 흔적도 없이, 반듯이 엎드려 가슴과 얼굴을 땅에 대고 계셨습니다. 이는 필리핀 땅을 가슴으로 안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력이 쇠잔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시는 목사님이, 어떻게 500 m 가 넘는 그 먼길을 홀로 가실수가 있었을가 ? 그리고 그 기진 맥진한 모습으로, 즉 그 곳에 가셔서, 엎드러지셨을 때,.. 얼굴 하나도 가늠하지 못하여, 코를 땅에 대고 숨이 막혔을 때,... 그 고개 하나를 돌릴지 못 할 정도의 상태에서,.. 왜 ? 혼심을 다하여 그 곳에 가셨을 가 ? 하는 의문의 제기였습니다.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이곳 선교사님들과 함께 3시 30분에 바기오를 출발하여, 현지를 향해 가면서, 이행구 목사님으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승필 목사님의 사역에 대한 그 열정에 찬 이야기를 들으며 목사님이 안치 된 곳에 왔습니다. 이때는 2010. 2. 24. 07 시 경이었습니다.

현지에 도착하니, 한국에서 사모님과 노회장님 등 여러 목사님들께서 6시 경에 도착 하시게 된다는 말씀대로 먼저 와 계셨습니다. 이젠 이곳 상황에 의하여 목사님과 자리를 2시간도 같이 하지 못하고, 영결 예배를 마치고 화장터로 향해야 만 하였습니다. 참으로 너무 안타까운 모습이었고, 사모님은 거의 실신 상태였습니다.

저는 예배를 마치고, 바로 올라가야 할 선교사님이 계셔서 바기오로 가려 하였을 때, 노회장 목사님께서 사모님을 위하여 위로의 말씀과 기도를 부탁 하셔서, 계획을 포기하고 다구판 화장터로 함께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천한 사람이 무슨 말씀으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망막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장승필 목사님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지 ? 한 과제가 될 제목이라 여겨졌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마음의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전한 바가 있습니다. 이는 단지 목사님이시기에,... 사모님의 위로만을 위해서,... 또한 조문객이나, 성도와, 동료 목사님들을 위해서 위로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더구나 선교의 현장에서 죽음을 가지신 목사님의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 해석 할 것인가 ? 이는 희년 선교회에서 해석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하여 글을 올려 드리게 됩니다. 지금 목사님은 어제 한줌의 재로 변하여, [반절]은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사랑을 쏟았던 선교지의 땅, 필리핀 망고 밭에 묻고 가십니다.

지금 [반절]은 이 땅에 태어나 미국에 이민자로서, 미국 시민권을 가지셨으나, 선교 활동의 무대였던 한국 (조국)의 품을 찾아 가고 계시는 중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장승필 목사님의 죽음을 해석하는 마지막 순간이라 여겨 집니다.

나는 이 분을 순교자라고 정리를 해 봅니다. 그 이유는....

첫째 참으로 장승철 목사님은 순교자 적인 삶을 살아 오셨습니다.

1) 그는 미국의 시민권자로서, 미국을 떠나 한국에 와서 소외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의 대변자가 되고, 그들의 의료 해택과, 불이익을 몸으로 막아가며 사셨습니다.

2) 그는 쇠외된 노동자들을 위해 교회당을 한국에 2곳이나 개척하고, 복음을 전하며, 섬겨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는 1 개처 교회가 불이 나서 소각 되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믿음과, 기도와, 사랑으로 그 교회를 다시 세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사역을 계속 해 오는 중이었습니다.

3) 그는 또한 본 국에 귀국한, 그들을 잊지 않고, 신앙 생활의 지속을 위하여, 필리핀 여러 지역에 흩어진 형제를 찾아 다니며, 신앙을 잃지 않도록 사역을 하셨습니다.

4) 또한 장기화 대책으로 그들이 교회를 자립화하여, 복음의 일꾼과 필리핀의 지도 양성하는 일을 위해, 망고 밭 12,000 평 정도를 구입하여, 이 일을 시행 해 오면서, 마지막에는 그 귀중한 생명을 헌신 하였습니다.

둘째 : 그의 마지막 죽음의 모습입니다.

장승필 목사님은, 위에서 열거 한바와 같이, 연기 가스로 혼절 된 상태에서, 왜 500 m 지점까지 가셨을 가 ? 에 대한 해답입니다. 목사님은 그 곳에 가실만한 기력의 여유가 전혀 없는 분이었읍니다. 그러기에 그 곳에 가서 가슴과 얼굴을 땅에 대었으면서도, 얼굴 돌릴 기력 조차 없어, 얼굴을 돌리지 못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또한 숨이 막히게 되면, 몸 부림을 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몸부림 칠 기력 조차 없는 상태 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 왜 ? 거기에 혼신을 다하여 가셨을가 ? 이는 마지막 남기신 한마디의 음성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단원 한분이 목사님을 안전 지대에 모셔놓고, [ 목사님 불 저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을 구조 해 놓고 오겠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몸도 가누지 못하시는 상태에서,.. 혼절된 상태에세,...
[ 나도 가야 해 !,  나도 가서 저들을 구해야 해 ! ] 그렇다면 분명 목사님 발걸음은, 저 단원들을 불 속에서 구해야 하겠다고 불속으로 뛰어 들은 발걸음 이었음을 의심 할 여지가 없습니다.

목사님은 혼절한 상태였기에 불 속으로 나아가지 못하였지만, 그러나 마음과 정신은 분명히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목숨을 이 일에 바쳤습니다. 여기에서 더욱 주목 할 점은,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곳에 가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그 기력으로,... 그 정신과 사명으로,... 그 뜨거운 열정과 사랑으로,.. 이렇게 행동을 옮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화장터에서 말씀을 증거하게 될 때, 고린도 후서 12 : 9절의 말씀을 전하면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족한 은혜를 발견하여야 하는 데 [ 바로 순교자 ] 의 탄생이요, 장승필 목사님은 순교자의 죽음이라 선포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장승필 목사님은, 어제 한줌의 재가 되셨습니다. [반줌]은 그가 그토록 그리스도의 가슴으로 사랑하였던 필리핀 땅 망고 밭에 묻고 가십니다. [반줌]의 재는 선교 사명지요, 산 순교지였던 한국의 땅으로 가고 있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장승필 목사님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 해야 할 른지요 ? 필리린 선교 현지와, 한국 교회사에 귀감으로 삼을 일은 아닌지요 ?

 


장승필 선교사님 께

장 승필 목사님 !
참으로 당신은
숭고하고
위대한 삶을 사셨습니다.
참으로 멋진
인생의 마침표였습니다.

님은
52세의 짤막한 삶인지는 모르나
100년, 아니 200년 살은 것 보다
훨씬 가치있는 삶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살아서는 산 순교자의 생애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는
몸도, 발 걸음도
가눌수 없는 상태에서
땅에 엎드려서도 고개하나
옆으로 할수 없는
기진 상태에서도
불속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마지막 발길을 옮기신 선교사님

사람의 생명을 그렇게
사랑할줄 알고
소중히 여기실 줄 아셨던 선교사님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신 선교사님
참으로 감동스럽습니다.

내 나이 68세의 일기
님에게 비추어 볼 때
부끄러움 뿐이군요
나의 남은 생애
나도 역시 그대처럼
힘차게 달려 갈수있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그런데
님의 장엄한 사명 행렬 뒤에는
나타나지 않은
사모님의 협력이 있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영전에서
사진으로 처음 뵙는 일이었으나
님의 영전 앞에
기진 맥진 한 모습으로
소리없이
통곡하고 애절하는
사모님의 모습을 보았답니다.

이를 보니 무척이나
사모님을 사랑하셨군요
이런 사모님을 두고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셔야 만 하셨기에
이 땅에 남겨 두시고
가셔야 만 하셨군요

슬프고
아파 할 수밖에 없지만
마지막 인사하고
떠나오려는 그 순간
사모님에게서 보았답니다.

사모님도
목사님 못지않은
사명감으로
대담하게 우뚝 서서
용기있게
사명 감당하시며
살아 가실 것을...

목사님
하늘나라에서
사모님께
응원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만남의
그 날을 함께
가슴에 품고
행복하게
주님의 품안에서
안식 하소서.

2010. 2. 26

필리핀 바기오에서

김석태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