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년공동체 258

마중 나가는 사람이 됩시다. [2003년 9-10월]

[2003년 9-10월]마중 나가는 사람이 됩시다.주선미 선교사네팔 공동체는 지난 추석에 온누리 교회에서 네팔 공동체 연합으로 120명 가량 모인 가운데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주 강사는 네팔에서 오신 몽골만 목사님이셨고 보즈라즈, 마노즈, 수리야 반다리 목사님이 또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원래 추석명절에는 다른 곳에서도 행사가 많아서 희년 네팔 공동체 형제들이 잘 모일까 우려가 됐었는데 모임에 참석한 형제들은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말씀 중 술, 담배, 도박 등의 생활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한 것도 좋았고 사랑이야말로 주께 꼭 돌아오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것도 큰 감동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또 연합 네팔 공동체의 활동을 아주 자립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

자월도야 안녕! [2003년 7-8월]

[2003년 7-8월]자월도야 안녕! 써시 커니야 / 번역 주선미2003년 8월 1일에서 3일까지 네팔공동체에서 예년처럼 여름 수련회를 섬으로 다녀왔습니다. 공동체 회장인 얼준 둥겔 형의 탁월한 지도하에 여름 휴가 기간이 맞는 사람들이 일하느라 더위에 지쳤던 몸을 시원하게 하고 쉼을 가지며 관광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섬 자월도에 가서 재미있게 보냈습니다.8월 1일 오전 12시쯤 가산동 희년 쉼터를 출발하여 대부도 방아선착장에 가기까지 시화 방조제로 하여 전세버스로 열심히 달렸지만 지독한 교통체증으로 3시에서 연기된 4시 배인데도 놓치고 말았습니다.네팔 공동체 인도자인 주선미 누나가 전화로 이리저리 급하게 연락하여 승봉도 가는배를 타고 가서 거기서 미리 대기 중인 어선으로 21명..

스리 바하둘 간증문 [2003년 5-6월]

[2003년 5-6월]간증문 스리 바하둘저는 네팔의 니르멀 포커리 가비서 1번지의 한 힌두교 가정에서 1963년 9월 25일에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부재로 사랑을 별로 받지못하고 자라다가 큰형이 영국에 가 있는 바람에 집안의 책임을 제가 다 맡아야 하는 어려움 가운데 성장했습니다. 네팔에 있을 때 교회는 딱 한번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 잡혀간다는 소리를 듣고 그 후로 계속 안 갔습니다.저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안산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근처에서 일하던 네팔형제 데벤드라가 교회를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가면 네팔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있고 일이 없으면 일도 찾아주고 몸이 아프면 치료도 해준다고 하여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와 함께 군포교회에 갔습니다...

부활절의 소망 [2003년 3-4월]

[2003년 3-4월]부활절의 소망주선미 선교사네팔 공동체는 재한 네팔 기독인 연합예배를 지난 2003년 3월2일에 군포교회에서 드렸습니다. 설교자는 보즈 라즈 바따 목사님이셨는데 겨울 방학 동안 네팔에 가 계신 네팔 목사님들이 연락도 잘 안되고 하던 터에 마침 이 보즈 라즈 목사님이 한국에 갑자기 신학 공부하러 오시게 되어 설교를 하실 수 있게 됐습니다. 잠깐 설명을 들어보니 원래 미국에 공부하러 가려 했는데 미국행 비자가 안 나오다가 갑작스럽게 한국과 연결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목사님이 전에 한국에 계실 때도 좋은 말씀과 영적인 권위로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었던 것을 생각하며 참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 이 목사님은 대전에 있는 복음 신학대학원 대학교에서 Th.M. 과정..

공식처럼 따라오는 삶의 어려움 [2003년 1-2월]

[2003년 1-2월]  주선미 선교사크리스마스와 머헨드라2002년이 홀연히 가고 2003년이 되었다. 그도 벌써 2개월째 되고 있다. 2002년 말 크리스마스가되기 두 주 전에 첫 번째 크리스마스라는 말씀을 하신 영락교회 신기도 목사님 이하 국악부와 여전도회에서 오셔서 창으로 또는 국악 연주로 찬양을 하였는데 매우 특색이 있었고 은혜로웠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고 특히 타악기를 좋아하니 장고를 칠때 저절로 흥이 났다.  그리고 네팔 형제들이 ‘크리스마스란……’ 이라는 제목으로 간단한 스킷을 보여 주었다. 고민하며 삶의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한 사람(싸테 바스넷 분)에게 친구(크리스나 빠우델 분)가 다가와 왜 그러냐 나하고 같이 즐겁게 놀자고 해도 소용없고 예쁜 여자(미투 타망 분)가 와서 유혹해도 관심이..

출국 준비를 하며 [2005년 4월]

오래간만에 소식을 전합니다.우리 가족은 현재 송우리에서 출국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송우리문화센터의 후임자가 확정되고 출국 날짜가 잡히면 소식을 전하려고 미루다 오늘에사 소식을 전합니다. 아직도 명확히 결정 된 것이 없지만 더 미룰 수 없어 소식을 전합니다. 송우리문화센터 상황저의 사역을 이어서 송우리문화센터에서 사역자을 하게 될 후임자는 일단 두 명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방글라데시어를 잘하는 한국인 사역자가 있다면 한 분만 세워도 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분이 안 계시고, 또 송우리센터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방글라데시 언어와 상관이 없는 한국인 전임 사역자를 세우는 것이 좋다고 여겨 송우리센터 운영 및 관리 책임자로 전임 사역자와 방글라데시 공동체 사역자를 각각 세우기로 했습니다. 운영 및 관리를 위한..

제 2의 도약을 꿈꾸는 송우리문화센터 [2004년 5-6월]

[2004년 5-6월] 제 2의 도약을 꿈꾸는 송우리문화센터이석봉 선교사 "송우리문화센터는 아직도 공사 할 것이 남았나요?"우리를 센터 가까운 곳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김 목사님의 말씀이시다. 1997년 센터가 세워진 이후 송우리센터는 늘 공사 중이다.3년 만에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혀 주셨다. 38평에서 80평으로 이사를 하게 된 지난 2000년 9월 우리는 얼마나 감사했던가! 그러나 감사도 잠깐, 베트남인들을 위한 예배가 신설되면서 센터는 더 넓은 공간들이 필요했다. 센터가 사용하고 있는 땅이 포천 시유지인지라 증축을 비롯해 일체의 건축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다. 컨테이너는 허가사항이 아니라는 잘못된 정보로 우리는 아쉬운 대로 넓은 마당에 하나 둘 필요할 때마다 컨테이너를 사다 공간을 활용하여 왔다. ..

송우리문화센터 소개

제 1기 사역 (1996년 6월)이석봉 선교사는 방글라데시에서 추방되었다. 이 후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희년선교회를 찾아와 본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사역에 대한 인턴쉽을 마치고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포천시 송우리에 1996년 6월 희년선교회 부속 송우리문화센터를 세워 사역을 시작하였다.  제 2기 사역 (2006년) 정승진 목사

나무를 심었습니다. [2004년 3-4월]

[2004년 3-4월] 나무를 심었습니다.이석봉선교사나무를 심었습니다. 시멘트 마당에 철판 컨테이너들, 초기에는 필요한 공간 확보에 급급하여 환경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 카페를 만들면서부터 센터가 너무 삭막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몇 일전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시멘트 바닥을 깨고 1m쯤 되는 은행나무 묘목 5그루를 사다가 마당가에 심었습니다. 고추, 방울토마토, 수세미, 오이, 호박 등도 텃밭에 심었는데 벌써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센터 부지 매입하기로그동안 우리가 힘써 기도해 왔던 센터 부지 매입 등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일산은혜교회에서 현재 시유지인 센터 부지를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송우리센터가 일단계로 이곳 송우리에서 외국인 노..

송우리 문화센터의 변화 [2003년 11-12월]

[2003년 11-12월]송우리 문화센터의 변화이석봉 선교사7년 전 방글라데시 근로자 선교 전문화를 꿈꾸며 시작한 송우리문화센터 사역이 지난 한해 동안 발전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2년전 예배를 드릴 적당한 장소를 찾던 베트남인들이 우리센터에 둥지를 틀더니 2003년 들어 안정호 목사님 가정(이인자, 안드레, 하영, 기평)이 전임 사역을 시작하면서 사역이 매우 역동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1일 주일에는 이곳에서 신앙을 갖게 된 4명의 베트남 성도들이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베트남 공동체에서 함께 동역하고 있는 떰 형제는 한나호에서 5년간 훈련을 받고 국내 베트남인 노동자 선교를 위해 한국에 입국하여 전임 사역을 하였으나 후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금은 취업을 하여 직접 돈을 벌면서 자비량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