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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처럼 따라오는 삶의 어려움 [2003년 1-2월]

[2003년 1-2월]  주선미 선교사크리스마스와 머헨드라2002년이 홀연히 가고 2003년이 되었다. 그도 벌써 2개월째 되고 있다. 2002년 말 크리스마스가되기 두 주 전에 첫 번째 크리스마스라는 말씀을 하신 영락교회 신기도 목사님 이하 국악부와 여전도회에서 오셔서 창으로 또는 국악 연주로 찬양을 하였는데 매우 특색이 있었고 은혜로웠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고 특히 타악기를 좋아하니 장고를 칠때 저절로 흥이 났다.  그리고 네팔 형제들이 ‘크리스마스란……’ 이라는 제목으로 간단한 스킷을 보여 주었다. 고민하며 삶의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한 사람(싸테 바스넷 분)에게 친구(크리스나 빠우델 분)가 다가와 왜 그러냐 나하고 같이 즐겁게 놀자고 해도 소용없고 예쁜 여자(미투 타망 분)가 와서 유혹해도 관심이..

출국 준비를 하며 [2005년 4월]

오래간만에 소식을 전합니다.우리 가족은 현재 송우리에서 출국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송우리문화센터의 후임자가 확정되고 출국 날짜가 잡히면 소식을 전하려고 미루다 오늘에사 소식을 전합니다. 아직도 명확히 결정 된 것이 없지만 더 미룰 수 없어 소식을 전합니다. 송우리문화센터 상황저의 사역을 이어서 송우리문화센터에서 사역자을 하게 될 후임자는 일단 두 명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방글라데시어를 잘하는 한국인 사역자가 있다면 한 분만 세워도 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분이 안 계시고, 또 송우리센터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방글라데시 언어와 상관이 없는 한국인 전임 사역자를 세우는 것이 좋다고 여겨 송우리센터 운영 및 관리 책임자로 전임 사역자와 방글라데시 공동체 사역자를 각각 세우기로 했습니다. 운영 및 관리를 위한..

방글라데시 한국민간문화원 개소

지난 주 토요일 입국했습니다.출국한지 3개월 만에 귀국했습니다. 지난 3개월 방국에서의 생활 매우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문화원 개원을 잘 할 수 있었던 것과 인가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있는 방글라데시 대사관에 근무했었던 외무부 직원들과의 만남, 특히 대사관 참사였던 이슬람 씨가 국장으로 승진해 있었는데 우리 문화원 관련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어서 일들을 쉽게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귀국하면서 3개월간의 사역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드렸습니다.1. 좋은 장소를 허락하신 것과2. 은혜가운데 많은 분들을 모시고 개원식을 했던 것3. 인가 신청 등 관공서 관련 일들을 도와주고 있는 외무부 직원들(한국에서 근무했던 4명)과의 만남, 특히 디렉터가 된 이슬람 씨와의 만남4. 귀..

M형제의 근황 [2005년]

방국 소식M형제의 근황 금요일 오후에 MBB(Muslim Background Believer)들의 예배모임인 자맏(가정교회형태)에 가서 같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M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 동안 문화원 개원 준비로 너무 바빠서 M형제와 만나 차분히 이야기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귀국 이후 가족들과 친척, 이웃들의 반응은 어떤지, 또 어떻게 대처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예배 2시간 전에 만나서 쌓인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놀랍고 감사한 것은 M형제가 자신의 믿음을 숨기려 하지 않고 가족들과 친척,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간증하며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몇 일전에는 M형제의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친척들이 모두 병문안을 왔는데 그 자리에서 자기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를 공개적으로 간증..

몬뚜가 돌아왔습니다 [2006년 ]

몬뚜가 돌아왔습니다(송우리를 떠나 오기전의 일)이석봉선교사몬뚜는 송우리센터에서 두 번째로 회심한 형제였습니다. 그 당시 센터 주일 예배에 몇 번 참석하기는 했지만 그는 무슬림이었습니다. 6년 전 어느 날 저녁에 그가 내게 찾아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그는 내가 날마다 그 토록 기도하면서 보내달라고 했던 그런 부류의 방글라 청년이었습니다. 분명 진리를 찾아 헤매는 길 잃은 양이었습니다.복음을 전했고 순수하게 영접 기도를 같이 했습니다(이때의 기쁨은 전도를 해본 사람은 다 알지요). 특별히 한 무슬림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은 선교사로서 내가 누리는 특별한 축복이라 여깁니다. 예수님을 주와 구세주로 고백하는 영접기도를 마친 후 몹시 두려워했던 그의 모습을 6년이 지난 지금도 전 생..

제 2의 도약을 꿈꾸는 송우리문화센터 [2004년 5-6월]

[2004년 5-6월] 제 2의 도약을 꿈꾸는 송우리문화센터이석봉 선교사 "송우리문화센터는 아직도 공사 할 것이 남았나요?"우리를 센터 가까운 곳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 김 목사님의 말씀이시다. 1997년 센터가 세워진 이후 송우리센터는 늘 공사 중이다.3년 만에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혀 주셨다. 38평에서 80평으로 이사를 하게 된 지난 2000년 9월 우리는 얼마나 감사했던가! 그러나 감사도 잠깐, 베트남인들을 위한 예배가 신설되면서 센터는 더 넓은 공간들이 필요했다. 센터가 사용하고 있는 땅이 포천 시유지인지라 증축을 비롯해 일체의 건축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다. 컨테이너는 허가사항이 아니라는 잘못된 정보로 우리는 아쉬운 대로 넓은 마당에 하나 둘 필요할 때마다 컨테이너를 사다 공간을 활용하여 왔다. ..

송우리문화센터 소개

제 1기 사역 (1996년 6월)이석봉 선교사는 방글라데시에서 추방되었다. 이 후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희년선교회를 찾아와 본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사역에 대한 인턴쉽을 마치고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포천시 송우리에 1996년 6월 희년선교회 부속 송우리문화센터를 세워 사역을 시작하였다.  제 2기 사역 (2006년) 정승진 목사

나무를 심었습니다. [2004년 3-4월]

[2004년 3-4월] 나무를 심었습니다.이석봉선교사나무를 심었습니다. 시멘트 마당에 철판 컨테이너들, 초기에는 필요한 공간 확보에 급급하여 환경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 카페를 만들면서부터 센터가 너무 삭막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몇 일전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시멘트 바닥을 깨고 1m쯤 되는 은행나무 묘목 5그루를 사다가 마당가에 심었습니다. 고추, 방울토마토, 수세미, 오이, 호박 등도 텃밭에 심었는데 벌써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센터 부지 매입하기로그동안 우리가 힘써 기도해 왔던 센터 부지 매입 등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일산은혜교회에서 현재 시유지인 센터 부지를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송우리센터가 일단계로 이곳 송우리에서 외국인 노..

송우리 문화센터의 변화 [2003년 11-12월]

[2003년 11-12월]송우리 문화센터의 변화이석봉 선교사7년 전 방글라데시 근로자 선교 전문화를 꿈꾸며 시작한 송우리문화센터 사역이 지난 한해 동안 발전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2년전 예배를 드릴 적당한 장소를 찾던 베트남인들이 우리센터에 둥지를 틀더니 2003년 들어 안정호 목사님 가정(이인자, 안드레, 하영, 기평)이 전임 사역을 시작하면서 사역이 매우 역동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1일 주일에는 이곳에서 신앙을 갖게 된 4명의 베트남 성도들이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베트남 공동체에서 함께 동역하고 있는 떰 형제는 한나호에서 5년간 훈련을 받고 국내 베트남인 노동자 선교를 위해 한국에 입국하여 전임 사역을 하였으나 후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금은 취업을 하여 직접 돈을 벌면서 자비량으로 ..

송우리 베트남 공동체 소식 [2003년 9-10월]

[2003년 9-10월] 송우리 베트남 공동체 소식  안정호 목사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이번에 세 번째인 VietNam 추석 영성수련회를 개최했다. 베트남 제자 선교회원들과 새문안교회가 연합하여 우리나라를 찾아 온 한국의 베트남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교회에 이미 속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의 신앙훈련을 위하여 준비하였다. 몇 개월 전부터 모여 기도하고 의논하여 미국에 계신 Ai 목사님을 주강사로 모시고 베트남 성도들에게 베트남 본토에 돌아가서 선교사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중심을 맞추었다.참가 인원은 베트남인 120명 정도 한국인 사역자와 봉사자 40명 정도 모두 약 160명이 이번 영성수련회에 참가하였다. ‘사랑의 부르심’이라는 주제, 한국에 와서 신학생으로 훈련 중인 베트남 선교사들로..